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진작에 떨어졌어도 할 말 없는 클린스만식 '좀비 축구'...월드컵까지 맡길 수 없다
[스포티비뉴스=조용운 기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 축구팬들에게 내세웠던 '결승전까지 호텔 예약을 하라'는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끈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7일(한국시간) 알 라이얀의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했다.
1960년 서울 대회를 끝으로 아시안컵 우승이 없는 한국은 이번 대회 64년 걸린 왕의 귀환을 완성하고자 투혼을 발휘하고 있다. 결전지인 카타르에 입성한 뒤 '좀비 축구'라 불리고 있지만 대회 전부터 역대 가장 화려한 라인업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실제로 클린스만호는 유럽 무대를 누비는 주요 선수들이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을 중심으로 주로 공격 진영에 해외파가 자리했다. 손흥민과 함께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질 카드인 조규성(미트윌란)과 오현규(셀틱)가 대표적이다.
여기에 화력을 지원할 2선에도 황희찬(울버햄튼 원더러스)과 이재성(마인츠), 황인범(츠르베나 즈베즈다), 홍현석(헨트),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정우영(슈투트가르트) 등이 나열됐다. 대체로 소속팀에서 주축으로 뛰면서 높은 비중을 자랑해 아시안컵을 대비해 실전 감각을 유지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수비는 대체로 국내파들의 몫이다. 그안에서 중심을 잡아줄 철기둥은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다. 김민재는 유럽 최고의 클럽에서도 변함없이 혹사에 가까운 신뢰를 받아왔다. 이를 통해 국내파가 다수인 후방을 진두지휘하며 공수에 걸쳐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어느 하나 한국이 참가국 안에서 밀리는 요소가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도 결전지로 가기 전부터 가장 많이 입에 올렸던 말도 '우승'이다. 최종명단을 확정한 자리에서 "상당히 기대가 많이 된다. 큰 대회를 앞두고 명단을 발표하는 느낌이 뜻깊다. 누누이 말하고, 몇 개월 동안 말씀드린 것처럼 목표는 뚜렷하다. 선수들의 눈빛을 보면 얼마나 우승을 원하는지 알 수 있다"면서 "꼭 좋은 성적을 거두고 팬들에게 큰 선물을 드리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전 국민의 기대가 클린스만호에 쏠렸다. 대회 전까지 A매치 6연승을 달리면서 성불의 시간이 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정작 아시안컵이 시작되자 한국은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바레인을 3-1로 이기긴 했지만 경기력은 기대이하였다. 전반 내내 별다른 찬스를 만들지 못했다. 어렵사리 한 골을 넣었지만 후반 시작과 함께 실점했다.
그나마 이강인이 분전해 바레인의 모래바람은 잠재웠지만 바로 요행은 없었다. 아시안컵 체력 고갈의 원인이 된 요르단전 2-2 무승부는 마지막 순간 자책골이 아니었다면 패했을 경기였다. 대표팀에 가장 실망감을 안긴 말레이시아와 3차전은 졸전의 향연이었다.
한국은 과거에나 라이벌로 묶였던 말레이시아와 2023년에 명승부를 펼쳤다. 그것도 16강 진출을 확정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주전들을 모두 기용했다. 전력을 다하고도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기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 과정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끝나기 전 내준 실점에 미소를 보여 일부러 비겼다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그래도 클린스만 감독은 우승을 향한 정진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때로는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고 낙관론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따랐다. 늘 미소를 머금은 표정조차 대표팀의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비판으로 이어질 정도였다.
팬들의 우려가 상당했지만 대표팀은 토너먼트 돌입하면서 눈빛이 달라졌다.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과 8강 호주전에서 놀라운 투지를 과시했다. 냉정하게 상대를 압도한 경기는 아니었다. 두 경기 모두 선제 실점으로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 다행히 두 팀이 일찍 내려서면서 한국이 때릴 수 있는 조건을 준 게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기회를 잡은 게 중요했다. 클린스만 감독도 후반 흐름을 바꿔야 할 때 신기 들린 듯한 용병술을 적중해나갔다.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는 그동안 주전으로 쓰던 조규성을 조커로 기용해 99분에 극적인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8강 호주전에서도 이재성과 박진섭을 투입해 중원 안정감을 불어넣었고, 깜짝 카드 양현준으로 흐름을 확 바꿨다.
두 경기 연속 120분 연장 혈투를 펼치며 좀비 축구라는 별칭도 생겼다. 아시아의 호랑이를 자처하는 한국에 있어 마음에 드는 불림은 아니다. 더구나 황금세대라고 표현할 정도로 개인 기량이 최고조에 있는 선수들을 데리고 좀비 축구를 연거푸 펼친 건 분명 팀적으로 문제가 있는 대목이다.
이는 곧 클린스만 감독의 지도력으로 이어진다. 클린스만 감독은 취임 당시부터 전술적인 면보다 관리에 능한 매니저형에 점수를 더 받았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전술가가 아닌 매니저를 자처한 클린스만 감독의 빅 이벤트 대처법을 확인했다. 아시아에서조차 선수들의 마지막 투지, 상대의 이른 수비화가 아니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기존 아시안컵에서 실패했던 감독들과 다르다. 평소 여름에 월드컵을 마치고 새로운 감독과 반년도 준비하지 못하고 아시안컵에 출전했던 것과 달리 카타르 월드컵이 겨울에 치러지면서 이번 아시안컵은 1년 가까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함께 대비했다.
준비 기간이 예년에 비해 길었다. 그만큼 오래 클린스만 감독의 색채가 녹아들었고, 그라운드에서 실현됐다고 봐야 한다. 항상 웃는 얼굴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대표팀에 심어주는 게 감독이 할 일은 아니다. 1년의 준비기간이 내놓은 결과물로 이제 평가를 받아야 한다.
"결승전까지 호텔 예약을 하라"던 부임 1년의 약속은 허풍으로 끝났다. 2년 뒤 북중미 월드컵까지 임기를 보장해준다고 클린스만 감독의 접근법이 달라질 리 없다. 결단이 필요하다.
일단 클린스만 감독은 우승이라는 목표 달성에 실패하며 책임질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어떠한 계획도 없다. 한국으로 돌아가 잘 분석해서 앞으로의 경기들을 더 잘 준비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사임 의사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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