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어떤 설날-백사마을의 추억
현재란 모든 흐르는 시간 속에 있다. 10여년 전의 중계동 백사마을이다. 강추위가 온몸을 경직시키던 설날 이곳을 찾았다. 나는 이런 비루한 풍경에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내가 겪은 지난함이 비장한 역전의 힘이 되었기 때문일까. 심리연구가 마크 맨슨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제를 인정하고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회복 탄력성을 지닌 한국의 진짜 슈퍼파워일 수 있다고 했다. 성찰할 만한 진단이다.
우울의 내력이 얽혀 있는 전깃줄, 전신주 아래엔 연탄재가 쌓여 있고 굴뚝엔 푸르스름한 연탄가스가 유령처럼 피어올랐다. 카메라를 든 손이 금방 얼 듯한 회색빛 골목엔 때때옷을 입은 여자아이의 매무새를 가다듬는 할머니가 포착됐다. 세배를 가는 길일까. 서민들이 기대어 사는 공동체는 풋풋한 정서가 있어 정감이 간다. 문득 카메라 너머로 어머니의 모습이 오브랩됐다. 설날이 오면 설빔을 준비하시고 떡방앗간에서 금방 나온 가래떡을 커다란 양푼에 이고 오시던 풍경, 그 시절은 먼 추억이 됐다. 오랫동안 건강을 잃고 사셨던 어머니의 말년을 잘 지켜드리지 못한 후회만 남았다. 이제 나의 여생도 완성된 게 없고 자신할 수 없다. 무의미한 형식의 굴레와 향기 없는 삶. 내일이 가끔 두렵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타이른다. 지미 카터는 말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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