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도, 앞집도 모두 망했다”···‘빚더미’에 깔린 자영업자들
저축은행 개인사업자 연체율도 치솟아
부채 허덕이는 사장님 3명 만나보니···
지난해 개인회생(매달 꾸준히 돈을 갚아 일정 금액을 충족하면 나머지 빚은 갚지 않아도 되는 면책을 받는 절차)을 신청한 자영업자가 2년 전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개인사업자의 대출 연체율도 치솟는 등 자영업자들의 신용상태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7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서울회생법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개인회생 신청자는 2만4817명이고, 이 중 영업소득자(자영업자)는 5859명이었다. 개인회생을 신청한 자영업자는 2021년 1990명, 2022년 2276명이었는데, 지난해 2년 전보다 세 배 가까이, 전년보다 곱절 이상 급증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도 2022년 4분기 3.31%에서 지난해 1분기 5.17%, 2분기 6.35%, 3분기 7.49%로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신용보증재단의 대위변제율(보증기관이 원리금을 대신 갚아주는 비율)이 3.82%로 2022년(1.02%) 대비 세배 넘게 늘었다며 비상경영을 실시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상당수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 때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매출이 급감하자 대출을 받아 겨우 가게를 유지했다. 팬데믹이 가고 난 뒤에는 고물가로 식자재값이 올라 소비가 위축됐다. 고금리로 대출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그 결과 빚더미에 깔려 가게 문을 닫거나 파산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부채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 세명을 만났다. 이들은 코로나19 시기에 쌓인 빚을 갚지 못해 장사 십수년 만에 폐업을 결정했거나 고민 중이다. 빚을 갚으려고 다른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투잡’을 뛰는 자영업자도 있었다.
아파트 경매 넘어갈 뻔한 쌈밥집 주인의 사연
지난달 10일 인천 서구의 한 상가건물 2층에 들어서자 ‘임대문의’라고 적힌 종이가 식당 유리문에 붙어 있었다. 식당은 불이 꺼져 있었다. 아구찜을 팔던 이 식당은 적자가 계속되자 지난해 12월 영업 7년 만에 문을 닫았다. 옆에 있는 마라탕 음식점은 테이블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같은 층에서 쌈밥집을 운영하는 서명수씨(65)는 “마라탕집은 장사가 안될 것 같다고 오픈 준비만 하다 개업을 못 했다. 마라탕집 들어서기 전에 있던 한식집은 한 달 장사하고 나갔다. 우리도 접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씨는 남편 나민채씨(63)와 21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서씨 부부는 식자재값이 가파르게 뛰자 지난해 1월 ‘식자재 단가 고공 행진으로 인해 1만5000원으로도 도저히 원가를 맞추기 힘든 현실’이라며 메뉴를 바꾸겠다는 안내문을 손글씨로 써서 식당 벽에 붙였다. 그러나 손님들의 요청으로 메뉴를 바꾸지 못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1311716011
안내판을 붙인 지 1년이 지난 지금, 서씨 부부의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부부가 사는 아파트는 4억5000만원에 경매로 넘어갈 뻔했다. 서씨는 “내일 오후 3시에 넘어갈 뻔했는데 오늘 아는 사람한테 말해서 방금 겨우 막았다. 참담하다”고 했다. 서씨 부부는 코로나19가 길어지자 2021년 3월 제2금융권을 처음 찾아 주택을 담보로 약 2억원을 빌렸다. 처음 180만원가량이던 월 이자는 3년 만에 340만원정도로 불었다.
나씨가 휴대전화 화면을 켜 ‘체납액을 2024-01-03까지 납부하지 않는 경우 귀하의 체납자료를 신용정보기관에 제공할 예정이며, 이 경우 신용등급 하락으로 신용카드·대출 정지 등 불이익이 있을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서인천세무서가 지난달 2일 나씨에게 독촉한 부가가치세 체납액은 총 665만7000원.
이들 부부는 빚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나씨는 ‘세금 체납→제1금융권 대출 거부→제2금융권 대출→대출 이자 체납→세금 체납’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세무서는 식당 손님이 카드 결제한 금액 일부를 바로 압류하고 있다. 나씨는 “정부가 자영업자를 지원해준다고 해서 2022년 초반에 제1 금융권 문을 두드렸지만 체납 기록 때문에 못 빌렸다”고 했다.
식자재값은 1년 사이 또 뛰었다. 1년 전 1kg에 5500원~6000원 하던 미국산 돼지고기 도매가는 7500원대로 올랐다. 상추 4kg 한 상자도 1년 만에 2000~3000원 올라 현재 15000원대에 납품받고 있다.
불황이 시작되자 손님은 지갑을 닫았다. 식당 한 쪽에 걸린 달력에는 지난해 12월 예약이 세 건만 표시돼 있었다. 나씨는 “12월이면 원래 달력이 예약 메모로 시커메야 한다”며 “2019년까지만 해도 하루에 90인분은 팔았다”고 했다. 나씨가 포스기에서 지난달 7일자 판매기록 화면을 켜자 매출이 35만5000원으로 찍혀 있었다. 쌈밥 22인분 값이었다. 서씨는 “몇 달 전 공깃밥 가격을 2000원으로 올려봤는데, 손님들이 ‘동네 장사 이렇게 하는 거 아니다’ 호통쳐서 도로 1000원으로 내렸다”고 했다.
매일 오전 3시30분에 일어나 농수산 시장에서 야채를 사며 하루를 시작하는 나씨는 “국내산 고집하는 자부심으로 장사해왔는데 이제 그게 무너졌다”며 “음료수 납품 배달기사가 ‘저집 또 1억원 날렸대’ 이런 소식을 요즘 종종 전한다. 점점 무너지는 자영업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했다.
대학가 명물 식당 이모는 어떻게 파산자가 됐나
“어휴, 가게만 생각하면 이렇게 눈물이 나고 땀이 난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만난 노경하씨(가명·64)는 2007년부터 서울의 대학가에서 운영하던 식당을 떠올리며 연신 식은땀을 흘렸다. 닭볶음탕과 김치찌개를 팔며 학생들 사이에서 ‘명물 맛집’으로 손꼽히던 가게였다. 2019년까지 연 매출 2억2000만원을 올릴 만큼 성업했다. 그러나 노씨는 지난해 12월 가게 문을 닫고 파산을 신청했다. 그는 “코로나 이후 너무 매출이 안 나오니 우울증이 심해지고 날마다 죽고 싶었다”면서 “가게에 들어가면 땀으로 속옷이 다 젖을 정도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노씨의 가게도 다른 식당들처럼 2020년 겨울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방학에도 식당을 찾던 학생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매일 20마리씩 받아 쓰던 생닭을 하루에 2마리만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노씨는 “닭과 야채 모두 이틀만 지나면 쓸 수가 없는데 그걸 다 버려야 하니 징글징글했다”고 말했다.
2년 뒤 집합금지가 풀린다는 소식에 희망이 생겼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불경기에 학생들은 지갑을 닫았고, 식자재 물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치솟았다. 노씨는 “코로나가 끝나고 이렇게 불경기일 것이라곤 생각을 못했다”며 “학생들은 밥과 술을 밖에서 사먹지 않았고, 생닭부터 공산품까지 값이 오르지 않은 것이 없으니 장을 보고 가게 문을 열어도 장사가 될 것이란 희망이 없었다”고 했다.
그 사이 노씨는 1억1000만원의 빚을 졌다. 손님이 특히 없는 방학 중 월매출은 200만원대로 주저앉았다. 그런데도 가게 문이라도 열려면 월세 132만원과 전기세 60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노씨는 전기세가 밀리면 전기가 끊길까 대출을 받았다. 1.8%선이던 대출이자는 3%대까지 올랐고,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또다시 1000만원, 2000만원씩 카드론과 자동차 담보 대출을 받았다. 노씨는 “이자가 오를 때 억울했다”면서 “어차피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왜 이자가 높아졌냐’고 따질 수도 없고 은행의 돈놀이에 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빚을 빚으로 막던 노씨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7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가게 건물주와 재계약했지만 가을학기에도 식당을 찾는 발길은 늘지 않았다. 자택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니 수중에 남은 돈은 20만원 남짓이었다. 결국 노씨는 지난해 12월 폐업했다.
‘나는 빚을 갚을 능력도 없는 사회의 악일까.’ 16년간 자부심을 품고 일해 온 노씨는 어렵사리 파산 신청을 결정하며 이런 고민에 시달렸다고 했다. ‘이모 힘내시라’며 찾아오던 학교 졸업생들을 떠올리면 가게 상황이 더욱더 한탄스러웠다. 그는 “내 나름대로 이름 있는 집 이모였는데 파산자가 됐다고 하면 너무 부끄럽다”고 했다.
평생 식당에서 일한 노씨는 아직 미래를 그리기 어렵다고 했다. 노씨는 “내가 이제 64살인데 앞으로 10년 동안 손을 놓고 있으면 결국 사회에도 손해 아니겠느냐”면서 “소상공인이 코로나 시기 입은 손해 배상을 소규모라도 해주고 다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손실 보상이라더니 이제 와서 줬다 뺏어···가게 그냥 접으란 뜻인가”
서대문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도일씨(60)는 지난달 9일 ‘손실보상금 환수 사전통지서’라고 적힌 우편물을 받았다. 2021년 받은 손실보상금 중 224만원을 오는 8일까지 돌려내라는 내용이었다. 환수 이유란에 ‘2021년 3분기 손실보상금 오지급’이라고 적혀있었다. 김씨는 “대체 얼마를, 어떤 이유로 잘못 받았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집합금지와 영업시간 제한 등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발생한 손실을 산정해 손실보상금을 지급했다. 이 중 계산 오류 때문에 잘못 지급된 보상 금액이 있었는데, 중기부는 이를 상계 정산하는 식으로 오지급분을 환수해왔다. 그러다 손실보상금 지원이 종료돼 상계 처리가 어렵게 되자 김씨 등 대상자들에게 환수통지서를 보낸 것이다.
김씨는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혹스럽다고 했다. 그는 “내 착오가 아니라 정부의 행정적 착오로 생긴 일 아니냐”며 “줬다 뺏으니까 상실감이 더욱 크고 처음부터 안 주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환수통지서에는 오는 8일까지 224만6000원을 내라고 안내되어 있으나, 구체적으로 왜 오지급이 발생한 것인지는 적혀있지 않았다. 김씨는 “시민들의 알 권리가 너무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잘못 준 것이니 도로 내놓으라’고 하면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이전에도 복잡한 행정절차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규모의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코로나 기간 2000만원 가까이 지원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2021년 가을 970만원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면서 “그때도 이유를 문의했지만 명쾌한 답변을 듣진 못했다. 나는 왜 이 만큼만 받았는지, 왜 토해내라는 것인지 설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다. 환수통지서를 받았다는 한 식당 주인은 “아르바이트 월급도 못 주고 있는 상황인데 윗분들은 이런 상황을 아실까 모르겠다”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라고 했다. 다른 자영업자는 “통지서를 받고 심란하다”며 “2019년 영업을 시작해서 그때는 지원금 혜택을 못 받는 일이 많았는데 지금 와서 황당하다”고 했다.
김씨는 환수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카페 운영이 어려워진 탓에 지난해 10월부터는 오전 5시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다른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오후에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가게 월세가 6개월 이상 밀려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다.
방역 조치는 풀렸지만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없다.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정부 지원 대출과 사업자 대출 이자는 지난해 11월 400만원에 달했다. 공공요금은 폭등했다. 겨울철 월 60만원이던 전기료는 지난해 연말 86만원을 찍었다. 김씨는 “아직도 150만원에 달하는 두 달 치 전기료를 못내고 있다”면서 “수중에 돈이 없는데 환수금 220만원을 갑자기 어디서 만들어야 할지 답답하다”고 했다.
소상공인들 “과감한 정부 대책 필요”
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자 정부는 최근 부가세 납부 2개월 유예, 코로나19 피해를 본 소상공인 전용 채무조정 프로그램 ‘새출발기금’ 대상 확대, 소상공인 전기요금 지원, 대출 이자 환급 등 대책을 내놓았다. 또 2000만원 이하 채무 연체자가 오는 5월까지 빚을 다 갚으면 연체 기록을 다 삭제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논 자영업자들의 빚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라는 게 자영업자들의 반응이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총장은 “부채만 해결된다고 해서 자영업자들이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신용 대사면만 하면 신용도를 회복한 뒤 추가 대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 활성화 정책이나 부채 탕감이 같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총장은 “50~60대 고연령층의 경우 파산 면책 특권을 받더라도 사업장 파산 이후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이 거의 없다”고 했다.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상공인도 있다. 예를 들어 일부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은 차주는 이자 환급을 받을 수 없다. 이 총장은 “새출발기금 지원을 받으면 신용패널티를 받는다. 신청 자격을 맞추기 어렵고 절차가 복잡해 소상공인들이 기금 지원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의 위기 상황이 지속되거나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 “높은 대출금리 부담이 지속되는 가운데 자영업자의 소득 여건 개선이 지연되고 상업용 부동산시장이 부진한 모습을 보일 경우, 취약 차주를 중심으로 부실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취약 영업자에 대해서는 단기적으로 이자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는 한편, 저금리 대환 프로그램, 새출발기금 등을 통한 채무 재조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정상 차주의 자발적 대출상환과 부채 구조 전환(단기 일시상환→장기 분할상환) 등을 추진해서 자영업자 대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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