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아시아 13위에 참패…클린스만호, 월드컵 본선도 안심 못한다
[스포티비뉴스=김건일 기자] 서아시아 요르단은 FIFA 랭킹이 87위로 23위 한국과 무려 64계단 차이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13번째. 바레인(86위), 중국(79위), 오만(74위) 등이 요르단을 아래에 두고 있다.
선수단 무게는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트랜스퍼마크트에 따르면 요르단 국가대표팀의 선수 전체 가치는 1365만 유로. 프랑스 리그앙 몽펠리에에서 소속인 무사 알 타마리(600만 유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요르단 리그나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리그 등에서 뛰고 있다.
한국 국가대표팀의 시장 가치는 무려 1억9300만 유로에 이른다. 바이에른 뮌헨 수비수 김민재가 6000만 유로로 가장 높고 토트넘 홋스퍼 손흥민이 5500만 유로, 이강인(파리생제르맹)과 황희찬(울버햄턴 원더러스)이 나란히 2200만 유로로 뒤를 잇는다.
역대 전적에서도 한국은 요르단을 압도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요르단과 6경기에서 3승 3무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만나기 전까지 3연승 중이기도 했다.
한국과 요르단이 4강에 묶였을 때 축구 통계 전문업체 옵타는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한국이 요르단을 꺾을 확률이 69.6%라는 통계를 냈다. 해외 도박사들 역시 한국이 이긴다에 돈을 몰았다.
그런데 슈퍼컴퓨터와 도박사들의 예상을 뒤집은 결과가 7일(한국시간) 카타르 알 라이얀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2023 아시안컵 4강전에서 나왔다. 한국은 후반 8분 요르단 야잔 알 나이마트에게 선제골을 내줬고 후반 11분 무사 알 타마리에게 추가골을 허용하면서 0-2로 무릎을 꿇었다.
지켜본 이들은 모두 요르단의 완승, 한국의 참패로 이 경기를 평가했다. 한국은 볼 점유율이 67%로 앞섰지만 그것뿐이었다. 요르단은 무한 전방 압박과 돌파 능력이 빼어난 알 나이마트와 알 타마리를 앞세운 매서운 역습으로 한국을 흔들었다. 요르단이 슈팅 수 12-5로 앞섰고 유효 슈팅은 요르단이 7개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단 하나도 없다. 이재성의 헤딩 슈팅이 골대에 맞은 것이 이날 경기 유일한 득점 기회였다.
손흥민은 "매우 실망스럽다. 결과에 망연자실했다. 요르단은 이번 대회에서 놀라운 여정을 보내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고 그럴 자격이 있다. 그들은 끝까지 싸웠지만 우리에겐 매우 실망스러웠던 이날 경기였다"고 인터뷰했다.
요르단은 한국을 상대로 경고장을 던진 적이 있다. 요르단은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같은 E조에 속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0일 조별리그 2차전을오 한국을 상대했다.
대회가 열리기 전 요르단의 흐름은 좋지 않았다. 지난해 9월 A매치 두 경기에서 노르웨이에 0-6, 아제르바이잔에 1-2로 졌고 아시안컵 대비로 치른 10월 A매치 두 경기에선 이란과 3-1, 이라크와 2-2로 비겼다. 이어 11월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타지키스탄과 1-1로 승패를 가리지 못한 뒤 사우디아라비아에 0-2로 무릎을 꿇었다.
이어 아시안컵 본선 최약체로 꼽혔던 레바논과 평가전에서도 1-2로 무릎을 꿓었다. 개최국 카타르와 평가전에서 2-1로 이기면서 8경기 만에 승리를 신고했지만 우승 후보 일본을 만나 1-6으로 무너졌다. 요르단으로선 '벽'을 느낀 경기였다.
선수층이나 상대 전적, 그리고 최근 흐름을 봤을 때 한국과 요르단의 조별리그 2차전은 일방적인 흐름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승패보다 한국이 몇 골을 넣을지가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 요르단은 한국을 혼쭐냈다. 전반 9분 손흥민의 페널티킥 선제골로 한국이 앞서갔으나 전반 37분 박용우의 자책골로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어 전반 추가 시간 요르단 에이스 중 한 명인 야잔 알 나이마트가 역전골을 터뜨려 한국을 패배 위기로 몰고갔다. 후반 추가 시간 야잔 아부 알 아랍의 자책골이 나오면서 한국은 가까스로 2-2로 경기를 마쳤다.
한국을 혼쭐낸 팀은 요르단만이 아니다. 조별리그 3차전 상대였던 말레이시아는 FIFA 랭킹 130위로 이번 대회에 참가한 팀 중 최약체로 꼽혔다.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2패로 일찌감치 탈락을 확정한 채 한국을 상대로 맞이했다. 요르단과 경기에서 '예방 주사'를 맞은 한국이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고 조 1위로 16강에 오를 것이 예상됐다.
그런데 이 경기에서도 말레이시아가 한국을 몰아세웠다. 후반 80분이 넘어설 때까지 한국을 상대로 2-1 리드를 잡았다. 이강인의 동점골에 이어 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의 페널티킥 역전골로 한국이 3-2로 승리를 거두는 듯 했으나 후반 추가 시간 15분이 흘렀을 때 말레이시아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다. 동점골이 터졌을 때 벤치에 있는 선수들까지 모두 뛰쳐나와 마치 우승한 듯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말레이시아가 따낸 1점은 아시안컵 본선에서 1980년 쿠웨이트 대회 이후 44년 만에 승점이다. 또 지난 두 경기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해 김판곤 감독에게 비난 화살이 쏟아졌는데 김민재가 버티는 한국을 상대로 무려 3골을 넣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 2무를 거둔 결과 E조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E조 1위였으면 D조 2위인 일본을 16강에서 만나고 8강 상대는 이란이 유력했으나 E조 2위로 진출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16강에서 만나게 됐다. 하지만 한국은 토너먼트에서도 고전했다. 56위 사우디아라비아에 선제골을 허용하고 끌려가다가 후반 추가 시간 극적인 동점골로 경기를 연장으로 끌고갔고 승부차기 끝에 4-2로 8강에 올랐다. 호주와 경기도 쉽지 않았다. 수 차례 실점 위기를 넘긴 끝에 후반 추가 시간과 연장전에 손흥민의 투혼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호주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대회 우승 후보였지만 객관적인 전력은 한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팀이다. 두 경기 연속 끈질기고 극적인 승리로 '좀비 축구'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선수단 가치 차이를 고려했을 땐 대회 전 혹은 경기 전까지라도 예상하기 어려웠던 그림이다.
이번 대회 클린스만호는 경기 결과뿐만 아니라 내용도 혹평받는다. 조별리그에서 한 수 아래 팀을 상대로 무려 6골을 내줬고 16강전과 8강전을 더하면 5경기에서 8실점으로 기록이 늘어난다. 이는 요르단이 한국을 상대로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됐다. 후세인 아무타 요르단 감독은 경기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능력이 있는 팀이다. 5경기에서 8골을 허용한 팀을 상대하게 됐으니 그 약점을 공략하기로 했다"며 "한국은 쉬운 상대가 아니지만 특정 영역에서 압박한 게 잘 먹혔다. 클린스만 감독은 좋은 지도자고 그와 한국 선수들을 존중하지만, 우리가 더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선 요르단뿐만 아니라 서아시아 팀들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요르단이 결승에 선착해 있는 가운데 전통의 강호 이란과 개최국 카타르가 4강전을 치러 상대를 가린다. 서아시아 팀끼리 결승전은 2007년 대회에서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이후 16년 만이다. 또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한 타지키스탄이 8강까지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고 이라크는 우승 후보 일본을 조별리그에서 2-1로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서아시아에선 이번 아시안컵 결과를 전력 강화를 위한 꾸준한 투자의 성과로 여기고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일본 등 강팀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이 이들에겐 가장 큰 성과다.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은 본선 참가곡이 기존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AFC 산하 국가에 배정되는 본선 출전권이 4.5장에서 8.5장으로 늘었다. 2022 카타르 대회로 10회 연속 본선 진출을 달성했던 한국으로선 11회 연속 본선 진출을 확신할 수 있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클린스만호는 아시아에서 랭킹이 13번째인 요르단에 1무 1패로 고전했으며 23번째인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겼다. 그것도 손흥민과 이강인, 김민재 등 유럽 축구를 호령하는 황금세대들을 이끌고 나선 대회에서 거둔 결과다. 월드컵 본선 출전권이 무려 4장 늘어났지만 이번 대회에서 클린스만호가 보여 준 경기력은 본선에 진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영국 디애슬래틱은 요르단과 경기가 끝난 뒤 "클린스만이 한국 대표팀에 남는다면 '좀비 대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베를린 매체 벨트(welt)는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에서 계속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대회 전에도 한국 대표팀에 부임하고 치른 5경기에서 이기지 못해 비판을 받았다.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도 환영받지 못했다"며 "팀은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다. 클린스만 감독을 향한 비판은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이 한국 지휘봉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일축했다.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경기 결과는 실망스럽지만, 요르단이 승리할 만 했다. 요르단이 보여준 투쟁심과 경기력을 보면 결승에 진출할 자격이 있었다"고 칭찬한 뒤 '우승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로 책임질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어떠한 계획도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 잘 분석해서 앞으로의 경기들을 더 잘 준비하겠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2026 북중미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 중국과 싱가포르를 차례로 꺾고 승점 6점으로 C조 1위에 올라 있다. 다음 달 21일과 26일 태국과 홈 앤드 어웨이로 2연전을 벌인다. 두 경기 결과에 따라 3차 예선 진출을 조기에 확정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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