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면허는 불사조? 판 달라졌다…"파업" 으름장 의협, 고민 깊어진다
정부의 의대 증원안 발표에 반발한 대한의사협회가 설 연휴 후 총파업 개시를 예고한 가운데, 파업에 나설 경우 의사 면허가 취소될 가능성에 대해 관심이 쏠린다. 실제 지난 6일 대한의사협회가 연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의사 면허 취소까지 각오했다"고 언급해서다.
최근까지만 해도 의사가 성범죄나 강력범죄를 저질렀어도 면허까지 취소될 근거는 없었다. 게다가 수년 전까지만 해도 면허가 취소됐더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재교부 신청 후 발급받을 가능성이 100%에 가까웠다. 의사 면허가 '방탄 면허', '철밥통 면허', '불사조 면허'로 불린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총파업'은 그간 의료계가 대정부 압박용으로 내밀던 단골 카드였지만, 이번에 총파업을 강행할 경우 '의사 면허'를 내걸어야 할 수도 있다. 지난해 5월 19일 공포 후 즉시 시행된 의료법 개정안, 이른바 '의료인 면허 취소법'에 근거해서다. 이 개정법에 따르면 의사가 불법 파업으로 업무 방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등으로 환자가 치명적인 피해를 보고, 금고 이상의 형이 나오면 의사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업무개시명령도 총파업을 진행하려는 의협에겐 걸림돌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 휴업 또는 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으면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 의료법(88조, 59조 3항)에 따르면 의료인 및 의료기관 개설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 혹은 3000만 원 이하 벌금형(형사처벌)에 처할 수 있다.
또 해당 의료기관은 업무정지 15일(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을 처분받을 수 있다. 한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는 "지난해 개정된 의료법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형사처벌과 함께 업무개시명령에 응하지 않은 의료인 중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요건을 검증할 만한 기준이 애매모호한 탓에 2019년만 해도 의사 면허 재교부 비율은 100%였다. 하지만 범죄자가 버젓이 의사로 근무하는 데 대해 사회적 공분이 일면서 재교부 심사 구조가 강화됐다. 본지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연도별 의사면허 재교부 신청 및 결과'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00%였던 의사면허 재교부 비율이 2020년 85.5%, 2021년 41.8%, 2022년 32.9%, 지난해(3월 기준) 20%로 꾸준히 줄었다.
이는 국회 등의 지적으로 의사면허 재교부 기준이 강화된 때문이다. 복지부는 2020년 의사면허 재교부를 심의하는 소위원회를 구성, 소위원회 위원 7인 중 4명 이상이 승인할 경우에만 의사면허 재교부를 승인하도록 했다. 제도 운영 초기에는 소위원회 위원 중 과반수인 4명이 의사라 의사 비율이 높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에 복지부는 2021년부터 시민단체 추천 비의료인 전문가를 위원으로 추가했다. 그러면서 의사면허 재교부율이 낮아졌다.
단,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이 교육 프로그램만 이수한다고 해서 면허를 재교부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면허 재교부를 심의하는 위원회 전체 위원 9명 중 과반인 5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복지부는 연구 용역을 거쳐 연내 면허 재교부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면허가 한 번 취소된 의료인은 취소 사유에 따라 적게는 1년간, 길게는 10년간 재교부 신청을 할 수 없다.
이에 대해 복지부 정경실 보건의료정책관은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에 대한 교육을 통해 의료인의 윤리의식을 제고하고, 면허 재교부 후 다시 위법행위로 인해 반복해 면허취소가 되는 사례를 방지해 의료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반면 의협은 자율규제권을 강조하며 의료단체에 의사면허 관리 권한을 줄 것을 요구해왔다. 의협은 지난해 11월 '대한의사면허관리원 설립 추진단'을 꾸린 데 이어 '자율정화특별위원회'를 운영하며 의료계 자정 활동을 통한 대국민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는 전략을 밝힌 바 있다.
한편 정부는 6일, 의료법 제59조에 따라 대한의사협회 집행부 등에 대해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를 명했다. 정부는 "명령을 위반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주는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행정 처분, 고발 조치 등을 통해 법에서 규정한 모든 제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 명령을 위반한 경우 의료법에 따른 면허 정지 처분받거나 형법상 업무방해죄, 이에 대한 교사 방조범으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날 의협이 '총파업'을 거론하자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로 상향했다. 7일에는 시·도 보건국장 회의를 열고 각 지자체에 비상 진료 대책 상황실을 설치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료인들도 정부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분들이기에 환자의 곁을 지켜주길 바란다"면서도 "만에 하나 불법적인 행동을 한다면 법에 부여된 의무와 원칙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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