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었다…윤 대통령의 ‘김건희 명품가방’ 해명
윤석열 대통령이 7일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문제를 두고 밝힌 입장은 김 여사를 ‘정치 공작’ 피해자로 규정하고 대처 과정의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요약된다. 명시적 사과나 유감 표명, 명확한 진상규명 의지는 없었다. 직접 입장을 밝히며 정국 돌파를 시도했지만 법 위반 논란을 “매정하게 끊지 못한” 데서 비롯된 일로 설명한 것이다. 명백한 진상규명과 김 여사의 사과를 바라는 여론과는 동떨어진 인식을 보여주면서 비판이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밤 KBS를 통해 100분간 녹화 중계된 <KBS 특별 대담 -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김 여사의 가방 수수 전후 경위를 설명했다.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와의 별도 만남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동향이고 친분을 얘기하고 대통령이나 대통령 부인이 박절하게 대하기 어려워서” 이뤄졌다고 했다.
‘명품가방’이란 직접적인 언급도 없었다. 앵커의 질문에선 ‘파우치’ ‘외국 회사의 조그만 백’으로 명명됐고, 윤 대통령 답변에선 가방이라는 표현도 등장하지 않았다. 다만 윤 대통령은 전체 과정을 두고 “매정하게 끊지 못한 것이 좀 문제라면 문제이고 좀 아쉽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저 역시도 그럴 때가 많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 즉시 반환하지 못한 경위 등에 대해서도 콕 찝어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대신 세 차례 ‘공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최 목사의 의도와 몰카 촬영의 부적절성을 부각했다. 윤 대통령은 “시계에다가 이런 몰카까지 들고 와서 이런 걸 했기 때문에 공작”이라며 “선거를 앞둔 시점에 (만남 후) 1년이 지나서 터트리는 것 자체가 정치공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러나 정치공작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앞으로는 좀 더 분명하게 선을 그어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여기에는 김 여사를 ‘총선용 정치 공작’의 피해자라고 강조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달 5일 김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때도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총선용 악법”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여사와 관련한 진상규명 움직임과 이를 지지하는 여론을 번번이 ‘총선용 공작’으로 해석해 맞서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대응 방식을 두고는 “아쉬움”, “오해” 등의 표현을 거듭했다. 윤 대통령은 “저한테 미리 상황을 얘기했다면 저는 26년간 사정 업무에 종사했던 DNA가 남아있기 때문에 좀 더 단호하게 대했을 텐데 아내 입장에서는 (부친과의 인연 등) 여러 상황 때문에 물리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며 “좀 하여튼 아쉬운 점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들이 여기에 대해 오해하거나 불안해하시거나 걱정 끼치는 일이 없도록 그런 부분들을 분명하게 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재발 방지를 두고도 “이런 일이 발생 안하게 조금 더 분명하게 선을 그어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박절하게까지야 누구를 대해서는 안되겠지만 단호하게 선을 그을 때는 그어가며 처신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배우자의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위반 논란을 ‘처신’ 문제로 변환해 설명한 것으로 읽힌다. 사안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불거질 수 있는 지점이다.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공적 관리 방안으로 거론된 특별감찰관 임명과 제2부속실 설치를 두고는 ‘예방책’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사실상 (최재영 목사가) 통보하고 밀고 들어오는건데 적절하게 막지 못하면 제2부속실이 있어도 만날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저나 제 아내가 앞으로 국민들께서 걱정 안 하시도록 사람을 대할 때 좀 더 명확하게 단호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고 제2부속실을 비롯한 제도들은 지금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인식은 기존에 대통령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밝혀온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말 김 여사가 윤 대통령 취임 5개월째인 2022년 9월 최 목사를 따로 만나 명품 가방을 받는 영상이 공개된 이후 ‘몰래카메라(몰카) 공작’이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윤 대통령은 이 사안이 공개된 후 두 달이 넘게 침묵을 지켜왔다. 처음으로 직접 설명에 나선 데는 ‘김건희 리스크’ 확산이 총선을 앞둔 여당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김경율 비상대책위원 등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응을 요구하는 등 여당 내에서도 공식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대통령실의 한 위원장 사퇴 요구에서 비롯된 윤·한 충돌 사태에도 이 문제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가 방아쇠가 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윤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도 파장은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사과가 빠진 입장 표명을 두고 ‘김 여사 성역화’ 비판이 가속화할 수 있다. 명시적 사과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야당을 중심으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당 차원에서 김 여사 관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진행중이다. 여당은 윤 대통령의 대담을 계기로 사태를 매듭지으려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위원장은 이날 관훈클럽 초청토론에서 “그림을 찍기 위한 저열한 몰카 공작”이라며 “그런 점을 국민이 잘 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은 진실한 사과를 요구했던 국민의 기대를 배신했다”고 비판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책임 회피를 위한 ‘몰카 공작’, ‘정치 공작’ 주장에 대통령이 동참하다니 기가 막힌다”며 “윤 대통령이 국민께 용서를 구할 길은 ‘김건희 특검법’을 수용하고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하겠다고 천명하는 것뿐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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