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트럼프 ‘경제 스승’ “FTA 재협상 때 방 나가버릴 뻔”

김은중 기자 2024. 2. 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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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기 USTR 대표 출신
저서 ‘공짜 무역은 없다’ 中
한국·FTA 재협상 관련 후일담
“韓, 미국차는 적게 수입” 비판적 시각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로이터 연합뉴스

“우리가 한국의 방위비로 수십억 달러를 분담하면서도 한국은 미국 수출에 대한 장벽을 유지하고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종종 트럼프 대통령을 화나게 만들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77) 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지난해 6월 발간한 저서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에서 이같이 적었다.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 스승’이라 불리는 라이트하이저는 트럼프 2기 재집권이 현실화하면 10% 보편적 관세, 대(對)중국 60% 관세 같이 트럼프가 툭툭 던진 투박한 아이디어들을 실제 정책으로 만들어 이행에 앞장설 인물로 꼽힌다. 최근 라이트하이저 측근이 방한하자 국내 주요 기업 대관 담당자들의 면담 요청이 쇄도했을 정도로 트럼프 2기가 궁금한 각국의 ‘줄대기’도 한창이다.

저서는 발간 6개월 만에 이른바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 통상 정책을 가늠할 교과서로 미 조야(朝野)에서 통한다. 트럼프도 이 책을 대량 구매해 선거 캠프에 돌렸고, 민주당 의원들 조차 주변에 한 번 읽어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 대세론’에 탄력이 붙을수록 국내에서도 수요가 늘어 대형 서점이 고가의 외서임에도 불구하고 추가 구비에 나섰는데, 라이트하이저가 저서 중 6~7페이지 정도를 할애해 한국에 대해 서술한 부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문재인 정부 초기 있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과 후일담, 한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 적자 등에 대해 비교적 가감없이 서술하고 있어 우리 입장에선 ‘트럼프 2기’의 무역·통상 정책을 가늠해 볼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중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DB

라이트하이저는 ”한국은 미국의 중요한 동맹”이라며 “1960년대 경제 규모가 40억 달러에 불과했던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이 지금은 캐나다 수준이 됐는데 이것은 꽤 놀라운 성취”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우리가 한국 방위를 위해 수십억 달러를 쓰지만 한국은 미국의 수출에 대한 장애물을 유지하고 있고, 매년 상당한 무역 흑자를 본다는 사실로 트럼프 대통령을 종종 화나게했다”라고 했다. 특히 2012년 3월 발효된 한미FTA 관련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때 허점이 많다며 이를 비판했지만 정작 집권하고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FTA 이후) 한국은 미국 차를 아주 적게 추가로 수입한 반면 미국에 대한 수출은 획기적으로 늘렸다”고 했다.

라이트하이저는 문재인·트럼프 정부 초기인 2018년 자신이 주도해 타결된 한미FTA 재협상 관련 “한국과의 무역에 있어서 바늘(needle)이 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협상 후일담도 전하는데 “한국 측이 무역 불균형에 대한 미국 우려는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해 우리 팀이 거의 협상장을 나가버릴뻔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같은 추가적인 레버리지를 사용해야 협상에 속도가 붙었다” “한국인들은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한 압박이 있고 나서야 진정성 있게 협상 테이블로 나왔다”하는 내용들이다. 트럼프 1기 때 미국 정부의 재협상 시도를 ‘블러핑’ 정도로 봤던 초기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낸 대목으로 해석된다. 라이트하이저는 “문재인 대통령과 그의 팀이 일찌감치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은 똑똑한 일이었다”며 “한국이 일부 양보를 했지만 협상을 끌었더라도 결국에는 양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왼쪽)와 김현종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재임중 미국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산업부

라이트하이저는 FTA 재협상 당시 한국측 카운터파트였던 김현종(60) 전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해 “인상이 깊었고 마음에 들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김 본부장이) 미국 문화와 미국식 협상 스타일에 익숙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며 “협상장의 그 누구보다 미국 스포츠에 밝았고, 그의 아메리칸 페르소나는 뉴요커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김 본부장은 미국에서 고등학교·대학교를 졸업했고, 컬럼비아대 로스쿨에서 공부한 미국 변호사 출신이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에서 두 차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내며 한미FTA 타결과 재협상을 주도했다. 유창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미국측 카운터파트의 마음을 사기 위해 지역구 또는 출신학교 스포츠팀 유니폼이나 럭비공을 공수하는 등 스포츠를 고리로 하는 협상 기술을 구사했다고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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