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와 함께 유영국도 있었다… 강렬한 ‘K-추상’ 유럽 첫선
한국의 첫 추상화가로 꼽혀
사시사철 다른 자연의 에너지
서양의 순수 추상언어로 표현
산에 몰두한 60~70년대 작품
총 6개의 전시 통해서 재조명
이탈리아 베네치아(베니스)에 위치한 퀘리니 스탐팔리아(Querini Stampalia) 재단 미술관은 16세기 지어진 유서 깊은 공간이다. ‘영혼의 건축가’로 불리며 국내에서도 리움미술관 등을 설계해 잘 알려진 마리오 보타를 비롯해 20세기 건축 거장들이 리모델링에 참여하면서 고전적인 아름다움에 모더니즘의 미학이 스며든 특색 있는 장소로 이름을 알렸다. 건축가 유현준이 지난해 펴낸 ‘인문 건축 기행’(을유문화사)에서도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미묘한 물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건축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공간은 오는 4월부터 시작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축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유영국(1916∼2002)이 유럽을 만나는 장(場)이 된다. 베니스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로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유영국의 작품을 소개하는 개인전 ‘무한 세계로의 여정’(A Journey to the Infinite)이 열린다. 김인혜(전 국립현대미술관 근대미술팀장) 큐레이터가 기획을 맡은 이번 전시는 한국의 자연 풍경을 서양에서 시작된 추상 언어로 해석하려 했던 유영국의 회화적 성취를 유럽에 처음 알린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진다.
유영국의 개인전은 본전시를 비롯해 총 6개의 병행·위성 전시가 열리며 어느 때보다 한국 미술이 돋보이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한국 작가의 전시다. 김환기와 함께 한국에서 처음으로 ‘추상’을 실험한 K-미술의 선구자란 점에서다. 제3세계, 소수자 등 그간 조명받지 못했던 미술사를 발굴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이번 비엔날레의 방향성과 가장 잘 맞닿아 있는 작가로도 볼 수 있다. 김인혜 큐레이터는 “해외 컬렉터나 한국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조차 한국의 단색화만 많이 알지 않느냐”면서 “단색화 작가들보다 더 이전 세대의 스승이자 선배로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는 전시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영국의 화업은 최근 들어 해외 미술계에 소개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뉴욕의 대형 화랑인 페이스 갤러리에서 처음 서구권에 소개된 이후 지속적인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동시대 미술에서 한국 작가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시장 측면에서도 한국의 비중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한국의 첫 추상화가인 유영국의 예술세계도 덩달아 주목받는 것이다.
김인혜 큐레이터는 “김환기와 달리 유영국의 작품은 아직까진 덜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최근 해외시장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단색화와 달리 아주 강렬한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이런 화가도 한국에 있었다는 걸 이번 전시에서 보여줄 수 있다”면서 “한국의 자연이 가진 에너지를 표현한 동양적인 시각을 서양 관객들에게도 새롭게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유영국은 한국의 자연관을 작품에 끌어와 사시사철,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숭고한 에너지를 추상적 회화언어로 변환하려는 독특한 실험을 한 작가다. 동시대를 살며 일본 문화학원에서 함께 수학한 이중섭이 초현실주의에 끌린 반면 유영국은 당대 아방가르드 양식의 최전선에서 어떤 서사도 배제한 채 자연의 질서를 엄밀한 회화적 언어로만 구현하고자 했다.
김 큐레이터는 “유영국의 고향인 경북 울진이 산이 높고 바다가 깊은 곳인데 이곳의 아름다움을 서양의 순수 추상 언어로 표현하는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고 했다.
이번 전시에선 생전 “산은 내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말하며 산에 몰두했던 유영국의 1960∼1970년대 작품들이 대거 선보인다. 도입부인 1층과 2층에서 유영국의 삶과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후 3층에서 대표작을 본격적으로 보여줄 계획이다.
김 큐레이터는 “마치 산의 정상에 오른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1960년대 중에서도 1968년이 화업이 절정에 달한 시기인데, 방탄소년단(BTS) RM의 소장품도 한 점 출품된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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