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전철 밟는 HMM 매각… 산은·해진공 책임론 급부상
하림과 매각협상 최종 결렬
하림 "지속적 경영간섭 우려"
대상자 선정 무리수 지적도
기간지연 매각가 급락 불보듯
KDB산업은행 및 해양진흥공사(해진공)와 하림 그룹의 HMM 매각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 하림 그룹 계열 팬오션과 JKL파트너스 컨소시엄의 HMM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이 상실되면서 HMM은 당분간 채권단 관리체제로 유지된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선 산은과 해진공 등이 HMM 일부 경영권을 보유한 채 매각을 시도하려 한 게 협상 결렬의 최대 원인이라며, 과거 대우조선 매각이 늦어져 제값을 못받은 사례의 판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산은의 역할과 신뢰도도 추락하고 있다.
◇하림 "HMM 팔 생각 있었나…지속적 경영간섭 우려 있었다"
하림 그룹과 산은·해양진흥공사는 본인가 마감일이 한차례 연기되는 등 총 7주 동안 협상을 거쳤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하림 측은 "매도자 측이 인수 후에도 지속적으로 경영 간섭을 할 우려가 있었다"며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 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논란의 핵심은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1조6800억원어치의 영구채. 두 기관이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할 경우 32.8%의 지분으로 2대 주주로 올라서고, 하림 지분율은 38.9%로 떨어진다. 하림은 전환기간을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림이 경영권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하림 측은 산은 등에 △HMM의 현금배당 제한 △일정 기간 지분 매각 금지 △정부 측 사외이사 지명 권한 등의 조항이 담길 주주 간 계약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제한할 것을 요구해왔으나 산은 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부터 무리수
시장에선 우선협상대상자로 하림을 선정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말들이 나온다. 현금성 자산이 1조6000억원에 불과한 하림이 HMM을 인수할 경우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이라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다. 하림은 팬오션의 최대 3조원 규모 유상증자와 2조원 이상의 인수금융을 통한 자금조달 계획을 내놨지만 시장에서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하림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JKL의 특성을 고려해 5년간 지분 매각 제한에서 JKL을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산은은 JKL을 컨소시엄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역제안했다. 자금이 없는 하림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산은과 해진공 간 입장 차이도 협상 결렬의 한 요인이다. 산은 측은 공적자금 회수를 위해 가급적 빨리 HMM을 매각하겠다는 취지에서 접근했으나, 해진공과 해양수산부는 HMM의 현금성 자산이 해운업 외에 유용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은 이번에 매각을 진행하려는 의지가 강했지만, 해진공이 조직 논리를 우선하는 '몽니' 때문에 무산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해진공이 HMM 매각 이후 조직 축소 등을 우려해 비협조적으로 나왔다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대우조선 매각 판박이"…새주인 찾기 난항 예고
시장에선 이번 HMM 매각이 대우조선 매각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한화 그룹은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을 당시 6조3002억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산은의 미숙한 일처리로 매각 기간은 2023년 5월로 15년간 늦어졌고, 매각가격도 2조원으로 급락해 산은 무용론이 거셌다. 대우조선에 투입된 공적자금만 4조2000억원에 달해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는 여론을 피하지 못했다.
산은은 HMM 인수 희망 업체 재선정 절차에 다시 돌입해야 한다. 산은 관계자는 "재매각에 대해서는 해진공 등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며 "일단 바로 재매각을 추진할 수는 없고, 언제 다시 재매각 절차에 들어갈지 등에 관해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HMM 재입찰을 진행하더라도 국내 대기업이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문제 등 선결 과제 때문이다.
게다가 해운 경기가 내리막 추세여서 매각이 늦춰질수록 매각가는 더욱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3분기 HMM의 연결 누적 매출은 5조5274억원을 기록, 전년 동기 대비 5000억원 가량 줄었다. 당기순이익 역시 같은 기간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잠재 후보군으로는 인수전에 출사표를 던졌던 동원그룹과 LX그룹, 해운업 진출 의지를 피력한 한화오션 등이 거론된다.
김경렬기자 iam1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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