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 안녕' 김하성과 휴스턴이 같이 웃었다… 알투베 휴스턴과 5년 계약, 비지오 전설에 도전한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어렸을 때부터 유독 키가 작았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한 선수는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이라는 커다란 꿈을 품고 16살에 미국에 왔다. 당시 계약금도 특별한 건 아니었다. 특급 유망주들은 100~2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을 때, 호세 알투베(34‧휴스턴)의 계약금은 단 15만 달러였다. 그를 보는 메이저리그의 시선과 기대치가 담긴 대목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알투베는 시간이 흘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작은 거인’으로 우뚝 섰다. 키 168㎝의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 알투베가 자신과 프로 경력 평생을 함께한 휴스턴에 남는다.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 나가지 않고 다시 휴스턴과 연장 계약하며 의리를 보여줬다. 계약 기간, 나이를 고려하면 사실상 종신 휴스턴맨으로의 길을 열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MLB.com) 등 현지 언론들은 “휴스턴과 알투베가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고 7일(한국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알투베는 2024년 시즌을 끝으로 FA 시장에 나갈 예정이었으나 이번 계약으로 팀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알투베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매년 3000만 달러를 받는 것을 포함, 5년 총액 1억2500만 달러에 계약하며 팀에 잔류했다. 알투베의 올해 연봉 2900만 달러는 그대로 유지된다.
만약 알투베가 이 계약을 모두 완주한다면 휴스턴에서 총 19시즌을 보낸다. 휴스턴 프랜차이즈 역사상 19시즌 이상을 뛴 선수는 딱 하나, 전설의 2루수인 크레이그 비지오다. 비지오는 1988년 휴스턴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마지막 시즌이 된 2007년까지 20시즌을 모두 휴스턴에 바쳤다. 그리고 2850경기에 나갔고, 통산 타율 0.281, 291홈런, 1175타점, 3060득점, 414도루, OPS 0.796의 성적을 남기고 은퇴했다. 비지오는 7번의 올스타와 4번의 골드글러브, 5번의 실버슬러거를 차지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아 은퇴 후 당당하게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알투베는 이 비지오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현시점 유일의 선수다.
짐 크레인 휴스턴 구단주는 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리고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주 회의에서 취재진과 만나 알투베의 연장 계약에 대해 “매우 큰 일”이라고 자평했다. 크레인 구단주는 “내가 2011년 이곳에 왔을 때 알투베는 여기에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던 유일한 두 사람”이라고 각별한 애정을 드러낸 뒤 “그는 좋은 성적을 거뒀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그를 은퇴하도록 하는 것은 프랜차이즈에도 중요한 일이다. 나에게도 큰 일이지만, 더 중요한 건 팬들에게도 큰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알투베는 현재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2루수 중 하나다. 2011년 휴스턴에 데뷔해 지난해까지 총 13시즌을 모두 휴스턴에서 보냈다. 통산 1668경기에 나가 타율 0.307, 출루율 0.364, 209홈런, 747타점, 1062득점, OPS(출루율+장타율) 0.834를 기록한 공격형 2루수다. 알투베는 2012년 147경기에 나가며 팀의 주전 2루수로 발돋움했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쌓은 경력은 화려하다. 특히 2017년에는 153경기에 나가 타율 0.346, 24홈런, 81타점, 112득점, OPS 0.957을 기록하며 경력 최초로 최우수선수(MVP)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 작은 체구라고 해서 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알투베는 메이저리그에서 세 차례나 타격왕(2014년, 2016년, 2017년)을 지냈음은 물론, 20홈런 이상 시즌도 5번이나 된다. 그 결과 알투베는 총 6번이나 실버슬러거를 차지했고, 8번이나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모두에게 인정받는 선수로 거듭났다. 2015년에는 아메리칸리그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싹쓸이하기도 했다.
알투베는 2022년 141경기에서 타율 0.300, 출루율 0.387, 28홈런, 57타점, OPS 0.921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건재한 기량을 과시했다. 이해 MVP 투표에서 5위에 올랐음은 물론 실버슬러거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부상 탓에 90경기 출전에 그친 게 아쉬웠다. 하지만 경기장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선수였다. 알투베는 지난해에도 팀의 2루를 지키며 타율 0.311, 출루율 0.393, 17홈런, 51타점, 76득점, OPS 0.915의 대활약을 펼쳤다. 최근 2년 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알투베는 놓칠 수 없는 선수였고,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대형 연장 계약에 골인한 비결이 됐다.
알투베는 경력에서 FA라는 단어와 별 인연이 없다. 알투베는 2013년 시즌을 앞두고 휴스턴과 4년 1250만 달러에 계약했다. 연봉조정을 모두 건너 뛰는 계약을 한 것이다. 이어 2018년 3월에는 5년 총액 1억5100만 달러에 연장 계약하며 FA 시장에 나가지 않고 휴스턴 잔류를 선택했다. 알투베는 2024년 시즌으로 이 연장 계약이 모두 마무리될 예정이라 이번에는 FA 시장에 나올지 관심을 모았다. 그런데 또 5년 1억2500만 달러에 계약하며 FA 자격을 포기했다. 최근 시장의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알투베에게 관심을 가질 법한 팀이 많고, 더 많은 금액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선수는 휴스턴을 떠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알투베의 에이전트가 FA 시장을 대단히 선호하는 스캇 보라스임을 고려할 때 알투베의 뜻이 계약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현지 언론은 보고 있다.
북미 스포츠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알투베의 연장 계약 보도 이후 ‘다른 곳에서 호세 알투베를 상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그는 프랜차이즈의 얼굴이자 휴스턴의 영웅이다. 휴스턴이 아메리칸리그의 강호로 떠올랐을 때 그는 스윙과 미소,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의 2루수로 자리를 지켰다’면서 ‘지난 봄 알투베는 그가 40세까지 뛰고 싶다는 것을 인정했고 여러 차례 휴스턴 외에는 다른 곳에서 뛰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면서 알투베가 약속을 지켰다고 평가했다.
‘디 애슬레틱’은 ‘야구계에서 그 어떤 것도 보장된 것은 없지만 애스트로스와 알투베의 재계약은 항상 언제의 문제로 보였다. 알투베의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종종 그의 고객들에게 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의 실험을 선호하지만, 알투베의 개인적인 바람이 더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 것이 분명하다. 보라스는 2018년에도 알투베의 연장 계약을 했는데 이것은 알투베가 FA 자격을 얻기 2년 전 체결한 5년 1억5100만 달러 계약이었다. 알투베가 이 계약을 협상하는 데 있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라스가 시장에 나가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알투베는 휴스턴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고객의 뜻에 반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는 없었다.
알투베는 이론적으로 39세 시즌까지 휴스턴에서 뛸 수 있으며 휴스턴 프랜차이즈의 각종 기록을 유지하거나 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알투베는 이미 여러 부문에서 애스트로스 프랜차이즈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는 구단 역사상 통산 타율 1위(.307), 안타 1위(2047개), 2루타 1위(400개), 득점 1위(1062개)다. 도루(293개)에서는 역대 3위, 홈런(209개)에서는 역대 5위를 기록 중이다. 알투베가 5년 동안 건강을 유지해 자신의 바람대로 40세까지 뛴다면 3000안타에도 도전할 수 있을 전망이다.
‘디 애슬레틱’은 ‘베이스볼 레퍼런스에 따르면 그는 휴스턴 역사상 가장 높은 타율을 자랑하며 이번 시즌까지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 49.7을 기록 중이다. 휴스턴에서 이 이상의 WAR을 기록한 선수는 제프 백웰, 크레이그 비지오, 호세 크루스, 세자르 세네뇨까지 4명 뿐이다’고 알투베의 업적을 다루면서 ‘비지오와 백웰은 모두 세대를 초월한 재능을 지녔지만 알투베만한 플레이오프 경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킬러 B‘의 세대 동안 많은 이들이 바랐던 그 중요한 순간들에서 알투베는 활약했다. 2019년 끝내기 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건 휴스턴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안타일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비지오와 백웰이 위대한 선수지만, 알투베는 포스트시즌에서의 거대한 성과를 앞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휴스턴은 일단 한숨을 돌렸다. 아메리칸리그의 대표적인 강호인 휴스턴은 향후 2년 동안 핵심 선수들이 대거 FA로 풀릴 예정이다. 팀 부동의 주전 3루수인 알렉스 브레그먼은 2024년 시즌 이후 FA가 된다. 확실한 주전 외야수인 카일 터커, 그리고 좌완 에이스이자 플레이오프에서 유독 강해지는 프렘버 발데스가 2025년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다. 모두 팀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선수들이다. 일단 역시 FA 자격을 얻을 예정이었던 알투베를 남겨 나머지 선수들과 협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짐 크레인 구단주 역시 “선수들의 상황이 모두 다르다”면서 “때가 되면 브레그먼과 이야기를 나눠 다음 거래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브레그먼과도 연장 계약 협상을 열어놓겠다는 것이다.
예상했든 그렇지 않든 알투베는 2024-2025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 사라졌다. 가뜩이나 중앙 내야수(2루수‧유격수)가 부족한 시장에서 알투베라는 옵션이 사라짐에 따라 나머지 선수들이 반사 이익을 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특히 윌리 아다메스(밀워키)와 더불어 FA 시장 최고 유격수를 다투는 김하성(29‧샌디에이고)에게도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입지가 더 강화됐기 때문이다.
미 스포츠전문매체 ‘더 스코어’는 지난 5일(한국시간) 미리 보는 2024-2025 메이저리그 FA 랭킹 TOP 20을 다뤘는데 김하성은 당당히 15위에 올랐다. ‘더 스코어’의 이번 랭킹에서 김하성보다 더 높은 순위에 위치한 유격수는 단 하나도 없다. 중앵 내야수로는 알투베 딱 하나가 김하성보다 앞서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알투베가 이제 시장이 없다. 김하성을 유격수로 보든, 2루수로 보든 1위인 것이다.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자꾸 김하성에게 호의적인 시장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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