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푸틴도 ‘4시간 생방송 기자회견’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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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은 가만히 있기 힘든 자리다. 영부인이 나서면 대통령도 못 말린다. 남편은 아내를 이기기 어렵다."
누구는 '치맛바람 공천' 개입설에 휘말렸고, 누구는 뇌물 수수 의혹을 받았으며, 누구는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대통령보다 앞서 걸어 놀라게 했다.
결국 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어제 신년대담을 통해 입장을 밝혔으나 사태를 종결짓기는커녕 새로운 논란거리만 보태고 말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내외신 기자 600명을 모아놓고 4시간 생방송으로 연례 기자회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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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감시하고 리스크 관리 프로들에 맡기라
역대 대통령들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원로가 전해준 말이다. 따져보니 그랬다. 누구는 ‘치맛바람 공천’ 개입설에 휘말렸고, 누구는 뇌물 수수 의혹을 받았으며, 누구는 대통령 해외 순방길에 대통령보다 앞서 걸어 놀라게 했다. “청와대 넘버원은 여사”란 말도 자주 들었다.
그중에서도 김건희 여사의 행보는 유별나다. ‘명품 백 사건’은 나라 밖에까지 알려졌다. ‘퍼스트레이디 스캔들’로 검색하면 ‘디올 백 스캔들이 한국 정계를 뒤흔들다’는 내용의 외신이 줄줄이 뜬다. 김 여사가 명품 백 몰카 공작에 당했다는 얘기만 전하는 게 아니다. 논문 표절, 학력 부풀리기,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 발언 같은, 남들이 몰랐으면 하는 과거까지 시시콜콜 보도하고 있다.
결국 대통령이 오랜 침묵을 깨고 어제 신년대담을 통해 입장을 밝혔으나 사태를 종결짓기는커녕 새로운 논란거리만 보태고 말았다. 명품 백 논란에 대해 “아쉬운 점은 있다”는 내용도 아쉽지만 4일 녹화한 대담을 3일 후 내보내는 형식은 더 황당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선 유례를 찾기 힘들어 독재국가를 뒤져봤더니 김정은도 2019년 1월 1일 자정 신년사를 녹화해 그날 오전 9시 바로 내보낸 것으로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말 내외신 기자 600명을 모아놓고 4시간 생방송으로 연례 기자회견을 했다. 질의응답 모두 사전 각본이 있었겠지만 “대선 출마하지 말고 젊은이에게 양보하라”는 실시간 여론까지 그대로 방송했다. 드라마도 쪽대본으로 생방하다시피 하는 나라에서 대통령 기자회견은 왜 사전 제작하나.
국영방송과 달리 정권과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공영방송 KBS가 대통령실이 원한다고 녹화대담 방식을 수용한 것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공교롭게도 녹화대담 결정이 공개된 1일 KBS가 이달부터 시행한다던 수신료 분리 징수를 갑자기 유예한다고 밝혔다. 수신료 분리 징수로 7020억 원이던 수신료 수입이 4407억 원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인건비 1100억 원을 삭감한 긴축 예산안을 의결한 지 하루 만이다.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 중이라는데 불발된 분리징수를 언제 할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수신료 수입이 줄어 죽는 줄 알았던 KBS로서는 살길이 열릴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됐을 것이다. 녹화대담 결정과 수신료 분리 징수 유예, 이게 우연인가.
명품 백 스캔들에 대한 외국인들의 생각이 궁금해 뉴욕타임스 기사의 댓글을 봤다. 김 여사를 탓하는 글보다는 ‘함정을 판 사람은 왜 문제 삼지 않나’ ‘북핵 위기가 심각한데 300만 원짜리 백 하나로 한가한 논쟁을 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91가지 혐의로 재판받고, 연방대법관이 억만장자 클럽에서 온갖 향응을 받아온 미국에 비하면 별일 아니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국은 동아시아의 이탈리아, 일본은 스위스여서 한국인들은 감정적으로 오버하고 일본인들은 냉정하게 계산한다’는 견해도 흥미로웠다. 실수 자체보다는 감정을 앞세워 덮으려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는 뜻으로 읽었다.
명품 백 사건도 초기에 제대로 대처했더라면 이렇게 커질 일이 아니었다. 그냥 뭉개고 가자거나, 그게 안 통하니 녹화대담으로 덮자는 제안은 냉정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아니다. ‘가만히 있기 힘든 자리’를 위해 공적 감시를 시작하고 작은 일을 정권의 위기로 키우지 않도록 전문가 도움을 받으라. 대통령의 아내 사랑은 필부와 달리 차가워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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