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악가 최초 도이치그라모폰 전속 소프라노 박혜상… 삶과 죽음에 대한 사색 앨범 ‘숨’ 내놔
이강은 2024. 2. 7. 14:28
한국 성악가 최초로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 맺고 발표한 1집 ‘아이 엠 헤라(I AM HERA)’ 이후 4년 만에 2집
“‘사랑하자. 슬퍼할 시간에 빛나게 살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란 말 해주고 싶어”
“‘사랑하자. 슬퍼할 시간에 빛나게 살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란 말 해주고 싶어”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결코 그대 슬퍼하지 말라/ 인생은 찰나와도 같으며/ 시간은 마지막을 청할 테니’(세이킬로스의 비문)
인기 소프라노 박혜상(36)이 고대 그리스인 세이킬로스가 비석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글에서 영감 받은 음악을 담은 새 앨범 ‘숨(Breathe)’을 발매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잠수까지 배우며 4년 만에 내놓은 앨범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를린 국립오페라 등 세계 무대를 누비며 활동 중인 그는 2020년 한국 성악가 최초로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으며 1집 앨범 ‘아이 엠 헤라(I AM HERA)’를 선보인 바 있다.
박혜상은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때 좋아하는 사람들을 잃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면서 “부정적인 마음이 가슴을 가득 채우던 시기였고, ‘왜 사는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고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죽음과 삶에 대한 깊은 사색을 이번 앨범에 녹였다.
처음에는 부정, 분노, 우울, 수용 등 당초 죽음을 대하는 사람들이 겪는 단계를 표현하려 했으나 “이렇게 어두운 곡을 들려드리는 게 맞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만났단다. “비문을 접하고 순간적으로 치유가 됐어요. 1~2세기를 살았던 사람의 마음이 나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울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좋았죠. 그래서 앨범의 모든 주제를 ‘살아가는 동안 빛나자’로 정했습니다.”
앨범 첫 곡도 현대음악 작곡가 루크 하워드의 곡 ‘시편’에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넣어 편곡한 작품 ‘당신이 살아있을 동안(While You Live)’이다. 박혜상이 직접 하워드에게 의뢰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8세 소녀가 감옥에서 엄마에게 쓴 편지 내용을 담은 고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2악장, 마스네 오페라 ‘타이스의 명상곡’을 편곡한 ‘마스네: 아베마리아’ 등25곡이 앨범에 실렸다. 한국 가곡인 우효원의 ‘어이 가리’도 눈에 띈다. 이 곡은 아쟁 연주에 목소리를 얹은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이다.
“죽음을 각각 다르게 바라보는 작품들을 골랐어요. 한국가곡, 현대음악 등이 다양하게 담겼지만, 그 안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단 하나예요. ‘사랑하자. 슬퍼할 시간에 빛나게 살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니’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제목 ‘숨’은 박혜상이 재작년 8월 산티아고 순례길에 갔다가 꿨던 꿈에서 나왔다. 박혜상은 “꿈 속에서 신비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만났고,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속 ‘지난날이여 안녕’을 부르며 산을 내려왔다”면서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물 속으로 들어갔는데 제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꿈이 총천연색으로 바뀌며 사람들이 파티를 했고, 저는 물 속에서 숨 쉬며 그 모든 것을 봤다”고 설명했다.
“가장 두려운 순간, 물 속에서 가장 살아있는 경험을 느꼈습니다. 그때 앨범 제목을 ‘숨’이라 하자고 결정했죠. 앨범재킷(표지)을 수중촬영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태국에 가서 프리다이빙(잠수) 교육까지 받고, 앨범의 뮤직비디오에도 수중 장면을 넣었다.
박혜상은 “이번 앨범엔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개인적 이야기들이 담겨 ‘아무도 안 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하지만 한편으로는 2년여간 제 모든 것을 쏟은 이 앨범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힘이 되는 메시지를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앨범”이라고 웃었다. 오는 1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연주회)을 하고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직접 들려준다. 이후 영국 바비컨 센터 등 해외에서도 리사이틀을 열고, 파리 오페라 극장의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 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의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 파미나 역 등으로 무대에 설 예정이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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