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수백억대 전세사기.. 징역 15년 법정 최고형 선고

이현준 기자 2024. 2. 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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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속출한 인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 /뉴스1

인천 미추홀구 일대 빌라와 아파트 191채에 대한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세입자로부터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축업자 남모(62)씨에게 사기죄의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이 선고됐다.

인천지법 형사1단독 오기두 판사는 7일 선고 공판에서 사기 혐의로 기소된 남씨에 대해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린 악질적 범죄”라며 이같이 선고했다. 오 판사는 또 남씨에게 범죄 수익 115억5600여만원의 추징을 명령했다. 이날 선고 공판에선 남씨와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공인중개사 A씨 등 공범 9명에 대한 선고도 함께 이뤄졌다. 오 판사는 이들에 대해 각각 징역 4~13년을 선고했다.

이들에게 전세사기 피해를 당한 피해자 모임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대책위원회’는 선고 직후 “피해에 비해 형량이 너무 낮다”며 “피해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가 피해 회복에 적극 나서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공동주택 2700여채 소유.. 조직적 전세사기

남씨가 사기 등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건 지난해 2월이었다. 당시 2022년 1∼7월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3채의 전세보증금 126억원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그는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빌라나 아파트를 새로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 등을 모아 공동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늘렸고,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2700여채의 주택을 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씨는 공인중개사, 바지 임대업자 등과 짜고 조직적으로 전세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대출이자를 연체하는 등 자금사정이 악화돼 집이 경매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었지만 무리하게 전세계약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남씨에 대한 재판은 지난해 3월 시작됐다. 공인중개사 등 공범 9명이 남씨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이 사건의 전세사기 피해 규모는 이후 재판 과정에서 커졌다. 공동주택 191채의 세입자들로부터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받아 가로챘다는 혐의가 이들에게 적용됐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해 4월 인천 주안역 남부광장 분수대로에서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후 전세사기 피해자 추모제를 하고 있는 모습. /뉴스1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안타까움 죽음

재판 직전과 진행 중 남씨 등으로부터 전세보증금 등을 돌려받지 못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피해자들의 안타까움 죽음이 잇따랐다.

이 재판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2월 첫 희생자가 발생했다. 인천 미추홀구의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30대 A씨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집이 임의 경매에 넘어가는 등 어려움에 처한 상태였다. 이후 지난해 4월엔 남씨 등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던 육상 국가대표 출신의 30대 여성 B씨 등 2명이, 5월엔 4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가 잇따르자 국회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마련했고, 정부는 이를 근거로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본격화했다. 정부는 피해자 지원 대상 보증금 기준을 5억원으로 하고, 생계가 어려워진 가구에 긴급 생계비와 의료비 등 긴급복지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전세사기 피해자가 새로 전세를 얻거나 은행 전세대출을 갚는 경우에는 연 1.2∼2.1%의 저리로 최대 2억4000만원까지 정책모기지를 지원하고, 피해자들을 위한 신용회복 프로그램도 지원하기로 하는 등 대책을 수립했다.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전세사기 피해 주택./뉴스1

◇법정에 선 피해자들 “제발 살려달라”

남씨 등에 대한 재판은 지난해 3월 공소장 접수 이후 지난달 17일까지 총 51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법원은 공판에서 100여명의 증인에 대해 심문했다. 재판은 하계 휴정기에도 쉬지 않고 진행됐다.

법정 증언대에 선 피해자들은 고통을 호소했다. “제 안식처가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사회에 나오자마자 경제적 파산을 앞두고 있다”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는데 미래가 안 보인다. 제발 살려달라” “우울감과 절망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딸 결혼식이 있었는데, 전세사기 피해로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오기두 판사는 7일 선고 공판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판결문을 담담히 읽었고, 방청하던 피해자들의 눈은 붉어졌다.

◇법원 “사회적 신뢰 무너뜨렸다”

오 판사는 이날 선고공판에서 “피고인들은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부부, 노인과 같은 취약 계층을 상대로 범행해 동기나 수법이 불량하다”며 “이들의 전세보증금은 대출을 받거나 일하면서 모은 전재산이자, 유일한 재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191명, 피해액이 148억원으로 피해가 막대하다”며 “피고인은 주택 2708채를 보유하면서 자신의 탐욕으로 피해를 준 부분에 큰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 “사회공동체의 신뢰를 처참하게 무너뜨렸고, 변명을 하면서 100여명의 피해자가 법정에서 진술하게 하는 등 고통을 줬다”고 말했다. 오 판사는 “먹는 것, 입는 것과 함께 생존 기본 요건인 주거환경을 침탈한 중대 범죄로, 청년 4명이 극단적 선택까지 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국가나 사회가 피해를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재범 우려가 크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오 판사는 이날 사기죄의 법정최고형 형량을 높이는 내용으로 관련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입법부에 제안하기도 했다. 오 판사는 “사기죄에 대해 선고할 수 있는 한도는 징역 15년에 그치고 있는 현행법은 인간 생존의 기본 조건인 주거의 안정을 파괴하고 취약계층의 삶과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사회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질적인 사기 범죄를 예방하는 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7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앞에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해달라”

전세사기 피해자들로 구성된 미추홀구 전세사기피해 대책위원회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남씨 일당이 챙긴 전세보증금은 피해자들에게는 삶의 전부이자 미래였다”며 “남씨 등 공범 전원에게 범죄단체조직죄를 반드시 적용해 법이 허락하는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의 사기행각 전모를 낱낱이 밝혀 범죄수익을 반드시 몰수하고 추징해 피해자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남씨는 지난 2021년 3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세입자 372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30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6월 남씨 등 총 35명을 사기 혐의로 추가 기소하면서 전세사기 사건으로는 처음으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인천지법 형사 14부(재판장 류경진)가 재판을 맡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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