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부터 ‘탯말’까지…표준어에 맞선 사람들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지역말 지킴이 역사
사투리 보존·기록에 매진하는 이유
“지시랑물이 떨어지는 댓돌에 앉아가지고 엿을 세벼서 먹다보니 그래 처량하더라. 그런 얘기를 했거든.”
홍귀남(63)씨는 그저 어릴 적 단오제 때의 추억을 떠올렸을 뿐이다. 돈이 없어 시장을 이리 ‘지웃’(기웃) 저리 ‘지웃’거리다 어른들 숨겨놓은 엿을 훔쳐 ‘지시랑물’(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이 떨어지는 ‘정낭’(뒷간) 앞에서 먹었다는 이야기다. 특별할 것 없는 3분 남짓한 이야기로 홍씨는 2021년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탔다.
퇴계 이황의 영남말 고집
경연대회에 나가기 전까지 홍씨는 강릉말을 쓸 때마다 위축됐다. “외지에 나가서 얘기하면 다 촌스럽다고 하니 입을 딱 붙이고 말을 하지 않았어요. 사업을 하다보니 가끔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랑 말하면 나한테 반말한다고 뭐라 하고. 그래서 되도록 (강릉말을) 안 쓰려고 했어요. 그러다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니까 달라지더라고. 뭐라 그래야 하나. 가슴 저 밑에서부터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을 받았어요.”
홍씨는 수상 이후 강릉사투리보존회에서 강릉말 지키기 활동을 하고 있다. 강릉사투리보존회는 1993년 처음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가 열리고 이듬해에 만들어졌다. 1회 수상자들과 지역 향토학자, 언어학자들이 모였다. 경연대회 외에 강릉말을 발굴하고 기록하고 정리하는 작업 등을 한다.
2022년 강릉 사투리 경연대회에서 금상을 탄 김동철(72)씨는 강릉사투리보존회 고문이다. 그는 대학 시절부터 강릉말에 관심이 많았다. 강릉 사투리 권역이 어디까지인지에 관한 졸업논문을 쓸 정도였다. 졸업 이후 교사의 길을 택한 김씨는 틈틈이 강릉말 연구에 매진했다.
“내가 강릉 사람이잖아요. ‘주인 정신’이에요. 강릉을 주인이 지켜야지 누가 지켜요? 말엔 얼이 담겨 있어요. 우리 지역의 말을 지켜야 하는 것은 일종의 사명감이에요. 우리말을 잘 지키고 그다음에 자기 고향 말을 잘 지키는 것이 얼을 살리는 길이죠.”
강릉의 성산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한 뒤 김씨는 그간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얼 아리랑 그리고 사투리>(성원인쇄문화사)라는 작은 사전을 냈다. 예문을 남기기 위해 <겐금집 맏메누리>(성원인쇄문화사)라는 시집도 냈다. 그 외에 여러 책을 모두 자비로 냈다. <한민족의 얼 아리랑 그리고 사투리>는 단오제 때 강릉 주민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말을 못 쓰게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지역말 경연대회에 참석하고, 보존을 위한 단체에서 활동하며 기록에 매진하는 걸까. 그 배경엔 수백 년에 걸쳐 직간접적으로 지역말을 배척하고 핍박해온 역사가 있다. 지금이야 영화나 드라마 등 미디어에서 지역말이 자주 나오고 평상시에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런 분위기가 자리잡은 건 비교적 최근이다. 시작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승철 서울대 교수(국어국문학)가 쓴 <방언의 발견>(창비 펴냄)을 보면 서울말을 중심으로 한 표준어 개념은 일제강점기에 처음 도입됐지만, 조선시대에도 한양말과 지역말을 차별했던 정황이 드러난다. 지역말을 구분한 기록이 가장 처음 나온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모음의 소리를 설명하는 부분에 ‘국어’와 ‘아이들 말’ ‘변두리 시골말’이 등장한다.
“이때의 ‘국어’는 오늘날 중앙어(또는 표준어)를 가리키고 ‘아이들말’은 오늘날 유소년 언어(이를테면 세대에 따른 방언) 그리고 ‘변두리 시골말’은 오늘날 지역 방언을 가리키므로 이 기록은 15세기에도 지방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방언의 발견> 중에서
단순히 중앙어와 시골말을 구분하는 것을 넘어 위계가 있었고, 이에 맞선 이들이 있었다는 정황은 조선시대 실학자인 위백규의 후손이 엮은 <존재집>에서 엿볼 수 있다. 정 교수가 <존재집>에서 발췌해 인용한 내용을 보면 “한양에 다녀간 시골 사람들이 기필코 경음(京音)을 본받으려고 하니 모두 다 잘못된 일이다” “퇴옹(退翁·퇴계 이황)이 영남의 발음을 고치지 않은 것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등의 기록이 나온다. 모두가 중앙어를 쓰려고 할 때 자신의 지역말을 지키려던 노력이 퇴계 이황에게서 시작된 셈이다. 다만 말 그대로 ‘시작'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지역말은 본격적으로 소외됐다.
어머니 배 속에서 배운 탯말, 표준어에 도전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표준어사용 범국민운동을 하고, 1989년 3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현행 표준어 규정이 시행되면서 표준어 강화 정책이 계속되자, 1990년대 들어 지역말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홍씨가 출전한 사투리 경연대회가 전국 곳곳에서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92년 제주도를 시작으로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등 곳곳에서 사투리 경연대회가 열렸다.
그러던 2000년대 중반, 표준어 정책에 정면으로 승부를 건 이들이 있었다. 전국의 초중고 학생과 학부모 123명이 표준어 규정과 공공기관의 공문서를 표준어 규정에 맞춰 작성하도록 한 국어기본법이 평등권 및 교육권 등을 침해한다며 2006년 5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헌법소원을 주도한 곳은 ‘탯말두레’라는 단체로, 지역말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었다. ‘탯말’은 이 모임에서 만든 단어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배운 말’을 뜻한다. 이들은 “현재의 표준어 규정과 국어기본법은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채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표준어 규정에 관해 헌법소원을 낸 사례로는 유일무이하다. 당시 청구인들을 대리했던 장철우 변호사는 <한겨레21>에 이렇게 말했다. “획일적으로 표준어로만 가다보니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지역어들이 자꾸 사라지고, 결국 우리 문화가 사라지는 거 아니냐, 표준어 중심의 국어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주장을 했죠.”
헌재는 2009년 표준어 규정에 대해선 심판청구를 각하하고 국어기본법 부분은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기각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다만 국어기본법과 관련한 재판관 2명의 반대의견이 화제였다. 김종대·이동흡 재판관은 이런 반대의견을 냈다.
“특정 지역어를 표준어로 정하는 경우 그 지역 이외 지역의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언어생활에 상당한 위축을 가져온다. (…) 서울 이외 지방의 각 지역어도 각 해당 지역 주민들의 역사적·문화적·정서적인 창조물일 뿐만 아니라 누대에 걸쳐 전승된 우리 모두의 문화유산이다.”
표준어에 대한 도전이 남긴 유산
당시 헌법소원에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2006년 10월 <경상도 우리 탯말>을 출간한 윤명희(61)씨와 이성배(63)씨, 심인자(66)씨를 2024년 1월24일 대구에서 만났다. “헌법소원은 부결될 거라 생각했어요. 헌법소원은 지역말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서였죠.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정서를 잘 표현한 정겨운 말이 사라져가는 게 안타까우니까요.”(이성배씨)
이씨가 대표적으로 예를 든 단어가 ‘정구지’(부추)다. 그는 정구지라는 단어에 부추에는 없는 지역의 삶과 정서가 들었다고 했다. “정월에 싹이 나서 음력 9월까지 먹을 수 있어서 정구지거든요. 시래기하고 묵은김치만 있을 때 정구지를 먹어요. 얼마나 반갑겠어요. 봄이 오기 전부터 음력 9월이면 10~11월인데 그때까지 반찬이 돼주니까.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겨울 들기 전 부족한 비타민을 채워주는 말이 들어간 거예요. 가난한 삶이 반영된 말이죠.”
헌법소원에 참여하고, 탯말을 기록했던 경험이 이들에게 남긴 유산은 특별하다. 심씨는 당시 시장과 경로당을 직접 찾아다녔다. 격식을 갖춰 묻고 답하면 자연스러운 말이 나오지 않아 온종일 옆에 붙어 관찰했다. 이런 경험이 그를 바꿔놓았다. 문학 카페 회원이던 심씨는 이후 지역말을 쓴 시로 등단했다. 지금도 심씨는 탯말로 시를 쓴다.
“저기 저 목련꽃은 봄이 되면 다시 피는데 나는 언제 다시 피긋노?
그케요, 아침 이슬 저녁노을 자고 자도 모르겠니더”
―심인자, ‘그케’ 중에서
“그렇게 헌법소원을 한 뒤로는, 글 쓸 때 ‘입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듯이 쓰니까 글이 부드러운 느낌이 있더라고요.” 윤씨가 말했다. 시를 써오던 이씨는 “(이전에는) 경상도말로 시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이제는 좋은 지역말을 들으면 다 메모해놨다가 그 말로 시를 쓰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탯말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은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는다. 심씨는 전라도 탯말이 “그렇게 정스럽더라”고 했다. “우리(경상도)는 속에 정이 있고 뱉는 말은 툭툭하거든요. 근데 전라도말은 입안에 넣어 굴려보면 아주 정스러운 거예요. 어른들에게 많이 읽어드렸는데 제가 굉장히 감동받았어요. 이 지역 정서가 이렇게 아름답구나. 자꾸 잊히니 안타깝죠.”
대구·예산(충남)=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사투리가 그 지역에선 ‘표준말’이잖아요”[표준어에 맞선 사람들②]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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