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에도 '인저리타임'이 있다면…
백승현 2024. 2. 7. 12:01
한경 CHO Insight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대한민국 축구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이 7일 새벽 아쉬운 패배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앞서 조별 리그 요르단전 황인범의 동점골, 말레이시아전 손흥민의 역전골, 사우디전 조규성의 동점골, 호주전 황희찬의 동점골 등 4경기 연속 추가시간 극장골로 축구팬들을 열광시킨 바 있다.
올드팬들에게는 로스타임이나 인저리타임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한 추가시간(stoppage-time이 공식 용어라고 한다)은 축구경기 중 선수의 부상, 득점 후 세리머니 등으로 경기를 하지 않는 시간들을 모아 전후반 각각 45분의 정규 경기시간이 끝난 후 주어지는 시간이다. 축구경기에서 경기가 중단되더라도 전광판의 시계는 멈추지 않기 때문에 추가시간을 통하여 정규 경기시간을 채우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심의 감으로 정하다가 대기심이 전광판으로 추가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제는 아주 정밀하게 경기 중단시간을 모아서 추가시간을 부여함으로써 최대한 전후반 45분씩 꽉 채워 경기를 하도록 한다(주심의 감으로 추가시간을 부여하던 시절에는 실제 경기시간이 70분이 안된 적이 많다고 한다). 이제 중동의 침대축구를 보며 뒷목을 잡을 일이 없어졌고, 추가시간의 많은 골로 경기는 훨씬 재미있어졌다. 공정성과 드라마 둘다 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근로시간은 어떨까. 회사의 시계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지만 인저리타임은 없고,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오후 6시 이후는 야근(시간외근로)이 공식이다. 그런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동안 온전히 업무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사무직의 경우 잠시 업무장소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롭고, 책상에 앉아서도 개인 용무를 볼 수 있는 환경에서는 업무를 하지 않는 시간을 모아보면 상당할 수 있다. 커피나 차를 마시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지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 흡연시간, 개인적인 전화를 하는 시간, 병원이나 약국 등 밖에서 개인 용무를 보는 시간, 카카오톡으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선물을 주고받고 약속을 잡는 시간, SNS를 하는 시간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으로 포섭되지 않는 시간이 매우 많다. 물론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에 따르면 작업을 위하여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도 근로시간으로 간주되나, 위와 같은 시간을 대기시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회사도 사람이 다니는 곳이니까 이런 행위들은 암묵적으로 허용이 되어 왔고, 과도한 이탈이 아닌 한 잠깐 동안의 시간들은 모두 근로시간으로 간주하여 유급으로 처리되어 왔다. 그리고 회사는 근무시간을 온전히 채우지 않는 것을 평가 시 고려함으로써 근로계약관계에 어느 정도 반영하여 왔다.
그리고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 상호간 근태관리와 금전적인 유불리를 고려하여 적정 수준에서 타협한 신사협정인 '포괄임금'도 오후 6시 이후 회사에 머문 시간에 대하여 전부 법상 가산수당을 받겠다는 생각을 조금 양보하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위와 같은 인저리타임이 고려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근로시간이 쟁점이 되어 법적 판단을 받는 단계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출퇴근 태그기록이나 컴퓨터 로그 on/off 기록만으로 근로시간 측정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퇴근 태그기록에서 출근 태그기록을 뺀 시간 전부, 컴퓨터 로그오프 시각에서 로그온 시각을 뺀 시간 전부가 온전히 근로제공을 한 시간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법적 판단을 받는 상황은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의 지급을 구하는 분쟁이나 진정, 산재 등과 관련하여 과도한 근로를 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상황, 주52시간 위반 여부가 문제되는 상황 등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회사는 금전적인 추가 부담을 안게 되거나 임금체불 또는 주52시간 위반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막상 이러한 분쟁상황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들이 ‘하루 종일 뭐하는지 모르겠던데 무슨 과로를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거나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만 되면 일하는 척을 한다’고 목격담을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유의미한 방어수단이 되기 어렵다.
현실에서는 회사가 명백한 허위근태를 입증하지 않는 회사에 머문 시간과 컴퓨터를 켜놓은 시간 통으로 근로제공시간으로 인정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 원칙을 들어 법대로 하자고 분쟁을 제기하려면 정말로 하루 8시간, 주40시간 근로제공을 하였는지 인저리타임은 없는지 엄밀히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 통으로 인정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고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쪼잔하게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금전적인 부담을 그렇다 치더라도 근로시간이 '52시간 1분'만 되어도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치부할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신축성이 전혀 없는 근로시간 규제를 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하는 엄격한 관리 방식을 앞으로도 유지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과도한 근로시간으로 건강을 해치고 삶의 균형이 무너지는 일이 있으면 안되므로 규제는 필요하나, 예외를 두거나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재량적으로 근로시간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등으로 여유를 두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언젠가 정밀하게 근로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고, 근로시간을 법대로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회사가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숨막히는 근태관리를 받고 인저리타임이 발생했으니 30분~1시간씩 더 일을 하고 가라고 하는 직장 문화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대한민국 축구의 아시안컵 우승 도전이 7일 새벽 아쉬운 패배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앞서 조별 리그 요르단전 황인범의 동점골, 말레이시아전 손흥민의 역전골, 사우디전 조규성의 동점골, 호주전 황희찬의 동점골 등 4경기 연속 추가시간 극장골로 축구팬들을 열광시킨 바 있다.
올드팬들에게는 로스타임이나 인저리타임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한 추가시간(stoppage-time이 공식 용어라고 한다)은 축구경기 중 선수의 부상, 득점 후 세리머니 등으로 경기를 하지 않는 시간들을 모아 전후반 각각 45분의 정규 경기시간이 끝난 후 주어지는 시간이다. 축구경기에서 경기가 중단되더라도 전광판의 시계는 멈추지 않기 때문에 추가시간을 통하여 정규 경기시간을 채우도록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주심의 감으로 정하다가 대기심이 전광판으로 추가시간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변경되었고, 이제는 아주 정밀하게 경기 중단시간을 모아서 추가시간을 부여함으로써 최대한 전후반 45분씩 꽉 채워 경기를 하도록 한다(주심의 감으로 추가시간을 부여하던 시절에는 실제 경기시간이 70분이 안된 적이 많다고 한다). 이제 중동의 침대축구를 보며 뒷목을 잡을 일이 없어졌고, 추가시간의 많은 골로 경기는 훨씬 재미있어졌다. 공정성과 드라마 둘다 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회사의 근로시간은 어떨까. 회사의 시계도 멈추지 않고 돌아가지만 인저리타임은 없고,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오후 6시 이후는 야근(시간외근로)이 공식이다. 그런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한 8시간동안 온전히 업무만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특히 사무직의 경우 잠시 업무장소로부터 이탈하는 것이 비교적 자유롭고, 책상에 앉아서도 개인 용무를 볼 수 있는 환경에서는 업무를 하지 않는 시간을 모아보면 상당할 수 있다. 커피나 차를 마시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지인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시간, 흡연시간, 개인적인 전화를 하는 시간, 병원이나 약국 등 밖에서 개인 용무를 보는 시간, 카카오톡으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선물을 주고받고 약속을 잡는 시간, SNS를 하는 시간 등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으로 포섭되지 않는 시간이 매우 많다. 물론 근로기준법 제50조 제1항에 따르면 작업을 위하여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도 근로시간으로 간주되나, 위와 같은 시간을 대기시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회사도 사람이 다니는 곳이니까 이런 행위들은 암묵적으로 허용이 되어 왔고, 과도한 이탈이 아닌 한 잠깐 동안의 시간들은 모두 근로시간으로 간주하여 유급으로 처리되어 왔다. 그리고 회사는 근무시간을 온전히 채우지 않는 것을 평가 시 고려함으로써 근로계약관계에 어느 정도 반영하여 왔다.
그리고 회사와 근로자 사이에 상호간 근태관리와 금전적인 유불리를 고려하여 적정 수준에서 타협한 신사협정인 '포괄임금'도 오후 6시 이후 회사에 머문 시간에 대하여 전부 법상 가산수당을 받겠다는 생각을 조금 양보하는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위와 같은 인저리타임이 고려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근로시간이 쟁점이 되어 법적 판단을 받는 단계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출퇴근 태그기록이나 컴퓨터 로그 on/off 기록만으로 근로시간 측정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즉 퇴근 태그기록에서 출근 태그기록을 뺀 시간 전부, 컴퓨터 로그오프 시각에서 로그온 시각을 뺀 시간 전부가 온전히 근로제공을 한 시간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법적 판단을 받는 상황은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근로수당의 지급을 구하는 분쟁이나 진정, 산재 등과 관련하여 과도한 근로를 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상황, 주52시간 위반 여부가 문제되는 상황 등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회사는 금전적인 추가 부담을 안게 되거나 임금체불 또는 주52시간 위반으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막상 이러한 분쟁상황에서 함께 근무한 동료들이 ‘하루 종일 뭐하는지 모르겠던데 무슨 과로를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거나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만 되면 일하는 척을 한다’고 목격담을 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법적으로는 유의미한 방어수단이 되기 어렵다.
현실에서는 회사가 명백한 허위근태를 입증하지 않는 회사에 머문 시간과 컴퓨터를 켜놓은 시간 통으로 근로제공시간으로 인정되는 것을 막기 어렵다. 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 원칙을 들어 법대로 하자고 분쟁을 제기하려면 정말로 하루 8시간, 주40시간 근로제공을 하였는지 인저리타임은 없는지 엄밀히 따져봐야 하는 것 아닐까. 통으로 인정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고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쪼잔하게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금전적인 부담을 그렇다 치더라도 근로시간이 '52시간 1분'만 되어도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게 치부할 것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신축성이 전혀 없는 근로시간 규제를 하고, 위반 시 형사처벌까지 하는 엄격한 관리 방식을 앞으로도 유지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과도한 근로시간으로 건강을 해치고 삶의 균형이 무너지는 일이 있으면 안되므로 규제는 필요하나, 예외를 두거나 당사자 사이의 계약으로 재량적으로 근로시간을 운영할 수 있게 하는 등으로 여유를 두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언젠가 정밀하게 근로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될 수도 있고, 근로시간을 법대로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회사가 나타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숨막히는 근태관리를 받고 인저리타임이 발생했으니 30분~1시간씩 더 일을 하고 가라고 하는 직장 문화를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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