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지출마 그무시라꼬”···인생 승부수 던진 부산 사나이 [금배지 원정대]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2024. 2. 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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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원정대-23]
부산서 재선했던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
지역구 떠나 서울 영등포을에 도전장
‘역귀성’ 성공사례 드물지만 험지 선봉에
“반드시 이긴다는 마음···난 퀀텀점프 할 것”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박민식 전 보훈부 장관 [사진=김호영 기자]
Q. 박민식에게 정치란? 숙임의 무게추. 국민의 대표란 상징이기도 하지만, 몸을 숙여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라고 달아준 것. Q. 박민식에게 금배지란? 말 못하며 쫓기는 짐승이 아니라, 싸우는 영웅되기.

“국회의사당이 있는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다는 사나이로서의 결기였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 공천을 신청한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의 말이다. 박민식 전 장관이 ‘결기’란 단어까지 써가며 전투 태세를 갖추는 이유는 오는 4월 총선에서 새로운 역사를 스스로 이뤄내야 할 절박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검사 출신인 박 전 장관은 부산 북강서갑에서만 두 차례 당선됐다. 그러나 금배지를 내려놓은 지 벌써 8년이나 됐다. 다시 같은 지역에 나가면 2승2패를 기록했던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재선)과 ‘단두대 매치’를 벌여야 할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박 전 장관은 ‘서울행’을 택했다. 이러한 ‘역귀성’은 도전 사례는 있어도 성공 사례는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16년 전 정몽준 전 의원이 울산을 떠나 서울 동작을에서 당선된 전례 정도다. 박 전 장관이 이번에 당선되면 명실상부 새 역사가 된다.

박 전 장관을 그의 영등포 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사나이로서, 또 정치인 박민식으로서 인생의 ‘퀀텀 점프’를 해보려 한다”며 “대한민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비장한 소명의식을 갖고 선거에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4년 전 총선은 敗, 서울시장 선거는 勝···이번엔?
보수 진영에서 영등포을은 원래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권영세 의원의 지역구였다. 권영세 의원은 2002년 재보궐선거에서 국회에 입성, 영등포을에서만 세 차례 배지를 달았으나 지금은 용산으로 옮겼다.

보수 정당 후보는 19대와 20대 선거에서 연속으로 신경민 전 민주당 의원에게 패했고, 21대 때는 다시 돌아온 김민석 민주당 의원이 역시 승리를 거머쥐었다. 김민석 의원은 영등포을에서 세 차례(15·16·21대) 당선됐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영등포을 당선 전략은 단순하다. 보수 우위인 여의도동에서 격차를 크게 벌리고, 진보 우위인 신길동과 대림동에서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4년 전 결과를 보면 여의도동에서는 박용찬 미래통합당 후보가 김민석 의원에게 약 33% 차이로 대승을 거뒀으나, 신길·대림동을 크게 내주면서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지난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여의도동·신길동·대림동 등 모든 곳에서 오세훈 시장이 우세했다.

결국 어느 선거를 척도로 삼느냐에 따라 낙관론과 비관론이 갈린다. 4년 전 총선과 작년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를 생각하면 영등포을은 ‘험지’이고 서울시장 선거를 보면 이길 수 있는 지역구로 볼 수 있다.

경부선 지하화 첫 삽은 영등포서 떼게 될 것
이런 영등포을에 총선 예비후보로 나선 박민식 전 장관은 ‘약속의 현실화’를 내세웠다. 그는 “영등포에서 경부선 철도 지하화의 첫 삽을 떼게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박 전 장관은 “영등포는 1890년 경부·경인선 개통 이후 한국의 철도교통과 산업화 중심 지역이었다”면서도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영등포 주민들의 주거환경과 삶의 질은 안 좋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철도로 인해 오랜 세월 고생을 했던 주민들이 보상받아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철도 지하화 공약 발표 이후 여야의 총선 예비후보들이 백가쟁명식으로 관련 입법을 약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장관은 “중요한 건 입법이 아니라 예산 확보와 과감한 추진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성을 바탕으로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과 서울시장을 ‘원팀’으로 묶을 수 있어야만 4년 내 첫 삽을 떼는 게 가능하다”며 “이것을 현실화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남다른 추진력의 근거로 1990년대부터 말만 나왔지 현실화 되지 못했던 국가보훈처의 보훈부 승격이 본인 임기 중 이뤄진 사실을 들었다. 또 무려 70년 만에 서울현충원을 보훈부로 이관키로 한 것도 박 전 장관이 내세우는 대표 업적이자 강한 업무 추진력의 사례로 꼽힌다.

3선 성공때 1호 입법은 ‘통합보훈법’
박민식 전 장관은 국회 입성 시 첫 입법으로 ‘통합 보훈법’을 발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의 보훈법이 여야 의원들의 무분별한 발의 속에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졌다 보니, 형평성 문제가 많이 발생 한다”며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이 제대로 예우받을 수 있는,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 강국에 걸맞고 품격있는 보훈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 전 장관에게 “보훈부 장관을 역임했다는 경력 때문에 본인이 ‘올드’해 보이진 않을까 걱정되지 않냐”고 물었다. 박 전 장관은 “한 달 넘게 지역구를 돌아다니면서 놀란 게, 60대 이상 다음으로 날 많이 알아보는 연령층이 바로 20대라는 점”이라며 “아마 그 이유는 보훈이라는 게 ‘올드’가 아니라 ‘미래’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보훈이라는 건 미래 대한민국의 번영을 위한 사활적 가치”라며 “제복 입은 사람들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자는 건,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가치”라고 강조했다.

힘들었던 시간, ‘패배자의 삶’ 살필 수 있어 좋았다
박민식 전 보후부 장관이 지역구의 한 상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제공=박민식 후보 선거사무소]
외무고시(22회)와 사법시험(35회)을 모두 합격했고, 검찰 요직을 거쳐 40대 초반 나이에 국회의원이 된 엘리트 정치인. 말쑥한 외모의 박민식 전 장관을 보면 고생 한번 안 해봤을 것 같은 이미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가 7살이었던 1972년 그의 아버지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돌아가셨다. 당시 서른 여섯살이었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산’인 보훈급여금에다 시장에 농작물을 내다 판 돈을 더해 박 전 장관 등 6남매를 어렵게 키웠다.

이후 외교관·검사·국회의원을 거치며 입지전적인 인물로 우뚝 섰으나, 총선서 두 차례 낙선하면서 다시 수년간 어둡고 긴 터널 속에 있었다. 박 전 장관은 “개인적으로도 정치적으로 상당히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나고 나니 자신을 단련하고 미래를 준비하며 부족한 역량을 강화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며 “스스로가 실패자이자 낙오자가 돼보니, 우리 사회에서 뒤처진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어서 오히려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어렵다는 고시를 두 개나 패스했으나, 정작 박 전 장관은 ‘천재’ 소리는 못 들어봤다고 한다. 스스로 집중력이 좋은 편이라 강조하지만, 알고 보면 운전면허를 무려 17차례나 떨어진 흑역사도 갖고 있다.

실패와 성공, 영광과 추락, 그리고 부활의 시간을 지나온 부산 사나이 박민식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

‘금배지 원정대’는 2024년 4월 열리는 22대 총선에 출마를 준비 중인 정치인을 소개하고, 해당 지역구를 분석해보는 매일경제신문 정치부의 기획 연재물입니다. ‘절대 반지’를 찾아 떠난 반지 원정대처럼, 현역 의원은 물론 정치 신인까지 집중 추적해 유권자 여러분의 선택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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