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도 칼럼] 설 앞두고 보고픈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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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끝자락 새벽녘 알싸한 찬 공기를 마시며 원주 봉화산을 올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머니를 모시고 차례를 지냈으나 이제는 우리 형제만 허전한 설을 보내야 한다.
설날 아침 막내 손 시릴까 봐 아득한 저승의 숨결로 벙어리 장갑 뜨고 계신 나의 어머니.
원주고 출신으로 역시 지난해 타계한 오탁번 시인의 '설날'을 읊으며 보고픈 나의 어머니를 그리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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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끝자락 새벽녘 알싸한 찬 공기를 마시며 원주 봉화산을 올랐다. 오를 때는 캄캄하던 하늘이 정상에 다다를 때쯤 치악산에서 불그스레한 여명이 비춘다. 산에 오를 때는 가끔 보는 중년 부부가 손전등에 의지해 정상에서 내려올 뿐 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오랜만에 속 시원하게 야호 소리를 내지르며 봉화산 전망대에서 멀찌감치 치악산에 올라오는 붉은 기운을 휴대전화에 담았다.
요즘 걸을 때 유튜브를 통해 읽어주는 소설을 듣곤 한다. 오늘은 박완서 작가의 겨울 나들이를 1시간여 들었다. 6·25 전쟁 때 북한에서 피난 온 가난한 화가 남편이 전시회를 준비하며 남편이 이북에서 업고 내려온 딸과 전시회 준비를 하는 게 질투나 무작정 온양온천으로 겨울 여행 가면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겪으며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이다.
북한이 고향이라는 이야기에 걸으면서 나의 부모님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지난해 8월 돌아가신 어머님으로 인해 이북 출신으로 20살의 어린 나이에 전쟁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아버지를 둔 실향민 우리 가족들의 삶을 자꾸 되새김하고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삶을 반추해 본다.
어머니는 서산으로 기우는 석양처럼 여명(餘命)이 다하신 줄 모르고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생에 대한 애착을 두셨다. 마지막에는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으면서도 뭐든지 잘 드시면서 과거 이야기, 자질구레한 집안 대소사도 총기를 잃지 않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80여년의 인생은 형언할 수 없는 기구한 인생이었다.
해방된 후 삶의 터전인 양구가 공산 치하가 되자 외할아버지는 식솔을 이끌고 춘천으로 월남했으나 낯선 타향에 가족을 남겨두고 병사했다. 6·25 전쟁 중 가장을 잃은 외할머니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소양강에 어린 두 딸과 몸을 던지려 할 만큼 힘들었다.
전쟁이 끝난 후 외할머니는 양구가 수복되자 귀향했다. 그러던 중 갈 곳 없는 평안북도 벽동이 고향인 반공포로 청년을 나이 어린 딸과 결혼시켰다. 보리쌀 서말만 있어도 처가살이 안 한다지만 그 당시 갈 곳 없는 아버지는 선택지가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가 어렸을 때 돈을 벌기 위해 원양어선을 탔다. 이때는 70년대로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을 외치던 시기로 방첩대에서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가 혹시라도 어쩌나 싶어 우리 집을 감시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농사를 지으면서 정말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고 춘천으로 이사해서도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어렵게 4남매를 키웠다. 사실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와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가 평생 부딪치며 지내는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어머니는 굳센 줄 알았는데 돌아가시기 몇달 전 “너희가 결혼해서 떠나고 난 후 우울증으로 엄청나게 고생하셨다”라는 말씀에 울컥했다. 돌이켜 보면 어머니의 인생은 한없이 가엽고 가련하다. 악착같지만 마음이 여려 눈물을 달고 사셨다. 이제는 다시 뵐 길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머지않아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머니를 모시고 차례를 지냈으나 이제는 우리 형제만 허전한 설을 보내야 한다.
설날 차례 지내고
음복 한 잔 하면
보고 싶은 어머니 얼굴
내 볼 물들이며 떠오른다.
설날 아침
막내 손 시릴까 봐 아득한 저승의 숨결로
벙어리 장갑 뜨고 계신 나의 어머니.
원주고 출신으로 역시 지난해 타계한 오탁번 시인의 ‘설날’을 읊으며 보고픈 나의 어머니를 그리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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