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북핵 용인론’ 확산 심상찮다[이미숙의 시론]

2024. 2. 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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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제네바합의 후 30년 협상 실패
北 핵 협박에 南은 무방비인데
美선 위기론 펴며 핵군축 제기
미국의 북핵 용인은 동맹 배신
유럽서도 美 핵우산 불신 기류
북핵 대응 자체 핵 역량 가져야

미국에서 북핵 관련 이상기류가 뚜렷해지는 조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쟁 결심으로 한반도가 1950년 같은 위험한 상황”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더니 “북한 비핵화는 먼 미래의 과제로 두고, 당면 위협을 해소하는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제언까지 나왔다. 대한민국을 걱정하는 듯하지만, 핵심은 “북핵 포기가 어려우니 미북 관계 정상화로 핵 위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곧,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미북 핵 군축협상을 시작하라는 주장이다.

올해는 미북 제네바 핵 합의 30주년이 되는 해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 북핵 위기는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의 제네바 합의로 일단 봉합됐다. 북한의 핵 포기 대가로 경수로를 지원키로 한 합의는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가동이 확인되면서 사실상 파기됐다. 이후 대북 경수로사업이 중단됐고, 다시 몇 년에 걸쳐 6자회담이 진행됐지만, 북한 비핵화에는 다다르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시대 싱가포르·하노이 미북 정상회담도 성과가 없었다. 북한은 플루토늄 핵무기에 이어 고농축우라늄 핵탄두도 만들고 있다.

북핵 협상이 진행될 때 국무부 정보조사국에서 일했던 로버트 칼린은 핵물리학자 시그프리드 헤커와 북한 관련 잡지 ‘38노스’에 쓴 글에서 “6·25전쟁 발발 직전보다 위험한 상황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제네바 합의 미국 수석대표였던 로버트 갈루치는 “동북아 핵전쟁이 날 수 있다”고 외교안보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에 썼다. 근거 제시 없이 신앙고백 식 위기론을 편 칼린·헤커처럼, 갈루치도 “내 생각이 그렇다”고만 밝힌 뒤 “미북 관계 정상화가 우선이고 비핵화는 장기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30년에 걸친 미국의 대북 핵 협상 실패로 우리는 북핵 위협에 무방비 노출 상태인데 미국 측 인사들은 동맹인 한국에 대해선 안중에도 없다는 듯 이제 대북 관계 정상화를 통해 북핵 위협을 줄이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제네바 합의 후 “경수로 완공 전 북한은 망할 것”이라는 턱없는 낙관론을 늘어놨던 인사들이 갑자기 위기론을 부추기며 북핵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계라면서 미북 군축협상을 띄우는 것은 동맹 배신이다. 한국에 대한 김정은의 핵 협박엔 눈감으면서 북핵 위협을 줄이기 위한 미북 대화를 재촉하는 것은 이기적 사고다. 그런 말을 하기 전에 최소한 실패한 협상에 대해 사과부터 하고, 북핵으로부터 동맹을 지키기 위한 모든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하는 게 예의다.

최종현학술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북한 비핵화 불가능’ 응답이 91%였다. 지난해에 비해 13.4%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김정은이 핵 선제 사용 법제화 등으로 핵 위협을 고조시킨 결과로 보인다. 자체 핵 개발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72.8%로 나타났다. 지난해 76.6%였던 것에서 조금 낮아졌지만, 워싱턴선언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치가 나온 것은 핵우산 강화로는 북한의 핵 위협을 이기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뉴욕이 북핵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을 무릅쓰고도 미국이 한국을 방어할 것이란 응답은 39.3%에 불과했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만큼 자체 핵에 대한 절박함이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다. 유럽에서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식 핵 공유만으론 부족하다며 유럽 자체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더구나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이 짙어지면서 미국의 나토 탈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프랑스 핵탄두를 독일 등에 배치하자는 논의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자체 핵무장에 선을 긋는다. 강화된 확장억제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보수·진보·중도는 물론이고 소득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국민의 10명 중 7명은 ‘자체 핵 개발 지지’ 응답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핵우산을 믿어야 한다’고 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국민은 늘 옳다”고 했던 윤 대통령 아니던가. 우선, 미국의 북핵 용인론자들이 펴는 ‘과장된 위기론’이 미북 군축협상으로 나가지 않도록 대미 외교를 확실히 해야 한다. 아울러, 핵우산이 펴지지 않을 것에 대비하기 위한 자체 핵 역량 확보 작업도 속도감 있게 해야 한다. 북한과 핵 군축협상을 하더라도 상대는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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