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빈손으로... “선수들은 잘 했으니 날 질책해달라”
손흥민(32)은 이번 아시안컵 축구를 마치며 또 하나 기록을 남겼다. 한국 대표로 아시안컵 최다 출장 기록(18경기)이다. 4번째 출전하는 아시안컵. 다만 이번에도 우승 트로피 없이 빈손으로 짐을 쌌다.
그는 평소에 잘 웃어서 ‘스마일 가이’로 불린다. 잘 울기도 해서 ‘울보’로도 통한다.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전 멕시코전에서 골을 넣고도 1대2로 패하자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눈물을 쏟아냈다. 2016 리우 올림픽 8강전에선 비교적 약체로 꼽혔던 온두라스에 지고 나서 그라운드에 엎드려 통곡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때는 16강 진출을 극적으로 이뤄내고 감격에 겨워 울기도 했다.
7일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대2로 진 뒤엔 달랐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종료 휘슬이 울리고 허무한 표정으로 멍하니 한곳을 바라봤다. 눈물이 맺혔지만, 애써 참는 모습이었다. 손흥민이 경기 후 꺼낸 첫마디는 “앞으로 대표팀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해봐야겠다”였다. 대표팀 은퇴를 시사하는 말인가 다들 철렁했으나 이어 “클린스만 감독님께서 저를 더 이상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전처럼 대표팀 중심이 되기 어려운 나이로 접어든다는 고백에 가까웠다.
과거 한국 대표팀 주장을 맡아 숱한 국제 대회를 누볐던 박지성(43)과 기성용(35)도 아시안컵(각각 2011년과 2019년)을 마지막으로 30세에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손흥민은 올해 32세다.
아시안컵은 손흥민에겐 각별한 무대다. 그는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 인도전에서 만 18세 나이로 A매치 데뷔 골을 터뜨렸다. 역대 둘째로 어린 나이였다. 2015년 대회 결승전에선 개최국 호주를 상대로 후반 막판 극적인 동점 골을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그러나 연장 끝에 패하며 펑펑 울었다. 이번 대회는 사실상 그가 전성기에 치르는 마지막 아시안컵. 본인은 물론 팬들 기대가 컸다. 다음 대회는 2027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리는데 그때 손흥민은 35세다.
소속팀 토트넘에서 이룬 화려한 커리어와 달리 그는 성인 대표로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이 없다. 이번에 그 숙원을 풀기 위해 전 경기 교체 없이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손흥민은 “많은 선수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는데도 내가 부족한 바람에 원하는 성적을 가져오지 못했다”며 “선수들과 팬들에게 송구스러운 마음뿐이다. 우리 선수들은 정말 잘했다. 나를 질책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역대 최강 전력이란 평가를 받았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EPL) 득점왕 출신 손흥민 외에도 작년 이탈리아 세리에A 최고 수비수 김민재(28), ‘스타 군단’ 파리 생제르맹에서 주전으로 한 자리를 굳힌 이강인(23), 올 시즌 EPL 득점 7위(10골) 황희찬(28)까지 한국 축구 대표 역사상 이런 스쿼드(선수단)가 있었나 할 정도로 화려했다. 하지만 4강전에서 김민재는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고, 손흥민과 이강인은 거듭된 연장 혈투를 치른 후유증 속에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황금 세대’를 앞세우고도 64년 만의 정상 도전에 실패한 한국 축구는 이제 2027년 대회까지 67년간 아시안컵 무관을 이어가게 됐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부족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며 “지금은 우리 모두가 어떻게 하면 한국 축구가 더 발전할 수 있고,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 생각하고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 내내 부상에 시달린 황희찬은 “팀에 도움이 되려면 몸 관리를 더 잘하고 아프지 말아야 한다”며 “중요한 순간에 힘이 되어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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