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의 애국혼, 카랑카랑한 판소리로 완창”
“너희 놈들이 나를 죽이는 것은 흉폭한 너희 목적이요. 나는 이 자리 죽난 건 당당한 나의 의무라 헐 것이니. 당장에 목숨을 끊으려무나.”
3·1만세 운동 105돌을 맞아 유관순(1902~1920) 열사의 칼칼한 애국혼이 카랑카랑한 판소리로 되살아난다. 충북 청주에 뿌리를 둔 소리꾼 조애란(48) 명창은 다음 달 1일 3·1절 오후 3시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창작 판소리 ‘유관순 열사가’를 완창한다. 충북에서 ‘유관순 열사가’를 완창하는 것은 처음이다.
“청주는 유관순 열사가 만세 운동을 했던 충남 천안과 이웃으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활동했던 애국 충절의 고장입니다. 소리와 더불어 열사의 애국혼이 청주와 충북, 천안과 전국으로 번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무대를 마련합니다.”
시대상·생애·독립운동·애국혼 등 담아
“고문 대목 할 때마다 목이 메어 걱정”
이준·안중근·윤봉길 등 열사가 보급
박동실-장월중선-정순임 잇는 적통
4·3사건·오송참사 등 시민과 함께해
작년 청강국악제 명인부 최우수상
‘유관순 열사가’는 유관순 열사의 짧지만 강렬했던 생애·독립운동, 애국혼 등을 생생하게 담았다.
첫 사설은 일본의 침략, 한일병탄 등 암울했던 시대상과 열사의 탄생, 가족 등 담담하다. 상경해 이화학당 학생으로 참여한 독립만세부터는 소리가 빠르고 거세다. “왜놈들 냅다질 꺼꾸러져 좌우에 총소리 꽝꽝. 무도한 왜놈들은 함부로 총을 쏘니 주검이 여기저기 수라장이 되었구나.” 고향 천안 목천에서 벌인 독립운동은 처절하다. “손에는 수갑이라 흐트러진 머리채는 두 귀밑에 늘어지고 비와 같이 흘린 눈물 옷깃에 모두 다 사무치어~”. 일제 헌병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대한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던 모습, 열여덟 생을 마감하면서 꿋꿋했던 기개는 비장한 소리로 표현했다. 조 명창은 “‘화덕에다 불을 피워 쇠꼬챙이에다 불을 붉게 달아서 살을 푹푹 찌르니~’하는 고문 대목은 할 때마다 목이 멘다. 공연 때 조금 걱정이 된다”고 했다.
조 명창은 ‘유관순 열사가’의 적통을 잇는다. ‘유관순 열사가’는 서편제 판소리의 큰 줄기 박동실(1897~1968) 명창이 창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명창은 해방 뒤 ‘유관순 열사가’뿐 아니라 이준, 안중근, 윤봉길 선생 등 독립운동가 네분의 열사가를 잇따라 창작·보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병헌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박동실의 삶과 판소리 활동’에서 “열사가는 비장·골계, 긴장·이완의 연속을 통해 삶의 진실 속으로 끌어당기는 기존 판소리와 달리 긴장·비장의 연속으로 이뤄졌다”고 썼다. 박 명창은 월북해 북에서 인민배우·공훈배우로 활동하면서, 남쪽에선 금기시됐다.
조 명창은 국가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흥보가’ 보유자 정순임(82) 명창한테서 ‘유관순 열사가’를 사사했다. 조 명창은 판소리 ‘흥보가’ 전수자이기도 하다. 조 명창의 영원한 스승 정 명창은 당대 최고로 불린 장판개(1885~1937) 명창의 조카이면서 장월중선(1925~1998) 명창의 딸이다. 정 명창은 7살 때부터 어머니 등에게 판소리를 익혔으며, 지난해 11월 국립극장에서 ‘흥보가’를 완창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 명창 집안은 지난 2007년 문화관광부가 지정한 ‘전통예술 판소리 명가’ 1호다.
조 명창은 지금도 틈틈이 경북 경주에서 생활하는 정 명창을 찾아 소리를 익힌다. 조 명창은 “박동실-장월중선 명창을 이은 정 선생님으로부터 2016년께 ‘유관순 열사가’를 익혔는데 지금도 그 맛과 멋, 맥을 찾으러 배움을 청한다. 소리 공부는 끝이 없는 듯하다”고 했다. 정 명창은 “살아 있는 한 소리하고, 제자들에게 소리 전하려 한다. 20여년 곁에서 지켜본 소리꾼 조애란은 본디 경상도 사람이지만 전라도 바탕의 소리를 잘하는 예쁘고 귀한 사람”이라고 했다. 정 명창은 제자의 ‘유관순 열사가’ 완창 무대를 찾아 판소리 인생과 ‘유관순 열사가’의 이야기를 들려줄 참이다.
조 명창은 천생 소리꾼이다. 동초제 ‘심청가’ 완창(2002년), 박동실제 ‘심청가’ 완창(2011년), 창작 판소리 ‘임꺽정가’ 발표(2020년), 동편제 ‘흥보가’ 완창(2021년), 박송희 바디 ‘놀보박’ 발표 등 쉼 없이 소리 길을 간다. 지난해 24회 청강 국악제 명인부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무대에만 서는 소리꾼은 아니다. 국민권익위원회 청렴 교육용 ‘청렴가’를 창작해 해마다 60~80차례 공연한다. 제주 4·3사건,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역사·문화·시민과 함께 하는 무대라면 빠지지 않는다. 고수로 조 명창과 1천 차례 이상 작품을 함께 한 남편 김철준(47)씨는 “곁에서 본 조애란의 소리는 폭이 넓다”며 “최근 공부하는 수궁가·안중근 열사가 완창과 더불어 더 많은 이들이 우리 소리를 편하고 쉽게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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