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 중 ‘상세불명 조현병’…삭발한 머리 위로 미용사 눈물 뚝, 뚝
내 아이에게 온 ‘F20.9 상세불명의 조현병’
기적 없었지만, 기적보다 더 큰 마음 받은 날
조현병의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이다. 치료하면 현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듯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와, 치료로 뇌신경망이 적절하게 조율돼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한창 자라는 시기잖아요. 뇌도 이 시기에 폭발적으로 자라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은 몰라요. 이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아오기도 하거든요. 성장통처럼.” 의사는 말했다. 사람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더니, 이 말에 너무 기대를 걸었나보다. 구급차를 불러 다시 입원할 때도, 1인실에 입원할 때도, 안정실에 갈 때도, 금방 좋아질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1년 뒤에도 아이는 맞는 약을 찾지 못했고 증상은 지속됐다.
진단까지 6개월, 망상과 환청이 주 증상
도대체 병명이 무엇일까? ‘조현병은 아닐 거야, 성장기에 잠깐 나타나는 증상일 거야’라고 주문을 외웠다. 조현병은 한 달에서 6개월까지 환청과 망상 등 두 가지 이상의 주증상이 지속되고, 심리검사 결과와 관찰 소견을 종합해 2명 이상의 전문의가 진단한다. 그래서 6개월이 중요한 시간이다.
이 기간에 뇌파 검사와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도 진행한다. 뇌종양 등 다른 뇌질환으로 생긴 증상인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진단명이 달라지고 치료도 달라져야 하니까.
심리검사는 지능검사와 다면적인성평가(MMPI)와 같은 객관적 검사와 투사 검사인 로르샤흐(Rorschach) 같은 주관적 검사를 모두 진행한다. 병동에 갈 때면 아이의 머리맡에 못다 한 두꺼운 검사지가 있었다. 그 검사를 숙제하듯이 했다.
급성기에는 인지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심리검사를 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이의 지능지수는 발병 전 검사에서 상위 1%로 나타났으나, 발병 뒤 검사 때마다 하향곡선을 그렸다. 집중력을 유지하기 어렵고, 인과관계를 통한 계획수립·동기부여·문제해결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지는 조현병의 진행 때문이었다.
아이는 엄마 아빠를 해치는 사람이 있다는 망상과 그 나쁜 사람들이 ‘나오라’고 말하는 환청을 들었다. 그리고 식은땀을 흘리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였다. 게다가 가까운 사람이 똑같은 모습의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믿는 카그라증후군(Capgras syndrome)도 여전했다.
조현병 증상은 다섯 가지로 분류된다. △망상 △환각 △이해하기 힘든 혼란스러운 언어 △심한 혼란이나 긴장증적 행동 △빈약한 언어와 무감정, 사회적 활동 위축이 그것이다. 이 다섯 증상은 왜곡된 정신기능이 외부로 표출되는 양성 증상과 정신기능이 결핍돼 나타나는 음성 증상으로 구분된다. 이 중 빈약한 언어와 무감정, 사회적 활동 위축만 음성 증상에 해당한다. 아이의 경우는 대표적 양성 증상인 망상과 환청이 주증상이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어디론가 숨고 싶다
6개월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모든 검사가 끝난 다음, 아이에게 내려진 진단은 F20.9 상세불명의 조현병(Schizophrenia, unspecified)과 F41.0 기타 불안장애_공황장애(Panic disorder[episodic paroxysmal anxiety])였다.
조현병 중에서도 아이가 진단받은 F20.9 상세불명의 조현병은 무엇일까?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 따르면 조현병(F20)은 주증상 형태에 따라 편집형, 파괴형, 긴장성 등 9가지 세부 유형으로 나뉜다. 망상과 환청이 주증상인 아이의 경우 편집·긴장 등의 증상이 없기에 F20.9 상세불명의 조현병으로 진단이 나온 것이다.
아이가 처음 진단받은 2008년 당시 조현병의 병명은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이었다. 이는 1908년 스위스 의사 오이겐 블로일러가 명명한 병명이다. 당시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로 불리던 정신증이 조발성 치매와는 다른 예후를 보인다고 해서 희랍어인 ‘schizophrenia’로 지었다고 한다. 이 단어를 일본에서 ‘정신분열병’으로 번역해 사용했고, 한국에 그대로 전해져 쓰였다.
정신분열병이란 병명이 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강화하고 치료에 부정적 인식을 준다는 의견 때문에 정신분열학회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공동으로 ‘정신분열병 병명 개정위원회’를 결성한 것이 2008년 11월이었다. 위원회는 2010년 3월 조현증·사고이완증·통합증 등을 개정 병명 후보로 선정하고, 2010년 11월 의사와 환자 가족을 대상으로 선호도 조사와 국립국어원의 자문을 거쳐 개정 병명을 ‘조현병’으로 최종 결정했다.
조현병의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라는 뜻이다. 치료하면 현악기가 좋은 소리를 내듯 정상적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와, 치료로 뇌신경망이 적절하게 조율돼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 2009년 병명 개정 때, 우리 가족이 참여하던 환자와 환자 가족 커뮤니티 ‘아름다운 동행’에서는 병명 개정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조현병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회원도 있었다.
하지만 개정 병명 후보군 가운데 가장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 병명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했다. 커뮤니티는 3689명의 서명이 담긴 문서를 대한정신분열병학회에 보냈다. 병명이 개정되자,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정신분열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줄어들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정신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여전히 단단했다. 아니 더 강화됐다. 연일 보도되는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 기사를 접할 때마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어디론가 숨고 싶다. 가슴에 박힌 주홍글씨를 들킬까봐. 조현병이라는 주홍글씨 말이다.
그 눈물의 온기가 아직도 뺨에 남아
첫 입원을 하고 1년이 지난 2009년 4월, 아이는 또다시 입원했다. 나는 동네 미장원에 들렀다. “삭발해주세요.” 나의 주문이었다.
1년 지나면 멀쩡하게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고 했는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머리를 밀기로 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리고 신에게 따져 물으려고.
삭발이 끝나고 머리를 감느라 누워 있었다. 얼굴 위로 따듯한 것이 떨어졌다. 미용사의 눈물이었다. “20년 넘게 미장원 하면서 여자 손님 머리 밀어보는 건 처음이에요. 무슨 사연인지 모르지만 잘되길 바랄게요.” 그 눈물의 온기가 아직도 뺨에 남아 있다. 그런 마음 덕분에 16년을 버틸 수 있었다. 다정한 마음들 덕분에.
윤서 여성학 박사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 16년째 조현병과 동거하는 28살 청년 ‘나무씨’(가명) 이야기를 어머니 윤서(필명)가 기록한 글. 조현병을 앓는 나무씨의 시점에서 이지안이 그림을 그립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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