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MM 매각 후 경영 영향력 고집하다 좌초···무리한 M&A에 산업 경쟁력만 멍든다
정부 '경영권 개입' 둘러싼 갈등에
입장차 못좁혀 협상 재연장도 결렬
'주인없는 회사' 우군 찾기 어려워
해운동맹 재편에 경쟁력 저하 우려
친환경 기술 등 투자 지연도 문제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6월 기자회견을 자처해 “해묵은 구조조정 과제를 조기에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HMM(011200)을 콕 집어 “연내 주식매매계약(SPA) 체결도 가능하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낙관적 전망이 무색하게 협상은 해를 넘겨서까지 이어졌고 급기야 협상이 최종 결렬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KDB생명에 이어 또 한 차례 구조조정에 실패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 내부에서조차 “산은이 구조조정의 방향을 완전히 잃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매각 논의에 관여한 한 정부 인사는 “지난해 초 대통령실에서도 HMM 매각 시점을 두고 장고하고 있었는데 산은이 ‘지금 내놓으면 정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면서 “결과적으로 시장 여건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나섰다가 기업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모양새가 됐다”고 지적했다.
HMM 매각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선 가장 큰 요인은 표면적으로는 JKL파트너스다. 하림 측은 ‘5년간 주식 보유 조건’에 대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재무적투자자(FI)의 특성상 JKL파트너스는 예외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매각 측은 이를 거부했다. 3년으로 줄이는 안과 하림그룹이 독자적으로 추진하는 안도 거론됐으나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매각 측 관계자는 “투기 자본들이 대부분 단기 차익을 실현하고 빠지는 부분이 있어 HMM의 보유 현금에 대해 해운업에 재투자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다”며 “해운업 중장기 발전을 위해서는 (하림 안이) 그렇게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정부의 ‘경영권 개입’을 놓고 벌어진 갈등 영향이 컸다. 산은과 해양진흥공사는 중요 경영 사항에 대해 사전 협의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일정 기간 경영권 관여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림 측은 잔여 영구채 3년간 주식 전환 유예와 배당 제한 등의 제안 사항들을 다 거둬들였는데도 경영 간섭까지 받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했다는 후문이다.
하림그룹 측은 “그동안 은행과 공기업으로 구성된 매도인 간 입장 차이가 있어 협상이 쉽지 않았고,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기업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해운동맹이 재편되는 상황에서 업황은 불확실한데 정부의 경영권 제약이 있으면 신속한 의사결정과 유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우려했다”고 토로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매각 측이 계속해서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HMM을 인수하려는 기업이 나오겠냐는 반응이 나온다. 단기 차익 실현이 아닌 엑시트에 대해서는 유연하게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매각 측은 “사전에 조율한 결과로 협상을 했다”며 “2차 연장을 하지 않은 것은 조건 자체가 서로 간에 괴리가 커서 협상에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제 해운선사들이 생존을 위해 동맹 관계 재편에 열을 올리는 사이 새 주인 찾기에 급급한 HMM만 소외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세계 5위 선사인 독일의 하파그로이드는 HMM이 포함된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에서 지난달 탈퇴했다. 디얼라이언스 내에는 아시아권 선사만 남게 돼 전체 선복 점유율에도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로운 동맹 관계 형성이 필수적인데 ‘주인 없는 회사’인 HMM이 우군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매각이 늦어질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물류대란, 친환경 기술 투자 지연 문제도 우려된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매각 무산으로 HMM이 주인 없이 ‘정부가 지원하는 조직’으로 계속해서 비춰질 것”이라며 “하파그로이드는 물론 남아 있는 동맹들도 회사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양수산부 고위 관계자는 “당장은 해운 얼라이언스 개편 등을 신경 쓰고 있다”며 “국내 유일 국적 선사인 HMM을 뒤에서 지원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매각 측이 최소 6개월에서 1년 안팎 정도의 시간을 가진 뒤 재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 나서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게 업계의 기대다. 하림그룹 컨소시엄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동원그룹 측도 HMM 인수 재추진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 관계자는 “매수자 쪽에 새로운 움직임이 없기 때문에 재매각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황정원 기자 garden@sedaily.com김경택 기자 taek@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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