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통제해야 할 법원이…‘영장 사본으로 체포 가능’ 논란

전광준 기자 2024. 2. 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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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주한 피의자를 체포할 때 영장 사본을 제시하더라도 추후 영장 원본을 제시하면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영장 원본 제시' 원칙보다 수사기관의 수사 편의에 더 무게를 둔 판결이라고 분석했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영장 원본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며 "수사기관의 영장 사본 활용 등 수사절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이를 확실히 하는 법 제·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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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도주한 피의자를 체포할 때 영장 사본을 제시하더라도 추후 영장 원본을 제시하면 적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영장 원본 제시’ 원칙보다 수사기관의 수사 편의에 힘을 실어준 판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압수수색의 경우는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 위법이라고 보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 민사12부(재판장 김성곤)는 ‘스폰서 검사’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고교동창 김희석씨가 당시 박아무개 서울서부지검 검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했다. 김씨는 지난 2021년 박 검사 등이 자신을 체포할 때 구인영장 사본을 제시했는데, 이것이 위법하다며 위자료를 구하는 소송을 냈다.

앞서 2016년 9월5일 김씨는 강원도 원주 한 캠핑장에서 자신의 개인 비리 혐의를 수사하던 서울서부지검 수사관 등에게 구인됐다. 당시 검찰 수사관은 김씨의 구인영장 사본을 제시하며 피의사실 요지 등을 밝혔다. 김씨가 서울서부지법으로 잡혀 오자 박 검사가 영장 원본을 수사관에게 넘겼고, 수사관은 이 원본을 김씨에게 제시했다.

김씨는 검찰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자신의 소재를 확인한 것이기 때문에 형사소송법에서 구속영장 원본 제시의 예외로 삼고 있는 ‘급속을 요하는 때’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때를 ‘형집행장을 소지할 여유 없이 우연히 마주친 때’로 보는데 검찰은 자신의 위치를 미리 알고 온 것이라 사본 아닌 원본을 갖고 올 여유가 있었다는 취지다. 또한 영장 원본을 검찰이 임의로 복사한 것은 형사사법절차 훼손이라고도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는 2심 판결 직후 대법원에 상고했다.

전문가들은 ‘영장 원본 제시’ 원칙보다 수사기관의 수사 편의에 더 무게를 둔 판결이라고 분석했다. 한 영장전담판사 출신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영장 사본 제시 근거로 드는 ‘긴급성’ 범위를 법원이 넓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영장 사본 활용 금지 규정이 없어 법원도 ‘수사 편의’에 무게를 두게 되는 것”이라고 짚었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영장 원본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며 “수사기관의 영장 사본 활용 등 수사절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이를 확실히 하는 법 제·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형사소송법의 원칙은 ‘영장 원본 제시’지만 사본 제시와 관련된 명확한 규정은 없다. 국책기관인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은 2022년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수사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수사절차법이 제정돼야 한다”며 ‘체포영장은 반드시 원본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수사절차법 제정을 제안한 바 있다.

반면 압수수색의 경우에는 영장 원본을 제시하지 않으면 법원이 위법 증거 수집으로 본다. 지난 2017년 9월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팩스로 영장 사본만 제시하고 진행한 포털사이트 압수수색을 “영장 사본의 제시는 영장주의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한다”고 보고 효력이 없다고 봤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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