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예와 거부 [이상헌의 바깥길]
이상헌 |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프란츠 카프카(1883~1924)를 다시 읽었다. 시민들이 돌연 죽은 이유를 파헤쳐보자는 법은 거부해야 하고, 일터에서의 죽음에 책임을 면밀히 따져보자는 법은 유예하자는 주장으로 소란스러운 날이었다. 이런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 날에는 난감할 정도로 난해한 카프카를 읽어봐도 좋겠다 싶었다.
‘소송’을 먼저 꺼냈다. 검은 옷이 유독 많이 나오는 블랙코미디다. 모든 검은 것들은 슬프면서 웃긴다. 예컨대 누군가의 죽음을 맞아 까만 옷을 입는 행위만으로 우리에게는 슬픔의 언어가 된다. 죽음에 관심 없거나 기뻐하거나 혹은 그 죽음을 책임져야 할 사람도 검은색으로 몸을 덮으면 슬픔의 행위로 인정받는다. 세상의 온갖 색을 모아 만든 검정이니 어쩌겠나. 검정은 부조리하고 변태적이고 오리무중이다.
소설의 시작은 기괴하다. 주인공 사내는 난데없이 정체불명의 인물들에게 체포당한다. 누군가 중상모략한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죄지은 게 없으니, 그는 체포 이유를 따져 묻는다. 하지만 그들은 혐의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고 사내를 구속하지도 않는다. 다만소환 날짜가 일요일이라는 말만 남기고 떠난다.
이 모든 것이 착오이자 오해라고 생각한 사내는 상황의 모호함을 섣부른 짐작으로 해결하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소환 장소는 사람들로 어수선하다. 수사하는 줄 알았는데, 가서 보니 공개재판이다. 사내는 주눅 들지 않고 적극적으로 소명한다. 아무런 죄없는 사람을 비정상적으로 체포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법정 한쪽 편에 앉은 사람들은 그의 주장에 호응하지만, 다른 편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한쪽 편의 응원에 사내는 금세 의기양양하지만, 결론은 재소환이다. 알고 보니,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모두 배지를 달고 있다. 편을 나누어 싸우는 척하면서 우리를 혹하게 하는 정치판 같은 곳.
사내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죄목에 무죄를 입증하려고 애쓰지만, 필사적 노력이 계속될수록 개인적 결백은 아무런 의미 없고 홀로 방어할 여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깨달음의 고통도 커진다. 여기저기 인맥과 소개를 통해 도움을 찾는 과정은 역설적으로 ‘죄’의 그늘을 짙게 하는 과정이다. 타인의 도움을 구할수록 타인의 의심은 커진다. 믿었던 변호사는 탄원서 하나 써주지 않고, 직장생활도 엉망이 된다. 긴 길을 돌아온 사내는 혼자 힘으로 변호하기로 하지만, 불안한 마지막을 예감한다. 꼭 일년이 지난 날, 그는 까만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두 남자에게 끌려간다. 여전히 이유를 모른 채, 그는 날카로운 칼이 자신의 심장에 내려꽂히는 것을 보며 죽는다.
‘소송’은 잔인할 정도로 불친절하다. 죽음의 시작과 이유를 끝내 알려주지 않는다. 논란도 많고 해석도 제각각이다. 사람은 자아를 찾으려고 치열한 전투를 치르지만 그렇게 얻은 자아는 그 끔찍한 투쟁을 닮는다는 것이 카프카의 유머라는 해석도 있다. 평생 우울증과 싸우면서 기상천외한 재밋거리를 찾았던 재주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해석 방식이다.
나는 다르게 읽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을 읽었던 날의 소란 때문인지 책이 다르게 읽혔다. 소설 속 숨 막히는 세상은 카프카 본인이 겪고 보았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마흔을 갓 넘긴 이른 나이에 죽기 전까지 그는 직장 한군데서 15년 정도 건실하게 일했다. ‘산업재해보험연구소’다. 오늘날 한국으로 치면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보건공단의 업무를 담당했다.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에는 일하다 다치고 죽는 사람이 손쓸 수 없이 많았다. 손발이 잘리고 깔리고 떨어져 죽었다. 카프카는 그런 사건을 조사하고 산재노동자에게 보상해주는 일을 했다. 산업안전 관련 규제를 회피하거나 무력화하려는 기업들과 힘겨운 싸움을 했다. 힘을 가진 세력의 저항이 강하다 보니, 법은 모호해졌다. 죽음은 있었으나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사건들이 넘쳤고, 피해노동자는 입증이나 방어가 힘들었다.
카프카는 그런 ‘불가사의한’ 현실을 분석하고, 중재하고, 건조한 언어로 보고서를 썼다. 일터에서 사고를 당한 사람이 엄정한 조사와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러 나섰다가 외려 죄를 만들어 가고, 그 두려움 때문에 조사와 보상을 포기하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유예되지 말아야 할 것은 유예되고, 거부되지 말아야 할 것이 거부되는 ‘소송’의 일상. 카프카는 현장을 끊임없이 찾아 그 부조리함을 명확한 언어로 고발하려 했고, 그런 만큼 직장에서 싸울 일이 늘었고, 결국 ‘소송’의 사내처럼 외로웠다.
주인공 사내가 처형당하는 장소는 상징적이다. 큰 둥근 바위가 흔들리고 있는 절벽 끝. 이곳은바로 카프카가 조사 나가서 수많은 위험 요인을 적발하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채석장이다. 보호안경과 같은 안전장비도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된 장비도 사용하지 못하게 한 곳이었는데, 심지어 임금을 술로 지급하고 술 마시며 일하는 것도 허용했다고 한다. 카프카가 보고서에 담담하게 적어둔 내용이다. 슬프면서 웃긴 블랙코미디의 완성판이었다. 그가 본 현실은 그가 쓴 소설보다 더 기괴했다.
카프카는 이 소설의 시작과 마지막을 먼저 완성한 다음, 시간이 날 때마다 중간 내용을 채웠다고 한다. 시작과 끝이 뻔한데, 서두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원고를 모두 태워 없애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친구가 그의 ‘진의’를 지레짐작하여 그가 죽자마자 소설을 출간했다. 소설의 마지막을 먼저 썼으니, 카프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진작에 써둔 셈이다. 주인공의 입을 빌렸다. 사내는 죽음의 칼날이 번쩍일 때 짧은 탄성 같은 말을 남겼다.
“개 같다!”(Wie ein Hund!)
위대한 소설가란 우리가 감히 드러내지 못한 마음의 형상을 명징한 언어로 표현하는 사람이다.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이 구절을 따라 되뇌었다.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 마치 노래라도 부르는 것처럼. 카프카가 남긴 유머는 어쩌면 이 구절 단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나니, 배지를 단 사람들이 유예하려던 중대재해법은 유예의 신세를 면했으나, 이태원특별법은 거부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화두 같은 사내의 외침이 다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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