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적’ 싣고 고문당한 사상계 전 편집인…진실규명 결정

진실화해위, 김승균씨 반공법 위반 불법구금 사건

1970년 7월 오적 사건으로 법정에 선 이들. 왼쪽에서 첫 번째가 시인 김지하, 세 번째가 사상계 편집인 김승균씨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지하 시인의 시 ‘오적’을 게재했다는 이유로 검거돼 고문을 당하고 징역을 산 전 사상계 편집인에 대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인권침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6일 열린 제72차 전체위원회에서 김승균(전 남북민간교류협의회 이사장)씨가 신청한 ‘반공법 위반 불법구금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이같이 결정하고 불법수사와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피해자와 가족에게 사과하고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심 등의 조처를 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고 7일 밝혔다.

김지하(본명 김영일, 1941~2022)의 시 ‘오적’은 부패한 한국 권력층의 실상을 을사늑약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등 5적에 비유해 판소리 형식으로 풍자·비판한 작품으로, 이 작품 때문에 김지하 시인은 반공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실형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월간 사상계는 문화공보부로부터 등록을 취소당했다.

김승균씨는 1970년 월간 사상계의 편집인으로 근무하던 당시 이 시를 사상계 5월호에 게재해 북괴를 이롭게 했다는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검거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법원은 김승균씨가 “오적 시의 내용이 계층 간 불화를 조장하고, 내란까지 이르게 하는 등 북괴의 대남전술에 동조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적 시를 사상계지에 발간·배포해 북괴의 활동을 이롭게 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의 판결문, 수사·공판기록 등 각종 자료를 조사한 결과 1970년 6월1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김승균씨를 사상계 사무실에서 임의동행 형식으로 연행했으며, 이런 경우 사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통상의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해 형사소송법상 구속 규정을 위반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와 허위자백 강요가 있었다고도 봤다. 진실화해위는 김씨와 같은 사건의 피고인들 또한 당시 수사기관에서 당한 고문 등 가혹행위에 대해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을 했다고도 밝혔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