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약한 유대, 소소한 인류애
‘또 선거철이 다가왔군’을 직감하게 하는 휴대폰 문자들. 예비 후보자들이 보내는 출판기념회 소식이었다. 모금행사로 전락한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에 질려갈 무렵,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눈길을 끈 포스팅을 발견했다. <우리라도 인류애를 나눠야지> 신간을 발간한 ‘천둥’ 작가의 북콘서트였다. 2년 전 덕질과 철학을 연결한 작가의 첫 번째 책을 읽고, 작가의 일상과 생각이 궁금했었다. 당장 신간을 주문했고 내친김에 북콘서트까지 달려갔다.
작가는 삶의 모퉁이마다 곁을 내어주고 기꺼이 손 내밀어 일으켜 세워준 평범한 일상 속 그녀들을 통해 인류애가 뭔지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의 주제와는 별개로 그날 내 시선을 끈 것은 북콘서트 형식 그 자체였다. 주말 오전, 서촌의 작은 문화공간에서 2시간 남짓 이어진 북콘서트는 사회자 하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와 작가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품앗이로 꽉 채워졌다. 전날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밑줄 치며 준비했다는 사람, 직접 만든 뜨개 수세미와 쿠키를 선물 나눔 하는 사람, 상담심리와 사주명리학을 공부한 사람의 재미로 보는 5분 사주, 특히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어 직접 우쿠렐레 연주와 노래를 불러준 사람도 있었는데 진심을 꾹꾹 담아 쓴 노랫말은 찡한 울림을 남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뒷정리도 후다닥 같이하고 낯선 이들과 뒤섞여 뒤풀이까지 갔다. 그야말로 각자의 방식으로 오지랖과 호응이 엮여 만들어 낸 환대의 장이었고 ‘이런 게 바로 인류애’를 느끼게 한 시간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래전 방문했던 영국 런던의 사회혁신 기관에서 들은 ‘약한 유대(Weak Ties)’가 떠올랐다. 여기서 들려주었던 ‘약한 유대’의 예시가 인상적이었는데 ‘매일 아침 동네 단골 노점상에서 신문 사기,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웃과 눈인사 나누기’ 등과 같은 것들이었다. 이런 게 혁신사례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찌 보면 작고 소소한 행동들이 일상화되고 약한 유대가 활발히 작동하는 게 인류애의 시작은 아닐는지. 그리고 느슨한 인류애가 활발히 작동하는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닐지, 생각이 이어졌다. 중요한 건 인류애든 민주주의든 다소 추상적이고 무거워 보이는 이런 개념들이 온전한 생명력을 얻으려면 박제된 명사로써가 아니라 행동하는 동사로 작동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내 주위의 그녀들을 생각했다. 그녀들을 더 예민하게 살피고 기록하고 일상에서 우리만의 소소한 이벤트를 열고, 서로가 서로를 덕질하며 칭찬 감옥에 가두는 다정한 시간을 더 자주, 많이 만들고픈 마음이 샘솟았다.
어찌 보면 정치야말로 인류애의 발로, 인류애적 행위일진대,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서도 이런 약한 유대,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을 보고 싶다. 감동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위세를 과시하듯 줄줄이 늘어지는 인사말, 추상적 정책과 선언이 가득하고 맹목적 지지와 함성으로 이어지는 틀에 박힌 형식은 그만 보고 싶다. 선거철에만 만나는 정치인이 아니라 거리에서 시민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아침 신문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너무 현실감각이 떨어지나? 그렇다면 일단 우리끼리라도 먼저 인류애를 나누는 수밖에.
남경아 <50플러스 세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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