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석의 축구 한 잔] 최악의 탈락… 팀 클린스만은 아직 초창기? 그런 변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
(베스트 일레븐)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 2019 AFC UAE 아시안컵 8강 탈락 역시 결코 좋은 성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갓 닻을 올리고 출항한 새로운 대표팀 체제였기에 지켜보는 이들의 인내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팀 클린스만에는 이런 배려를 해서는 안 된다. 벤투 감독 체제와 달리 현 대표팀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7일 0시(한국 시각) 아흐메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준결승 요르단전에서 무기력한 0-2 패배를 당했다. 한국은 후반 8분 야잔 알 나이마트, 후반 21분 무사 알 타마리에게 연거푸 실점하며 64년 만에 아시아 정상 등극이라는 목표에 또 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충격적인 졸전이었다. 그런데 어찌 보면 예상 가능한 결과기도 했다.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 8강 호주전에서 승부차기와 연장 혈투까지 가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고도 이겨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지만 이건 팀이 아닌 몇몇 스타들의 번뜩임에 의존해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팀 클린스만은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 여섯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팬들을 납득시키는 내용을 보이지 못했다.
짚어보자. 첫 경기 바레인전에서는 이강인의 분투가 아니었다면 3-1 승리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경기 요르단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까지 패배 위기에 내몰리다 상대 자책골 덕에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세 번째 말레이시아전은 대회 최약체 중 하나인 상대에게 무려 세 골을 얻어맞으며 굴욕적인 무승부를 당했다.
16강 사우디아라비아전과 8강 호주전은 앞서 언급했듯이 손흥민 혹은 황희찬 등 팀 내 에이스들의 개인 역량에 편승하고 운이 따라 준결승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행운도 이번 요르단전에서는 조금도 통하지 않고 무너졌다. 본격적인 진검승부가 벌어지게 된 토너먼트부터 서서히 밑천이 드러나더니 결국은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경기 후 클린스만 감독에게 사임과 관련한 질문이 날아든 것도 능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더욱이 클린스만 감독은 부임 후 내내 카타르 아시안컵 우승을 공언했다. 아시아 최고 수준의 팀들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아시안컵 정상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는 건 감독된 처지로서 충분히 이해될 만한 일이나, 문제는 그만한 지도 역량을 보였느냐는 얘기다.
늘 그랬다. 팬들이 비아냥을 섞어 표현한 '해줘 축구'가 '못해주는' 상태가 됐을 때 대표팀의 경기력은 바닥을 쳤다. 그때 바로 감독의 역량이 비로소 빛을 발해야 했는데, 클린스만 감독은 이런 걸 보여주지 못했다. 도리어 이번 요르단전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던 박용우를 계속 쓰다 실점을 내주고, 이후 조규성을 넣는 수습책이 도리어 황인범에게 임무 과부하가 걸리는 빌미가 되었으니 완전한 낙제점이다.
그런데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으로 돌아와 이번 대회 경기 자료를 분석해 다가오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예선에 도전할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경기 후 남겼다. 과연 그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져야 할까?
비교대상이 있으니 전임 감독 체제다. 공교롭게도 2011 AFC 카타르 아시안컵부터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까지 대회가 늘 겨울에 열렸다. 이렇다 보니 2011년 대회에 출전한 조광래호, 2015년 대회에 나선 슈틸리케호, 2019년에 임한 벤투호 모두 대회 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직전 해에 FIFA 월드컵에 치른 후 대표팀이 개편된 후 5~6개월 만에 아시안컵에 출전해야 했다.
도중에 암초를 만나 결국 난파된 체제도 있고, 벤투호처럼 완주를 한 팀도 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준비 기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감독의 색깔을 완전히 입히는 데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클린스만 감독 체제는 그렇지 않다.
팀 클린스만은 이번 카타르 아시안컵 개막 전까지 지난해 3월 콜롬비아전을 시작으로 열두 경기를 치렀다. 전임 벤투 감독이 남겨놓은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 최종 엔트리로 치른 3월 A매치 2연전 때는 온전히 그의 팀이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해 배제하더라도 열 경기나 소화했다. 1년 가까이 팀을 이끌어가며 조율하고 그의 색깔을 입힐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전임 감독 체제의 아시안컵과 이번 아시안컵은 직접 비교해서는 안 된다. 클린스만 감독에게는 기회가 있었고, 더욱 차가운 잣대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심지어 지금까지 언급한 평가 대목에는 그가 심각하게 잡음을 일으켰던 근무 태도 논란은 빠져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이번 아시안컵을 준비하면서 팬들과 미디어에 대회가 끝나기 전까지 팀을 흔들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길 수차례 당부했다. 과정에서 팀을 흔들어버리면 지난 두 차례 월드컵에서 최악의 결과를 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꼴이 날 수 있다는 말을 했으며, 대회 후 감독을 향한 평가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아시안컵이 끝났다. 그는 이제 냉혹한 평가 무대에 섰다. 당연히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영향력을 끼친 이들도 못잖게 책임을 져야 할 순간이 왔다.
글=김태석 기자(ktsek77@soccerbest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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