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잭슨도 심슨도… 美 검찰은 1심 무죄 나면 사건 종결
검찰이 지난 5일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을 항소할 것으로 7일 전해졌다. 이 회장을 둘러싼 19개 혐의를 법원이 모두 무죄라고 했는데도 사건을 2심 법정으로 끌고가기로 한 것이다.
1심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되더라도 검찰이 불복해 2심 재판을 계속하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1심 무죄 사건을 검찰이 항소하는 것을 헌법으로 막고 있다. 즉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 검찰은 항소할 수 없다. 항소라는 제도가 국가(검찰)로부터 기소당한 피고의 혹시 모를 억울함을 구제하기 위한 장치이지, 검찰에 ‘두 번째 기회’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는 취지가 담겼다. 검찰로서는 한 번의 기소로 유죄를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히 기소하고 철저히 준비함으로써, 소모적 법적 공방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미국에선 실제로 기업인이나 스포츠인·연예인 등 유명인과 관련한 사건 중에 판결에 대해 큰 논란이 있음에도 1심 ‘무죄’ 판결로 종결된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기 한 해 전인 2007년, 손실이 거의 확정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관련 펀드를 소비자에게 팔아 사기로 기소된 베어스턴스의 펀드매니저 두 명(랠프 시오피, 매슈 타닌)에 대한 판결이다. 위험을 숨긴 채 판매된 펀드로 투자자(기관투자자 포함) 약 300명이 16억달러(약 2조1200억원)의 손실을 입은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은 2009년 11월 무죄를 평결했다. 둘이 주고받은 이메일 등에 위험을 인지했음을 시사하는 문장이 여럿 있었다고 공개됐음에도 법원은 “공격적인 영업 행위이지 사기는 아니다”라는 피고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 사건은 금융 위기를 유발한 금융사들의 탐욕에 대한 반발 여론을 불러일으키며 이목을 끌었는데,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며 그대로 종결됐고 이후 다른 형사·민사 사건에도 영향을 줬다.
최고경영자(CEO) 관련 소송 중엔 이른바 ‘헬스사우스 판결’이 있다. 이 회사의 창업자이자 CEO인 리처드 스크러시는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수익·자산 등에 대한 회계 자료를 부풀렸다는 등의 혐의로 2003년 기소됐다. 자금 세탁, 증권 사기 등 혐의가 36개나 됐지만 법원은 2005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기 세력에 휘말려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로 저지른 일’이라는 스크러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다만 스크러시는 이듬해 별건의 뇌물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고 구속됐다.
경제사범이 아닌 살인 등 일반 범죄 중엔 1995년 미 유명 미식축구 선수인 O.J. 심슨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전처를 살해했다는 혐의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았지만, 372일간의 법정공방 끝에 무죄가 선고돼 처벌받지 않았다. 범행 현장에서 심슨의 혈흔이 나오고 심슨 집에서 피해자의 혈액이 묻은 장갑이 발견되는 등 심슨의 범행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심슨 측은 재판 과정에서 ‘주요 증거로 쓰이는 피 묻은 장갑이 심슨 손에 맞지 않는다’는 점 등을 부각했고 배심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검찰이 1심에서 유죄를 입증하지 못하면서 결국 사건은 종결됐다. 다만 심슨은 피해자 유가족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졌고, 법원이 배상금 850만달러와 함께 징벌적 배상금 2500만달러를 유가족에게 지급하라는 명령을 해 결국 파산했다. 사실상 심슨의 잘못을 민사 법정이 인정한 셈이지만, 형사적으로 심슨은 무죄로 남았다.
2009년 사망한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은 아동 청소년 성추행 등 10개 혐의로 수사 착수 20개월 만인 2004년 4월 기소됐다. 그러나 2005년 6월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카운티 법원은 잭슨이 받는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 평결을 내렸다.
2012년 후드 티를 입고 길을 가던 흑인 청년 트레이번 마틴에게 백인인 조지 짐머먼이 총을 쏘아 목숨을 빼앗은 사건은 전국적인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촉발할 정도로 국민적 반감이 컸다. 하지만 2013년 미 법원은 정당방위를 인정해 무죄 판결을 했다. 이 판결이 흑인을 중심으로 한 인종차별에 대한 분노를 키우는 계기가 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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