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장 전성시대, 국내 주요 악단은 ‘악장 구인난’
서울시향·KBS교향악단 등 악장 장기 공백
오는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독주회를 여는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39)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악장이다. 2018년 종신 악장에 지명돼 7년째 활동 중이다. 16년째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을 맡은 카시모토 다이신 (45)도 지난달 이곳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베를린 필은 3명의 악장을 두는데, 그중 한 명인 노아 벤딕스 밸글리(40)도 ‘필하모닉스’의 일원으로 지난 연말 내한했다. 악장을 맡아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독주, 실내악, 협연 활동을 병행하는 이들이 많다. ‘악장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박지윤 외에도 유럽 유수의 악단에서 악장으로 활약 중인 한국 연주자들이 많다. 450년 전통의 유서 깊은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이 이지윤(32)이다. 그 역시 종신이다.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이끄는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제2 바이올린 종신 악장 이지혜(39)도 있다. 김수연(36)도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악장을 맡고 있다. 김수연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객원 악장으로도 무대에 올랐다.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은 지휘자 다음으로 중요한 직책. 지휘자를 축구팀 감독에 비유한다면 악장은 주장에 해당한다. 누가 오케스트라 악장인지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단원들보다 늦게 입장해, 맨 나중에 들어서는 지휘자와 악수하는 바이올리니스트가 악장이다.
연주만 잘한다고 악장이 되는 건 아니다. 빼어난 연주는 물론, 단원들을 통솔하면서 지휘자와 단원을 이어주는 게 주요 임무다. 악장이 지휘자의 해석을 단원들에게 정확하게 전하지 않으면 그 악단은 오합지졸이 되고 만다. 그만큼 지휘자와 악장의 호흡이 중요하다. 모든 현악기 주자의 활 쓰는 방법을 정하는 일도 악장 몫이다. 이상민 클래식 음악 큐레이터는 “지휘자가 담임 선생님이라면 악장은 반장의 역할”이라고 비유했다.
악단의 역할 분담을 군대 계급에 빗대기도 한다. “지휘자는 전략을 결정하고 악장은 지휘자의 정보를 해석해 단원들에게 전달하며, 섹션별 수석 연주자들은 지휘자와 악장의 지시를 받아 음악적 아이디어를 구현한다.” 캐나다 노바스코샤 오케스트라는 누리집에 이렇게 소개하면서, 지휘자를 장군, 악장을 대위, 수석 연주자를 상사로 각각 비유했다.
이처럼 악장의 역할이 막중한데도 서울시향과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 경기필하모닉 등 국내 주요 악단들이 모두 ‘악장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서울시향은 2015년 스베틀린 루세브가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악단을 떠난 이후 9년째 악장 장기 공백 상태다. 케이비에스 교향악단도 2016년 이후 악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필은 12년 동안 이끌던 정하나 악장이 지난해 인천시향으로 옮겨 현재 공석이다. 세 오케스트라 모두 악장 대신 부악장 또는 객원(임시) 악장이 빈틈을 메운다.
서울시향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64)은 악장을 뽑기 위해 지난해 ‘블라인드 오디션’까지 봤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네덜란드 명문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에서 17년 동안 악장을 맡았던 츠베덴이지만 자신과 호흡을 맞출 악장 채용에는 애를 먹고 있다. 서울시향 관계자는 “해외 연주자를 포함해 계속 악장 채용을 추진하고 있다”며 “연내에 악장을 구하는 게 악단의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국내 정상급 악단들이 악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연주력과 리더십, 소통능력 등 3박자를 두루 갖춘 연주자를 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외 연주자들도 올 수 있지만, 정년이 정해져 있는 국내 악단을 선호하지 않는다. 국내 악단은 빠듯한 일정 탓에 악장이 독주자나 협연자, 실내악 연주자 등을 병행하기 어렵다는 제약도 있다. 케이비에스 교향악단 손유리 공연기획팀장은 “몇 개월 시험 기간을 두고 검토한 경우도 있는데 결국 실패했다”며 “악장을 뽑는 게 커다란 숙제”라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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