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게임인가 공연인가…새로운 감각의 사운드 체험

장병호 2024. 2. 7.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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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산실' 음악부문 작품 '언/리더블 사운드'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의 첫 단독 무대
모듈러·언리얼 엔진 활용 '오디오 비주얼'
게임 영상과 전자음악으로 빚어낸 예술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새로 문을 연 틸라 그라운드(THILA Ground). 작은 클럽 같은 공연장 한 가운데에 우주선에서 볼 것 같은 복잡한 장치로 구성된 기계가 하나 놓여 있었다. 신디사이저의 한 종류인 모듈러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본면 이진원). 공연 시작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가재발은 어두운 무대 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모듈러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의 공연 ‘언/리더블 사운드’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장을 울리는 듯한 저음이 거대한 진동을 만들어냈다. 중첩되는 사운드와 함께 무대 뒤편 스크린으로 영상이 펼쳐졌다. 게임 제작에 주로 사용하는 3D 그래픽 툴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으로 만든 영상이었다. 백열전구가 덩그러니 켜져 있는 지하실 같은 풍경이었다. 점차 복잡해지는 사운드와 함께 스크린 속 지하실의 풍경은 어느 새 사막으로 변했다. 1인칭 시점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기분이었다.

가재발의 음악 공연 ‘언/리더블 사운드’(UN/Readable Sound)가 지난 2~4일 이곳에서 열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3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이하 ‘창작산실’) 음악 부문 선정작이다. 이번 ‘창작산실’ 작품들 중 가장 이질적인 성격의 공연이었다. 대중음악가로 활동을 시작한 아티스트가 게임 영상과 사운드의 결합을 시도한 이색적인 무대였기 때문이다. ‘창작산실’의 주 무대인 대학로에서 벗어난 것 또한 이번 공연의 특별함을 잘 보여줬다.

가재발은 90년대 후반 전자음악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대중에게는 ‘뽕짝’ 가수 이박사와 함께 작업한 ‘스페이스 판타지’, 그리고 작곡가 방시혁(BTS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 방시혁이 맞다)과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바나나 걸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대중음악계에서 자취를 감춘 그는 사운드 아티스트로 돌아왔고, 미디어아트 그룹 ‘태싯 그룹’을 통해 음악과 비주얼이 함께하는 새로운 창작 실험을 이어갔다.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의 공연 ‘언/리더블 사운드’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이번 공연은 가재발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선보이는 첫 번째 단독 무대였다. 가재발은 이번 공연을 25년 넘게 음악 작가로 살아온 자신의 시간을 담아낸 무대라고 소개했다. “스튜디오 레코딩 엔지니어, 테크노 음악가, DJ, 전자음악, 미디어아트, K팝까지 다양한 장르와 분야를 거쳤”고, “대구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공부하고 일했고 지금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와 세계를 주제별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사운드의 변화에 맞춰 영상이 실시간으로 함께 변화하는 ‘오디오 비주얼’이 50여 분의 공연 시간을 꽉 채웠다. 사운드와 상호작용하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영상은 그 자체로 훌륭한 비주얼 아트였다. 사막 같던 풍경은 반복과 변화를 거듭하는 사운드 속에서 침엽수로 가득한 숲이 됐다 빛바랜 도시로 변했고, 구름이 잔뜩 긴 하늘을 지나 거대한 달로 바뀌었다. 게임 비주얼과 사운드로 만들어낸 신세계였다.

기존에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각을 경험할 때 우리는 ‘예술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일반적인 전자음악 공연이었다면 강렬한 비트나 ‘훅’이 있는 멜로디로 관객을 흥분에 빠트리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리더블 사운드’에서는 이런 비트나 멜로디를 만날 수 없었다. 대신 반복과 변화를 거듭하는 사운드가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다.

가재발은 프로그램북에 실린 인터뷰에서 “‘사운드’가 가장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라며 “음악이 감상자에게 멜로디나 하모니의 형태로 청각적 감동을 전달하는 장르라면, ‘사운드’는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과 노이즈를 통해 새로운 감각과 감동을 전달한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언/리더블 사운드’는 사운드의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무대였다. 게임의 형식을 빌린 영상과 전자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또 다른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의 공연 ‘언/리더블 사운드’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운드 아티스트 가재발의 공연 ‘언/리더블 사운드’의 한 장면. (사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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