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무리수 자인한 공정위, ‘사전지정’ 재검토키로… ‘네카오’ 겨냥 힘 빠지나

세종=김민정 기자 2024. 2. 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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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법 정부안 발표 미룬 공정위
국회와 업계 반대에 원점에서 재검토
‘사전지정’ 빠지면 플랫폼법 맹탕 지적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던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한다. 특히 플랫폼법의 핵심인 ‘지배적 사업자 사전지정’을 어떻게 할지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네이버, 카카오 등 특정 기업을 겨냥하려던 움직임에 힘이 빠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법안 재검토 필요성을 인정한 공정위는 이번 주 진행하려고 추진했던 플랫폼법 정부안 발표도 미뤘다. 플랫폼법 도입을 발표한 뒤 업계의 극렬한 반대에 국회의 부정적 의견까지 더해지자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경기 성남의 네이버, 카카오 본사(왼쪽부터). /조선DB

◇ 국회·업계 반대에 숨 고르기 들어간 공정위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7일 브리핑에서 “국내외 업계 및 이해관계자와 폭넓게 소통하고, 지정 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열어놓고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시장 내 독과점적 지위를 가진 플랫폼의 사전지정 제도를 도입할지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의미다.

불과 2주 전인 지난달 24일 공정위는 예정에 없던 약식 기자간담회를 열고 “법제정이 늦어지면 역사의 죄인”이라며 강경하게 플랫폼법 추진 의사를 밝혔다. 당시 공정위는 ‘사전지정, 사후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플랫폼 사업자들이 독점할 경우 수수료 인상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피해가 커지는데 사후에 조사에 나서면 이를 바로잡기가 어렵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국회와 업계 반대에 사전지정을 재검토하며 사실상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한 대형 로펌 공정거래 분야 전문가는 “애초 충분한 검토 없이 법안 제정을 추진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라면서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먼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공정위가 정부안을 발표한다고 해도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도 하다. 절차적으로 정당성을 쌓아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실제 국회의 분위기도 공정위에 우호적이지 않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5일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규제 이슈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통해 플랫폼법 도입보다 기존의 규제 방식을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정 기업을 사전지정해 규제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봤다.

입법조사처는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남용행위를 규제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적용 대상이 되는 사업자를 사전지정하는 방식의 규제 도입 필요성 또는 시급성이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업계와 스타트업 업계뿐만 아니라 일부 학계, 소비자 단체도 플랫폼법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이들은 플랫폼 규제가 소비자 후생을 저해할 것이라며 정부의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구글, 애플 등 미국 빅테크 기업도 제재 대상에 포함되면서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AMCHAM)는 “한국이 플랫폼법 통과를 서두르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재계는 ‘통상 마찰’을 언급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반면 소상공인들은 플랫폼법 제정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2∼5일 소상공인 57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4.3%가 플랫폼법 제정에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들의 절반 가까이(49.6%)는 온라인 플랫폼과의 관계에서 가장 애로를 느끼는 부분으로 ‘과도한 수수료’를 꼽았다.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뉴스1

◇ 플랫폼법에서 ‘사전지정’ 빠질까 촉각

발표 시점이 연기된 가운데 공정위는 ‘사전지정’ 방식을 두고 다각도로 검토할 방침이다. 공정위가 추진하려던 플랫폼법의 핵심은 몇 곳을 집어 독과점 플랫폼의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지정하고, 멀티호밍 금지 등 4대 반칙행위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위법행위가 발생하기 전 기업들을 지정해 묶는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했다.

과거 공정위는 일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사업자를 시장지배적사업자로 지정하고, 이들이 시장지배력을 남용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시장지배적사업자 지정고시제도는 1981년 공정거래법 시행 당시 도입돼 1999년까지 시행됐다. 당시 행정력을 남용한다는 비판이 일어 폐지됐는데, 이번에 플랫폼법에서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한 대형 로펌 고문은 “공정거래법 위반은 문제가 된 행위가 있으면 조사를 개시하는 게 정석인데, 플랫폼법은 과거로 거꾸로 가고 있다”라며 “사전지정할 경우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촘촘하게 규제할 수 있어 기업 활동을 저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 형식을 채택해 플랫폼법을 만든 것이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 적합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EU는 미국 빅테크 중심의 글로벌 플랫폼을 규제하기 위해 DMA를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은 국내에 플랫폼 대기업들이 있고, 미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어 EU와는 입장이 다르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사전지정과 비슷한 효과를 내면서도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덜한 대안이 있는지 모색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전직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플랫폼법에서 사전지정이 빠지면 기존의 공정거래법으로도 충분히 제재할 수 있어 플랫폼법을 만드는 의미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플랫폼법 추진이 백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업계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을 방안을 찾기 위한 것으로, 플랫폼법 입법 계획은 유지된다”라며 “사전지정 외에 대안이 없다는 판단이 나올 경우 사전지정을 포함해 입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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