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블비치와 오거스타도 한수 접는다···은둔의 세계 1위 코스[골프 트리비아]

김세영 기자 2024. 2. 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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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저지주 파인밸리 골프클럽 이야기
호텔리어 출신 크럼프가 만든 자연의 걸작
코스레이팅 76.6···“세계에서 가장 어려워”
코스 보존하려 프로대회 한번도 개최 안해
철저한 회원제, 연간 초청 게스트에도 제한
파인밸리 골프 클럽. Getty Images
[서울경제]

지난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이 열린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는 빼어난 풍광으로 유명하다. ‘신이 만든 코스’로 불린다. 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의 무대인 오거스타내셔널은 엄격할 만큼 잘 관리된 코스와 신비주의로 골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골프의 고향’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는 골퍼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주요 글로벌 골프 매체들은 전 세계 코스를 대상으로 100대 코스 순위를 매긴다.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오거스타내셔널, 페블비치 등은 매번 상위권에 오른다. 하지만 이들 코스가 1위는 아니다. 세계 1위에 거의 매번 오르는 코스가 있다. 그런데 이 코스는 일반 대중에게는 생소하다. ‘은둔의 세계 1위’ ‘부동의 세계 1위’로 불리는 파인밸리 골프클럽에 관한 이야기다.

파인밸리는 미국 동부 뉴저지 주에 있다. 코스를 만든 이는 조지 크럼프다(트럼프가 아니다!). 필라델피아 태생의 크럼프는 젊은 시절 호텔 사업으로 부를 쌓았다. 그는 39세이던 1910년에 골프코스를 연구하기 위해 영국과 유럽 여행길에 올랐을 만큼 열정적인 골퍼였다. 그곳에서 세인트앤드루스, 프레스트윅, 턴베리, 샌드위치, 호이레이크, 서닝데일 등의 유서 깊은 올드 코스들을 둘러봤다.

크럼프는 1912년 18명의 친구들을 설득해 각자에게서 1000달러씩을 거둔 뒤 뉴저지 남부의 구불구불하고 모래로 된 부지를 매입했다. 크럼프는 평소 그 지역에서 사냥을 자주 해 지형을 잘 알고 있던 터라 설계도 맡게 됐다. 크럼프는 호텔을 매각한 뒤 그 돈을 코스 건설에 쏟아 부었다.

작업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습지대의 물을 빼야 했고, 약 2만 2000그루의 나무를 뽑아내야 했다. 중장비 없이 말의 힘을 빌려야 했던 당시의 사정을 감안하면 커다란 도전이었다. ‘크럼프의 어리석음’이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코스 건설에 매진하던 크럼프가 1918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자살이라는 말도 있고, 치과 질환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죽을 당시 크럼프는 빈털터리였고, 코스는 14개 홀만 완성된 상태였다. 나머지 4개 홀은 그가 죽고 4년 후인 1922년 완공됐다.

파인밸리는 크럼프가 설계한 유일한 작품이다. 전 세계 500개 이상의 코스를 설계 또는 리모델링한 로버트 트렌트 존스는 파인밸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라고 했다. 얼마나 어려울까. 일단 길다. 파(기준타수)는 70인데 전장이 7201야드다. 챔피언 티잉 구역에서의 코스 레이팅은 76.6이다. 핸디캡 0인 스크래치 골퍼가 플레이를 하면 평균 76.6타(+6.6타)를 친다는 의미다.

깊고 가파른 벙커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636야드나 되는 7번 홀(파5) 중간에 있는 커다란 벙커는 ‘지옥의 하프 에이커(Hell’s half acre)’라 불린다. 10번 홀(파3)의 그린 옆 원뿔형 벙커는 악마의 엉덩이(Devil’s Arse)'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다. 너무 가팔라 그린 반대 방향으로 쳐내는 게 유일한 탈출 방법이다. 뛰어난 전략에 장타와 정교함까지 두루 갖춰야 하고 실수에는 가혹한 징벌이 따르는 코스인 것이다.

난해하지만 코스는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다. 대부분 티샷 낙하지역만 페어웨이로 조성돼 있고 나머지는 자연 러프다. 이곳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18개의 모든 홀이 걸작이다”라고 말한다.

회원들은 파인밸리에서 처음 플레이를 하는 골퍼가 80타를 깰 것인지를 두고 종종 내기를 했다고 한다. 이 난공불락을 정복한 몇몇 선수들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아널드 파머다. 그는 US 아마추어 챔피언 자격으로 1954년 처음 파인밸리에서 플레이를 했는데 68타를 쳤다. 라운드 전 파머는 내기에 돈을 걸었고, 당연히 두둑하게 챙겼다. 훗날 파머는 “당시 막 결혼을 했을 때라 돈이 무척 필요했었다”라고 회고했다.

파인밸리는 최고의 테스트 무대이지만 그동안 프로 대회를 한 번도 치르지 않았다. 1936년과 1985년에 워커컵(미국과 영국-아일랜드 남자 아마추어 대항전)이 열린 게 전부다. 대회 개최를 위해서는 갤러리 동선을 만들어야 하는데 파인밸리는 나무를 자르고 레이아웃을 변경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클럽 운영은 철저한 회원제다. 멤버 가입은 이사회 초청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게스트는 멤버와 동행해야 클럽을 방문할 수 있다. 그나마 멤버가 연간 초대할 수 있는 게스트 수에도 제한이 있다.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인 코스,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회원들의 노력 등이 결합돼 파인밸리는 세계 1위 코스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김세영 기자 sygolf@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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