“정부가 美·업계 반발에 백기”...기업 플랫폼법 돌연 무기 연기

권순완 기자 2024. 2.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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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애플·네이버·카카오 같은 거대 플랫폼 회사들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에 지정해 끼워 팔기 같은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는 내용의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플랫폼법)’ 제정이 무기 연기됐다. 담당 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업계와 충분한 소통”을 명분으로 걸었지만, “정부가 미국 재계와 국내 관련 업계의 반대에 밀려 백기를 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7일 “플랫폼 법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추가적인 의견 수렴을 해 나가겠다”며 “(법안 공개) 시기는 특정할 수는 없고 의견 수렴 과정에서 좀 걸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당초 공정위는 설 연휴 전에 법안 내용을 공개한다는 방침이었는데, 돌연 기한 없이 미룬 것이다.

플랫폼법의 핵심인 ‘사전 지정제’에 대해 조 부위원장은 “업계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효과적으로 플랫폼을 규율할 방안이 있는지 추가적인 검토를 하겠다”며 “(도입 여부를)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사전 지정제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전 지정제란 플랫폼사의 매출액과 시장 점유율, 이용자 규모 등을 기준으로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지정해 신속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대형 플랫폼 업체와 경쟁하는 중·소형 플랫폼과 입점 업체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당초 공정위는 플랫폼법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대형 플랫폼사들의 불공정 경쟁 행위에 대한 제재가 시급하다는 이유였다.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지난달 24일 “이 법(플랫폼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다”며 " (정부 부처 간) 최종 합의에 도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불과 2주 만에 태도가 180도 바뀐 것이다.

공정위가 입장을 바꾼 것은 미국 재계와 국내 플랫폼 업계, 학계 등이 강하게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미 상공회의소는 지난달 성명을 내고 “(플랫폼법이) 외국 기업을 임의로 겨냥해 정부 간의 무역 합의를 위반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법안의 수혜자로 예상되는 중·소형 벤처기업들까지 반대하고 나선 것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벤처기업협회는 지난달 “벤처기업의 혁신 시도가 위축되고, 투자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성장이 정체될 것”이라며 공식 반대 입장을 밝혔다.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찬성하는 단체들도 있었지만, 여론전에서 공정위가 밀린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빅테크 플랫폼에 대한 규제가 동력을 잃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미 경쟁 당국인 연방거래위원회(FTC)는 지난해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으로 소송을 걸었지만 모두 패소했고, 빅테크 반독점 규제 법안도 의회에서 폐기됐다. 중국 플랫폼의 급성장에 미국 업체들이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이다.

반면 강력한 토종 플랫폼이 드문 유럽연합(EU)은 미·중의 공룡 플랫폼에 맞서 자국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사전 지정제를 포함한 디지털시장법(DMA)을 만들어 다음 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한국은 유럽 사례를 참고해 플랫폼법을 추진했는데, 국내 토종 플랫폼들이 “법안이 시행되면 미국 플랫폼 좋은 일만 시켜준다”고 반대하자 명분이 약해졌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플랫폼법 제정’은 올해 주요 업무 추진 계획에도 명시된 것”이라며 “최선을 다해 연내에 추진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업계 의견을 들을 때 공정위가 사전 지정제만 고집하지는 않겠다는 뜻이지, ‘원점 재검토’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

구글·네이버·카카오 등 대형 플랫폼 업체들을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미리 지정해 끼워팔기 같은 불공정 행위를 못 하도록 규제하는 법안. 공정거래위원회가 유럽연합(EU)이 작년 통과시킨 디지털시장법(DMA)을 참고해 제정하려다가 미국과 업계의 반발에 밀려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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