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는 '업무배제'

양지훈 변호사

회사란 조직에서 보고와 결재절차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일반적인 취업규칙이나 인사규정 등에 결재절차를 규정한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보고(결재)과정상 통용되는 규칙을 어기는 경우는 조직에서 분란을 야기한다. 근로자인 회사 직원은 자신의 직급과 직책에 적합한 업무를 조직에서 부여받기 마련인데 일반적인 보고(결재)과정에서 무시당하거나 침해당했을 때 경우에 따라 해당 근로자의 정신적 고통과 근무환경의 악화를 초래할 수도 있다.

최근 한 블로그에서 '결재라인'을 어긴 하급자 직원을 질책했다는 글을 접했다. 블로그의 필자는 조직에서 결재라인이 지켜지는 것이 원활한 업무진행을 위해 필요하며 결재 프로세스는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에서 결재라인이 무너지는 경우로 블로그 필자가 든 사례는 다음과 같다.

부하직원인 A팀장은 최근 고민이 있었는데 A의 상사인 임원 B가 A팀의 팀원들을 따로 불러 업무상 지시를 직접 한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원래 보고·결재순서는 팀원-A팀장-B임원을 통해 이뤄져야 하지만 이 과정에서 팀장 A가 소외됐다는 것이다. A는 임원 B의 직속상사이자 고위임원이었던 블로그 필자에게 이러한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이에 B의 상사였던 필자는 그를 불러 팀원들이 팀장인 A를 통해 업무처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하며 차후 업무진행을 A팀장과 함께할 것을 지시했다. 임원 B가 A팀장과 업무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상사인 자신에게 팀장교체를 요청하는 방식을 택했어야 옳다고 판단했고 그와 달리 A팀장을 배제하고 팀원들로 하여금 임원과 직접 업무진행을 하는 것은 조직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행위이므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나는 조직의 업무처리 방식에 관한 위 블로그 필자의 대응과 판단이 적절하다고 봤지만 놀라운 것은 댓글 반응이었다. 댓글에는 '하급자가 상사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을 지적하는 관리자가 더 꼰대'라는 취지의 비난이 많았다.

그러나 임원 B가 일회적으로 특수한 경우에만 팀원들과 업무진행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조직의 일반적인 보고체계와 관계없이 업무지시를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임원이 팀장을 지속적으로 우회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는 조금 사실관계가 다르지만 지속적인 업무배제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한 하급심 판결을 살펴보자. 해당 사건에서는 상사가 팀장을 배제한 채 다른 팀장들만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 것을 두고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피해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로 판단했다. 물론 해당 판결은 상사의 이와 같은 업무배제 행위 하나만 놓고 이러한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인천지방법원 2021가단227536 사건).

이 사건에서 상사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팀장인 하급자를 차별대우한 것이 문제가 됐다. '회의 왕따'와 더불어 가해자는 하급자에게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 모니터를 구형으로 지급하거나 책상 칸막이를 설치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러한 차별대우에 더해 다른 팀장들이 전체적으로 함께하는 업무회의에서 피해자에게만 참석을 알리지 않았고 결국 그를 제외한 채 회의가 진행된 것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판단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조항을 다시 살펴보자. 상사의 지속적인 업무배제는 상사가 다른 관리자들을 평등하게 모두 배제하는 것이 아닌 한 차별대우에 해당하고 이는 '직장에서 지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양지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