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하라의 사이언스 인사이드] 좀비 연어의 죽음
드넓은 바닷속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연어들에게는 일생에 한 번 운명의 스위치가 켜진다. 바로 자손의 번식이라는 유전자의 절대 명제에 따라, 알을 품고 태어난 고향 개울을 찾아 회귀하라는 본능의 스위치다. 한 번 켜진 스위치는 절대로 꺼지는 법이 없다. 바다에서 강의 상류에 이르는 머나먼 여정도,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고생길도, 그 길목에서 자신들을 노리고 있을 포식자에 대한 공포까지도 이들의 회귀 본능을 꺾지는 못한다. 이처럼 험난한 귀향길을 헤치고 고향에 도착할 즈음이면, 같이 출발했던 동료들 중 태반은 목숨을 잃었고 간신히 도착한 이들도 상처투성이에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이들은 마지막 힘을 짜내 강바닥에 알을 낳고 수정된 알을 자갈로 덮는다. 이제 유전자는 이기적 복제자가 연어라는 생존 기계에게 부여한 숙명은 끝난 듯 보인다.
여기까지가 잘 알려진 연어의 일생과 회귀 본능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연어는 산란 뒤 죽음을 맞이하지만, 그 방식이 어떤지는 덜 알려졌다. 사실 연어는 알을 낳은 뒤 바로 죽지는 않으며,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주까지 더 생존한다. 하지만 산란 이후의 연어의 삶은 살아 있다고 말하기조차 민망한 상태로 이어진다. 이미 오랜 여정으로 인해 체내의 모든 에너지를 써버린 연어는 움직일 힘도 없고, 면역 기능조차도 극도로 저하되어 있어서 그야말로 무방비한 상태다. 날카로운 곰의 발톱과 새의 부리, 인간의 낚싯줄보다 먼저 이들을 파고드는 건 각종 수생동물들의 유충들과 다양한 미생물들이다. 이들에게 있어 면역 기능이 사라진 연어는 그 자체가 마녀가 사라진 과자로 만든 집과 마찬가지다. 이들의 무시무시한 먹성에 피부가 벗겨지고 살이 문드러지며 눈은 하얗게 빛을 잃는 와중에도 여전히 연어의 숨은 붙어 있다. 연어는 문자 그대로 산 채로 썩어 들어가는 셈이다. 그렇게 연어는 산란 후에도 꽤 오랜 시간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머무르다가 모든 것이 허물어지고서야 겨우 삶을 마감한다.
이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 연어들에게 사람들은 ‘좀비 연어(zombie salmon)’라는 별칭을 붙여 주었지만, 영화 속 좀비는 불행을 더 크게 확산하는 부정적 존재인데 반해, 좀비 연어들은 그 모습과는 다르게 강 상류의 생태계를 풍성하게 유지시키는 매우 긍정적 존재들이다. 일반적으로 강의 상류는 바다에 비해 환경이 더 척박하다. 강의 상류는 유속이 빠르고 깊이는 얕으며 토양은 침식이 덜 되어 있으므로, 물속에 존재하는 유기물의 양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환경이 척박하면 생태계는 빈약해지기 쉽다. 그런데 연어는 이 궁핍한 이 생태계에 엄청난 양의 유기물을 운반하는 살아 있는 영양 탱크로 기능한다. 연어의 살이 얼마나 기름진지는 우리의 입맛이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 연어들이 떼를 지어 강의 상류로 돌아와서는, 길게는 몇주까지 더 생존하며 자신들의 몸을 아낌없이 주변 생태계에 기증하는 것이다. 연어는 곰과 새 같은 대형 동물들뿐 아니라 무려 137종의 미생물, 곤충, 균류, 수생무척추동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좀비화는 생체 영양 탱크의 공급 시기도 그 기간만큼 늘리는 역할을 하므로, 이로 인해 다소 척박했던 강 상류 생태계를 구성하는 작은 존재들의 수도 불어난다. 그리고 그즈음 다음 세대의 연어들이 태어난다. 연어 알의 부화 기간은 4~8주이며, 이는 좀비 연어가 사라지고 이들을 먹고 자란 작은 수생 동물들이 불어나는 시기와 일치한다. 이로 인해 갓 태어난 연어 치어들은 풍족한 먹잇감 속에서 작게는 그들의 삶을, 크게는 강과 바다를 잇는 커다란 생태계의 또 다른 고리를 다소나마 여유 있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연어의 회귀와 좀비화는 개체적 수준에서는 파멸을 향해 치닫는 어리석고 비참한 행위일 수 있지만, 거시적인 시각에서 보면 척박한 강 상류 생태계를 보완하고, 다음 세대의 연어들과 모든 생태계 구성원들의 다양성과 안정성을 보장하는 고귀한 희생이자 효율적인 전략이다. 당장 눈앞의 손해와 미래의 안정 사이에서 무게추를 어느 쪽으로 돌려놔야 하는지 조금 더 생각해볼 때인 듯싶다.
이은희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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