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전술 축구...황금세대를 무능세대 만든 감독
과정은 엉성했고 결과는 허무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64년만에 도전한 아시안컵 축구 우승 달성에 실패했다. 7일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0대2로 완패(完敗)했다. 결과도 내용도 변명의 여지 없는 ‘완벽한 패배’였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3위 한국은 64계단 아래 87위 요르단에게 시종일관 밀렸다. 슈팅 수 12-5, 유효슈팅(골문 안으로 향한) 7-0, 프리킥 14-6. 경기 분석 지표 대부분 요르단에게 뒤졌다. 역대 A매치 전적 3승3무였던 절대 우위도 이날 마감했다.
한국 선수들은 16강과 8강전에서 잇따라 연장전을 치르며 체력을 소모한 탓인지 눈에 띄게 몸이 무거워 보였다. 후반전 접어들어선 경기가 잠시 멈출 때마다 무릎에 손을 대며 힘들어하는 선수들이 많았다. 2골 모두 수비 실수에서 시작됐다.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수비 중추 김민재(28·바이에른 뮌헨) 빈자리가 컸던 셈이다. 후반 8분 첫 골은 박용우(31·알 아인), 후반 21분 두 번째 골은 황인범(28·즈베즈다)이 안일하게 공을 뒤로 돌리다 뺏기면서 골로 이어졌다.
한국 수비수들은 요르단 주력 공격수 무사 알타마리(27·몽펠리에)나 야잔 알 나이마트(25·알 아흘리) 개인기를 막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골키퍼 조현우(33·울산) 선방으로 여러 차례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결국엔 무너졌다. 한국 공격을 책임지는 손흥민(32·토트넘)과 이강인(23·파리 생제르맹)은 밀집 수비를 뚫지 못했고, 황희찬(28·울버햄프턴) 역시 근육통 부상 여파가 남아 있는 듯 움직임이 둔했다.
한국 축구는 아시아 맹주로 통하지만 아시안컵에선 1960년 우승이 마지막이다. 당시 효창운동장에서 대회가 열렸다. 이후 준우승만 4번 차지했다. 이번엔 그 묵은 한(恨)을 풀 기회로 여겨졌다.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황희찬 등 유럽 무대를 호령하는 ‘황금 세대’가 기량이 물오른 상태로 합체한 건 처음이기 때문. 다음 대회(2027년 사우디)에선 손흥민 나이가 35세. 전성기가 지난 시점이라 이번 대회가 중요했다.
하지만 또 좌절했다. 축구 팬과 전문가들은 “이 ‘황금 세대’를 보유하고도 이 정도 경기력을 보이느냐’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 화살은 지휘자인 위르겐 클린스만(60·독일) 한국 대표팀 감독에게 향한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클린스만 축구 철학을 두고 ‘무(無)전술’ ‘해줘 축구’ ‘운장(運將)의 복장 축구’ ‘방목형 전술’ 등 야유가 쏟아진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클린스만은 조별 리그부터 치밀한 계획 없이 일부 선수 재능에 의존한 경기 운영을 반복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요르단전 패배를 낳은 체력 고갈 역시 조별 리그서부터 불거진 문제였다. 원래 한국은 2차전 상대 요르단을 이기고 2연승으로 16강 진출을 조기 확정한 뒤 3차전에서 주전들을 쉬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체계적인 역습으로 맞선 요르단에 고전하면서 2대2로 비겼다. 그래도 다른 조 경쟁자들이 부진하면서 16강 진출은 조기 확정했다. 그런데 클린스만은 3차전에도 주전들을 풀가동했다. 그리고 약체 말레이시아와 비겼다. 이 휴식 기회를 놓친 손흥민과 이강인, 김민재 등 대부분 주전들은 8강까지 거의 쉬지 못하고 뛰었다. 요르단은 한번도 연장전을 치르지 않았다.
4강 요르단은 조별 리그에 이어 다시 만난 상대. 예상 외로 고전했기에 이번에는 단단히 준비하고 나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그 반대였다. 클린스만호는 조별 리그부터 4강전까지 이른바 약속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수비 라인 호흡은 잘 맞지 않았고 공격수들을 무방비로 놔두기 일쑤였다. 공격에선 줄기차게 후방에서 공을 돌리다 측면으로 이어준 다음 부정확한 크로스로 요행을 노리는 이른바 ‘뻥 축구’가 잦았다. 코너킥이나 프리킥 기회에서도 세트피스(set piece·미리 짜두고 하는 경기 운영)라 불릴만한 장면이 없었다. 그저 이강인과 손흥민 두 스타 선수들이 뭔가 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클린스만은 대회 전 전술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결과로 말하겠다”고 장담했다. 4강에서 고배를 들자 “한국으로 돌아가 어떤 게 좋았고, 좋지 않았는지를 논의해보려 한다”며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팀이 더 발전해야 한다. 우리 앞에 쌓인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사퇴에 대한 질문에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 클린스만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그는 2006년 독일 대표팀 감독 시절 미국 자택에 너무 자주 머물러 구설에 오른 바 있다. 2006 독일 월드컵 4강을 이끌긴 했으나 수석 코치 요아힘 뢰프(64·독일) 공이 더 컸다는 뒷말도 나왔다. 미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2018년엔 미국을 32년 만에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탈락시킨 뒤 경질됐다. 2020년 독일 프로 구단 헤르타 베를린에선 부임 10주 만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감독직을 스스로 내려 놓았다. 그 뒤 3년 가까이 야인으로 지내던 클린스만을 한국이 전격 발탁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1월 역대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한 파울루 벤투(55·포르투갈)의 유산을 이을 사령탑을 물색했다. 위원회까지 꾸렸는데 난데없이 논란투성이인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협회 고위층이 절차를 무시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낙점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당시 위원 중 하나였던 최윤겸(62) 충북청주FC 감독은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도 잘못된 법도 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론의 화살은 정몽규(62) 대한축구협회장에게로 쏠리고 있다. 절차를 무시하고 논란 많던 클린스만 감독을 사령탑에 앉힌 최종 결정권자인 만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그동안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많은 지적들이 있었는데 협회는 하나도 듣지 않았다. ‘소 귀에 경 읽기’였던 것”이라고 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다시 만나지 못할 선수들로 이런 경기력밖에 보이지 못했다는 게 속상하다. 왜 클린스만 감독이었는지에 대한 협회의 해명이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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