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가 그 지역에선 ‘표준말’이잖아요”
지역말이란 이 땅을 지켜온 사람의 말
언어에 반영된 지역의 삶과 정서 기록하는 사람들
정부에서도 조사하지만…예문·영상 기록 부족
☞‘퇴계 이황부터 ‘탯말'까지…표준어에 맞선 사람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우리 탯말’ 시리즈는 경상도에서 멈췄지만, 지역별 지역말 보존 노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보다도 민간의 노력이 두드러졌다. 자발적으로 지역말을 기록하고 보존하려는 향토 연구자가 늘어났다.
2024년 1월26일 충남 예산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이명재(62)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충청남도 예산말 사전> 4권과 <속 터지는 충정말> <충청도말 이야기> 등을 펴냈다. 이씨가 지역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9년, 예산군 대술면의 역사서를 만드는 일의 ‘언어’ 편 작업을 의뢰받으면서였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 강사로 일했기에 온 의뢰였다. 작업하면서 관심 가진 뒤로 아예 사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이렇게 살았다
“처음에는 중요한 충청도말 4천 개 정도를 찾아 책으로 내서 후배들에게 전해주려 했어요. 한 3년 정도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았거든요.” 근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니 점점 불어났다. 2011년 <예산말 사전> 1권을 낸 뒤 2019년까지 4권을 냈다. 수록된 단어는 1만6천여 개다. 계획은 5권까지였지만 예산군 지원이 끊겨 출판을 못했다.
이씨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일을 마친 뒤 매일 글을 썼다. 충청말 연구를 시작한 뒤로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8시간 동안 작업했다. 직접 채록하고 녹음도 하러 다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자료와 싸움을 벌였다. 그가 모임에 나가지 않고 친구도 거의 만나지 않은 것도 이때부터였다.
이씨는 여러 차례 “후배들을 위한 기록”이라고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사투리는 쓰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삶이 어땠을까 궁금할 수 있잖아요. 근데 남아 있는 게 없거든요. <예산말 사전>은 예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요. 농사를 어떻게 지었고, 특정 상황에선 어떤 말을 하는지 예문으로 다 정리했거든요.”
단어와 단어의 뜻풀이로 구성된 일반 사전과 달리, 이씨가 쓴 사전은 하나도 빠짐없이 예문이 들어가 있다. 그가 직접 90% 이상의 예문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근네다’의 경우 ‘어떤 것을 받으라고 내밀거나, 말을 붙이다’라는 뜻풀이와 함께 뒤에 이런 예문이 실렸다. ‘슬메시 말을 근넸지먼 통 대꾸를 않더라구.’
이씨가 말하는 충청말의 특징은 ‘균형’과 ‘비유’다. 늘 말 속에서 균형을 찾으려 하고, 비유해서 유머로 승화하려는 특성이 있다고. 이는 ‘떼이불 연십혀(연습해)’라는 말에 잘 녹아 있다. 떼는 충청도말로 ‘잔디’다. 즉 잔디로 만든 이불, 무덤을 비유한 말이다. 몸이 좋지 않다는 말을 할 때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충청도는 우회적 화법이 특징이죠. 상대방이 감당할 만큼, 상대방을 생각해서 약간의 여유를 주는 거예요. 충분히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게끔. 충청도 말이 느린 이유가 말을 짧게 해서 비유적으로 던져놔요. 상대방은 무슨 뜻인지 생각하고 다시 비유적으로 던지죠. 그래서 말이 짧아요.”
사전에 담기지 못한 현장의 말
이런 향토학자들은 학계에서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살핀다. <예산말 사전>을 토대로 2020년 논문을 쓴 김정태 충남대 교수(전 한국방언학회 부회장)는 “비전문가가 편찬한 방언자료집이지만 전체적 체계 면에서 정밀성, 현장성, 체계성을 갖췄다”고 총평했다. 특히 ‘개갈나다, 고두랫독, 슬멧허다’ 등은 우리말샘(2016년에 공개된, 일반인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개방형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은 예산 방언의 독자적인 자료라고 평가했다. “문장 단위의 많은 용례는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생생한 자료다. 일반인뿐 아니라 방언 연구자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오덕렬(79)씨는 광주에서 17년째 ‘전라방언 문학 용례사전’(가제)을 만들고 있다. 오씨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전라도말이 너무 많다고 했다. 2008년 광주고 교장을 끝으로 퇴직한 그는 우리말샘 구축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는 “요새도 하루에 몇백 번을 들여다본다. 여전히 빠진 게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오씨는 용례사전을 2024년 5월 탈고를 목표로 마지막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애초 문인 1천여 명의 작품을 생각했지만, 집필하면서 그 수를 훌쩍 넘었다. 2024년 1월 기준 전라도 문인 1775명의 작품, 9700여 개의 단어를 기록했다. 200자 원고지 1만 장 분량이다. 예산의 이씨처럼 그도 모든 단어에 문학작품에 나오는 예문을 달았다. 그리고 우리말샘 등재 여부도 표시했다. 사전의 ‘히카디히카다’는 이렇게 돼 있다. ‘‘희디희다(더할 나위 없이 희다)’의 방언. 우리말샘에는 미등재. “히키디히칸 눈이 소복소복 쌔인가보오.”(김용휴, ‘수수모감지’)’ 단순히 문학작품 그대로를 옮기는 게 아니다. 단어가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고 정확하지 않은 단어는 다른 기록을 찾아본 뒤 자신이 예문을 만들기도 한다.
그는 지역말에 숨통을 틔워달라고 말했다. “언어소통이 잘되려면 표준어가 필요하죠. 다만 사투리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자는 거예요. 매년 지역말 중 뜻도 좋고 발음도 좋은 단어 몇 개씩 표준어로 등록하면 안 되나요? 그 지역에선 그 말이 표준말이잖아요. 뭐가 더 좋고 더 나쁜 게 아니죠.”
지역어 기록이 중요한 이유
국립국어원은 2004년부터 2020년까지 ‘지역어 조사 사업’을 진행해 ‘지역어 종합 정보’라는 누리집을 열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아직 등록되지 않은 지역어가 많을뿐더러 누리집에서 지역어를 검색하면 뜻풀이 없이 대응 표준어만 나온다. 또 지역어는 발음과 예문이 중요한데 예문 없이 개별 단어 발음만 수록돼 있다.
장소원 국립국어원 원장은 2022년 2월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역어 디지털 자료를 구축하는 등 지역어 보존 대책을 마련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역별 언어문화 음성(구술 발화, 판소리, 가요 등)과 문학작품, 간판, 사진·영화·드라마 같은 영상자료를 수집해 디지털전시관으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2023년 제주를 시작으로 매년 지역별로 넓혀갈 계획이었지만 진행되지 못했다. 국립국어원 관계자는 “예산을 받지 못해 사업 자체가 불발됐다. 지역어 조사 사업은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지역말의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후대에 남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보통 지역말을 조사하러 배운 사람을 찾아가지 않아요. 정말 어렵게 이 땅을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언어를 듣고 기록하는 거예요. 문화적·경제적·사회적으로 소외된 분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만나게 돼요. 그러면서 저도 이분들의 눈길을 외면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거죠.” 정부도 학자도 아닌, 홀로 지역말을 연구하는 이명재씨의 말이다.
대구·예산(충남)=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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