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광장] 차기 국회, 행정계획을 심의하라

김충제 2024. 2. 7.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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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책들이 급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정책들이 과연 정부의 계획에 있던 내용일까? 5년 후에 하려던 일을 앞당겨 시행하는 정도는 이해되나 계획에도 없던 일들이 신중한 검토 없이 발표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다.

정부는 멀리 보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각종 행정계획을 수립한다. 통상 5년 계획이 많으나 국토종합계획처럼 20년 시계 계획도 있다. 거의 모든 행정법에는 계획수립 의무조항이 들어 있다. 그러다 보니 행정계획 수는 550개가 넘는다. 문제는 잘 활용되지 않고 형식적으로 수립된다는 점이다. 빨리 달리는 자동차일수록 전조등을 멀리 비추어야 한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갈 길을 제대로 찾으려면 행정계획의 실효성이 높아져야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 행정계획이 활용되려면 구속력이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그 계획이 국회에 보고되어야 한다. 부처별로 차관(급)당 1개씩 중요 계획을 선정해 국회 소관 상임위 보고를 의무화하자. 국가재정운용계획은 그렇게 하고 있다. 국회 상임위는 계획을 심의하면서 여야가 한국의 미래를 같이 고민하는 기회를 가지게 될 것이며, 행정부에 대한 견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행정계획에 대한 사후평가가 미흡한 것도 미활용의 한 배경이다. 과학기술계 계획에 대해서는 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계획의 달성도를 평가한다. 행정계획에 대해서도 이 같은 사후평가가 있어야 한다. 국무조정실이 부처별로 주요 행정계획을 선정해 그 달성도를 평가해 공개해야 한다. 이를 정부업무 평가에 반영하면 효과가 더 클 것이다.

셋째, 행정계획을 평가하자면 성과지표가 개선되어야 한다. 성과지표는 투입(input), 과정(process), 산출(output), 결과(outcome) 지표가 있는데 가급적 결과지표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실상 많은 성과지표가 투입이나 과정 지표이다. 투입지표는 돈만 쓰면 된다는 예산낭비를 부르며, 과정지표는 하는 척만 하면 된다는 전시행정을 부추긴다. 이런 점에서 계획 달성도 평가와는 별도로 계획 자체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앞으로 국회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국회미래연구원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하면 어떨까 한다.

넷째, 행정계획 간 연계가 부족하다. 부처 간은 물론 같은 부처 내 부서 간에도 협의 없이 계획이 작성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행정계획에 실효성이 있을 리 없다. 부처 간 협의가 어렵다면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그 역할을 하길 권한다. 대부분의 출연연이 행정계획 수립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그 내용을 네트워크의 다른 출연연 멤버들과 공유해 검토를 받는 절차를 두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출연연 간 네트워크를 만들기를 권한다.

다섯째, 정부의 역할이 과도하게 설정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계획이 정부가 할 일을 적다 보니 민간이나 지방이 할 일까지 모두 중앙정부가 하겠다는 내용을 담기 쉽다. 정부가 유망품목을 고르고, 기업을 1000개 육성하는 식의 계획은 정부의 시장에 대한 과잉개입이다. 간혹 민간협회에서 받은 자료를 그대로 묶어 냈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도 많다. 행정계획은 민간과 지방에 자율·책임을 주고 이에 필요한 규제완화, 제도개선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끝으로 행정계획의 법정의무 여부를 재점검해야 한다. 꼭 필요한 계획은 법에 의무조항을 넣어야 한다. 반면 수립 필요성이 없어진 행정계획은 법정의무를 면해 주어야 한다. 계획 수립으로 인한 행정낭비는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행정계획 중에는 공개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원칙적으로 모든 행정계획은 공개되어야 하며, 비공개의 이유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행정계획의 실효성은 제고되어야 한다. 행정부가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기는 어렵다. 다음 국회의 역할을 기대한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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