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덕담이 왔어용
덕담(德談). 새해 첫 날 서로에게 행복을 기원하는 정다운 말이다. 가족과 친지들이 한 곳에 모여 북적이는 민족의 대명절 설날이 돌아온다. 바쁜 일상은 잠시 뒤로 하고 오랜만에 마주한 얼굴 앞에서 무슨 말부터 건네야 할까. 지난 명절 가족이 무심코 내뱉은 ‘말’에 상처받아 집으로 가는 발길을 머뭇거리는 이들도 있다. 오손도손 둘러 앉아 묻는 안부가 ‘호구조사’에 그치거나, ‘비수’로 날아와 가슴에 꽂히는 싸늘함을 남기지 않길. 설날을 앞두고 강원특별자치도 도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새해 인사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 도민 대표 김 지사, “강원도 달라졌다”는 말 듣기 위해 뛰는 한 해
김진태(59) 강원특별자치도지사는 올해 설 명절에 “‘요새 우리 강원도가 좀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올해 도지사 임기 3년차를 맞아 더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하는 이유다. 지난 5일 춘천동부노인복지관 어르신 배식봉사 현장에서 만난 김 지사는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잘 안보이다가 명절 때만 되면 나와 인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경각심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명절 뿐 아니라 평소에도 늘 잘해 달라’는 말을 들었다”며 “도민 분들의 민심을 듣기 위해 올해 민생 현장을 더 열심히 다닐 생각”이라고 밝혔다.
■ 명절은 학교 밖 체험시간! 초등생 “공부 잔소리 아직 참아주세요”
전세계 음식을 모두 맛보는 것이 꿈인 정찬형(9·원주 솔샘초) 학생의 이번 설 목표는 ‘스노클링(snorkeling)’이다. 태어나서 첫 해외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제사보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 가족과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이 더 익숙한 명절문화다. 의사나 공무원보다 ‘여행꾼’이 되고 싶다는 그의 올해 목표는 ‘여행 많이 하기’다. 설날 덕담에 대해 “듣고 싶은 말은 딱히 없어요”라면서도 “공부 똑바로 해라”는 말만큼은 아직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 20대 대학생 “듣고 싶은 말보다 안 했으면 하는 말이 더 많아요”
강릉에 사는 대학생 조서현(24) 씨의 올해 목표는 졸업이다. 하지만 ‘코로나 입학생’이었던만큼 알찬 대학생활의 추억을 쌓는 일도 중요하다. 설날에 듣고 싶은 말에 대해 조씨는 “굳이 안했으면 하는 말이 더 많다”며 “학업 관련된 질문은 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지 묻는 것 정도는 괜찮지만 자격증을 많이 땄는지, 졸업 준비는 다 했는지, 취업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비대면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 그는 취업 고민보다 대학생으로서의 일상에 더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듣고 싶은 말에 대해서는 잠시 고민 후 “하고 싶은 일 다해도 된다는 말”이라며 웃었다.
■ 귀향길 사회초년생 “첫 취업 관심 오히려 부담”
올해 서울에 취업한 김덕중(29)씨는 춘천행 귀성길이 다소 부담스럽다. 어른들의 질문공세가 예상되어서다. 그는 “취업 후 첫 명절이라 어른들의 관심이 집중될 것 같다”며 “업계에서 높지 않은 연봉 때문에 다소 스트레스가 있다”고 했다. 어른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걱정이다. 그는 “돈에 큰 가치를 두고 직장을 선택한 편이 아닌데 또래 평균 연봉을 비교하는 말에 조금 지친다”고 했다. 대신 “하고 싶은 일 하는 것이 제일 좋다. 너무 돈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격려를 기대한다.
■ 인생 투자 방식도 취향대로 “결혼 대신 주식 응원해주세요”
주식시장에 뛰어든 지 3년차인 신새롬(35)씨는 올해 목표로 ‘재테크’를 꼽는다. 설날이면 차례 대신 교회에 가는 환경에서 자랐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그는 “여성으로서의 나이를 언급하며 ‘큰일났다’, ‘결혼 안하냐, 아이는 안 낳으려고 하는 것이냐’, 심지어는 ‘아예 포기한 것이냐’는 말도 듣는다”고 했다. 정작 그의 올해 관심과 목표는 결혼이 아닌 “원금 회복”이다. 새롬 씨는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식 대박나라’ 혹은 ‘원금 회복하길 바란다’고 해주면 그게 저를 위한 덕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연락 끊어진 친구들 생겼다면 “그동안 잘 지냈니”
공무원 홍윤기(34) 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이 많아 아쉬움이 많다. 홍 씨는 “새해 행복을 나누고 싶지만, 어떤 계기로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이 많다. 안부를 묻고 싶은데,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며 “메시지의 내용보다는 연락 오는 것 자체가 좋다.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말과 함께 그간 잘 지냈냐는 안부 인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출산, 결혼, 취업 등 민감한 문제는 가족 간에도 조심히 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세마리 토끼 무탈하게...워킹맘에게 “잘 하고 있다고 해줘요”
원주에 사는 결혼 10년차 권정인(40)씨는 명절이지만 가족 모임 부담은 적다. 차례상 대신 가족들이 모여 식사하고 인사하는 문화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올해도 가족들과 여행을 간다. 직장인이자 두 초등학생의 엄마인 그는 ‘세마리 토끼’를 무탈하게 잡는 게 목표다. “잘 하고 있다. 스스로를 믿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니’라는 말은 피하고 싶은 말이다. 그는 “아이들이 한창 놀 수 있는 시기를 존중해주고 싶다”고 했다.
■ 몸과 마음, 생각까지 “건강하세요”
춘천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는 이준경(46·가명) 씨는 ‘건강’을 가장 듣고 싶은 말로 꼽았다. 장기전인 인생에서 나이가 들수록 그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나의 바람은 혼자 알고 있어도 괜찮다. 가장 일반적인 안부가 편하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몸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건강한 마음과 생각도 필요하다”며 “어느 순간부터인가 ‘건강’이라는 단어로 모든 것이 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듣고 싶지 않은 말로는 ‘싫다’를 꼽았다. 부정적 에너지가 전염되는 것이 걱정 되어서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린다”고 말했다.
■ 자주 듣는 ‘담배 술 줄여라’…50대 ”오히려 좋아”
춘천에서 자영업을 하는 석지찬(50) 씨는 이번 설에도 “술·담배 줄여라”는 말을 들을 것으로 기대한다. 석 씨는 “자주 들어 귀찮기는 하지만 기분 좋은 잔소리”라고 했다. 올해 목표는 부동산 재테크다. 그는 “아내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등 건물주로 사는 것이 꿈”이라고 덧붙였다. 듣고 싶은 말은 “하는 사업이 잘 돼서 돈 많이 벌어라”다.
■ 퇴직을 앞둔 이들이라면 “당신, 그동안 참 고생 많았어요”
윤옥현(60)씨는 춘천에서 퇴직을 한 달 여 앞두고 있다. 19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그를 주변에서 걱정하지만 정작 옥현씨는 “홀가분하고 해방된 기분”이라고 했다. 아이 엄마로 뒤늦게 사회생활에 뛰어든 그는 “엄마로도, 사회인으로도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며 “‘시원섭섭하겠다’라는 식으로 걱정을 해주는데 오히려 인생에 대한 기대가 더 커졌다”고 했다. 서예, 정원 가꾸기 등 취미생활을 고민하며 학원등록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듣고 싶은 말은 “그동안 고생 참 많았다”이다.
■ 예술가라면 “왕성한 활동 위해 건강이 최우선”
춘천에서 활동하는 이수환(61) 사진가의 꿈은 몸이 허락할 때까지 사진을 찍는 것이다. 왕성한 작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강이 필요하다. 이 씨는 “앞으로 활동을 이어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며 “건강하라는 말이 제일 듣고 싶다”고 했다. 그의 소원은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작업하는 것이다. 걱정거리는 자녀의 취업문제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우리 세대의 자리를 채워줘야 한다. 어떤 일이든 그저 열심히만 하면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 옹기종기 식구 모이는 날, 70대 “내 몸보다 가족 건강부터”
속초에 사는 전호신(76)씨는 최근 몸이 많이 아프다. 그의 올해 꿈은 “가족의 건강”이다. 그는 “‘오래 사세요’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사실 장수를 바라지는 않는다”면서 “설날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가 그저 좋은 일”이라고 하루하루 평범함 일상의 중요성에 의미를 뒀다. 김진형·강주영·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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