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앤팩트]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국가 예견 가능"...책임 첫 인정
피해자들, 2014년 제조업체·국가 상대 소송 제기
소송 과정에서 일부 제조사·피해자 조정 성립
피해자 측, 제조업체 '세퓨'·국가 대상 소송
[앵커]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정부가 성급하게 해당 물질의 유해성을 유독물이 아니라고 일반화했고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세한 내용 사회부 백종규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탓에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거나 심각한 병을 얻은 분들이 많잖아요.
의미가 남다른 판결 같은데, 이번 소송이 어떻게 진행됐는지부터 살펴볼까요?
[기자]
네, 손해배상 소송은 지난 2014년 8월에 시작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 가운데 일부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 살균제를 구매한 뒤 사용하다,
폐 질환 등으로 사망 또는 치료를 받아 피해를 입었다며 제조업체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 선고에 앞서 피해자 측과 제품 제조사인 옥시 그리고 한빛화학, 용마산업, 롯데쇼핑 등은 피해자와 조정이 성립됐는데요.
이후 소송 당사자에서 빠졌고 제품 제조업체 세퓨와 국가 대상 소송만 남게 됐습니다.
2016년 11월 1심은 세퓨 측이 피해자 13명에게 5억 4,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다만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 그러니까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피해자 가운데 일부가 항소하면서 2심으로 이어졌고 항소심 재판부가 처음으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게 된 겁니다.
[앵커]
그럼 피해자 가족들이 소송을 진행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거네요.
어제 판결 내용 자세히 정리해주시죠.
[기자]
네,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정부에도 이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서울고등법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는데요.
재판부는 이미 지급 받은 지원금과 구제 급여 액수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정했는데,
국가가 피해자 3명에게 각 300~5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피해자 2명에 대해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상 구제급여 조정금을 이미 지급 받았다며,
더는 위자료를 요구할 수 없다면서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앵커]
그동안 국가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았는데,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을 뒤집고 국가 책임을 인정한 이유가 있잖아요.
재판부는 어떤 근거를 들었나요?
[기자]
재판부의 국가배상 책임 인정 판단 근거를 좀 살펴보면요.
재판부는 먼저 환경부 장관 등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 화학물질,
PHMG, PGH에 대해 불충분하게 유해성 심사를 했다는 점부터 인정했습니다.
이후 그 결과를 성급하게 반영해 일반적으로 안전성을 보장하는 것처럼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알렸고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한 사실도 거듭 확인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행위가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마치 국가가 해당 물질 자체의 일반적인 유해성을 심사하고 평가해 그 안전성을 보장한 것과 같은 상황이 됐다고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들은 그동안 "가습기 살균제 참사, 국가도 범인이다"라고 외쳐왔는데,
결국, 이 오랜 외침을 법원에서 일부 받아들인 겁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지난 2022년 3월 기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신고자가 7,685명이고 이 가운데 사망자가 1,751명에 이른다며, 사안의 중대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와 가족들이 5명이라고 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3명에게만 위자료 지급 결정이 내려졌어요.
피해자들 입장은 어떤가요?
[기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은 판결 직후 기자 회견을 열었습니다.
우선 "이번 판결은 가해 기업 책임에 이어 국가 배상책임을 물은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 환영했습니다.
다만, 피해자들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의 구제급여 조정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재판부가 배상 대상을 일부 피해자로 한정하고 배상액도 소액으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채경선 /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어머니 (어제 6일) : 가해 기업이 그런 제품을 팔도록 허가해준 공무원이, 국가가 죄가 없는 것입니까. 배상 책임이 없는 것입니까. 오늘의 판결이 옳은 판결입니까? 피해자의 입장은 이렇습니다.]
피해자들은 앞으로 이런 부분이 바로 잡히길 바란다며,
국가가 배상 대상을 제한하지 말고 제대로 된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앵커]
법원이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도 궁금합니다.
CMIT와 MIT라는 가습기 살균제 물질 관련 국가 배상 책임 소송도 이어지겠죠?
[기자]
일단 환경부는 어제 항소심 판결문을 검토하고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짤막한 입장을 밝혔는데요.
그동안 직접적 책임이 없다고 했던 정부도 더는 피해자를 외면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조정위원회가 피해자 7,000여 명에게 9,200억여 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내놓은 지 2년이나 지났는데요.
애경 등 해당 기업들이 반발하면서 피해구제는 아직입니다.
법원이 일단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정부 책임을 인정했기 때문에,
그동안 방치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중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대로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다면 정부도 조정 기금 출연 등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주목됩니다.
이와 함께 옥시와 애경, SK케미칼 등에서 제조 판매한 제품의 경우 유해화학물질인 CMIT와 MIT 등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제품들을 사용한 피해자들은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받지 못했는데요.
여전히 다툼의 대상으로 남아 관련 소송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측은 피해자들이 어떤 성분을 원료로 한 제품을 썼느냐를 따지지 말고 국가가 포괄적으로 배상하는 입법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부에서 YTN 백종규입니다.
YTN 백종규 (jongkyu8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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