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여행자는 사진, 글 등 각자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여행을 정리하고 추억한다. 그중에선 그림으로 추억을 남기는 사람도 있다. 인상 깊었던 여행지의 풍경을 직접 그리며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황찬주 씨도 그림으로 여행을 기록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광고회사에서 일하는 7년차 직장인이다. 그는 대학 시절 7개월간 배낭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당시의 추억을 토대로 여행 에세이를 펴냈다. 26살, 가장 무모했던 시기에 다녀온 낭만적인 여행이었다는 의미를 담아 붙인 제목의 책, ‘되는 대로 낭만적인’이 그것이다.
호기심 하나로 세계 일주를 떠난 사연
황찬주 씨는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다. 그는 평소 혼자 상상하거나 세상의 이런저런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호기심이 점점 커진 끝에 새로운 길을 찾은 때는 대학 졸업 직전이었다.
문득, 익숙한 동네가 아닌 넓은 세상이 궁금해졌던 그는 더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물론 한두 달의 유럽 여행이나 동남아시아 여행을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특정 지역이 아닌, 여러 문화권의 삶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었기에 그는 과감히 세계 일주를 택했다.
“두 눈으로 여러 문화권을 보고 느끼고 싶었습니다.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이때가 아니면 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계여행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자마자 휴학하고 돈을 모았죠.”
순수한 호기심 하나로 황찬주 씨는 7개월간 전 세계를 여행했다. 그는 중국에서 세계 여행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물론 거리만을 이유로 중국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황찬주 씨는 먼 지역으로 이동하며 달라지는 문화를 직접 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외 여정은 즉흥적이었다. 대략적인 국가별 루트만 정해두고 자유롭게 여행했다.
“가까운 지역에서 먼 지역으로 이동하며 점차 달라지는 문화를 체감하고 싶었습니다. 여정은 즉흥적이었어요. 덕분에 갑자기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들른다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많았죠.”
오랜 기간 여행한 만큼, 겪은 에피소드도 많다. 한번은 중국 여행을 하던 중, 뜻밖의 장소에서 한국어 간판을 단 식당을 마주한 적 있었다. 바로 직전, 노숙까지 할 만큼 고생을 했던 터라 유독 우리말이 반가웠던 황찬주 씨는 며칠 동안 그 앞을 서성였다.
알고 보니 식당은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복구 사업 중이었다. 그간 식당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황찬주씨는 실내 건축 전공을 살려 식당 내부 디자인을 도왔다. 물론 당시 설계한 것이 그대로 완성되진 않았지만, 황찬주 씨는 지금도 그때의 경험이 생생하다.
“도울 만한 일을 여쭤보니 실내 디자인을 부탁하시더라고요. 마침 제가 실내 건축을 전공했기에 함께 모여 공간 계획을 했죠. 그대로 식당이 완공되진 않았지만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여행하며 전 세계를 그림으로 기록한 사연
그렇게 황찬주 씨가 7개월간 보고 느낀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되는 대로 낭만적인’이다. 다채로운 이야기도 좋지만, 진짜 매력은 그림에 있다. 그는 책 곳곳에 그가 여행 중 직접 그린 그림을 넣었다.
지금이야 수준급 그림 실력을 보유했지만, 그는 원래 그림을 그리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관심도 없었던 그림을 직접 그리기 시작한 것은 대학 전공을 실내 건축으로 정하면서부터다. 황찬주 씨는 설계 수업과 제도 수업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그림과 디자인에 친해졌다.
본격적으로 그림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건 건축설계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부터다. 그는 당시 다니던 사무실의 소장이 펜 드로잉으로 건축을 시작하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이에 시간이 날 때마다 펜 드로잉을 연습한 결과, 여행 중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림을 잘 그리지 않았던 만큼, 여행이 진행함에 따라 그의 그림 실력은 눈에 띄게 발전했다. 처음엔 유명한 건축물을 그렸지만, 나중엔 호스텔, 동네 식당 등 원하는 공간이라면 어디든 그림으로 남겼다.
모든 그림이 소중하지만, 황찬주 씨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그린 파르테논 신전을 특히 아낀다. 그는 오래전부터 파르테논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꿈꿔왔다고 했다.
그럼에도 직접 본 신전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그간 그림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했지만, 파르테논의 웅장함에 완전히 압도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며칠간 신전을 방문한 끝에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이후, 현실에서 원하던 일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불만이 생길 때면 황찬주 씨는 파르테논 신전이 떠오른다고 했다. 동시에 어느 순간부터 현실에 안주하는 자기 모습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본 파르테논 신전은 상상 이상으로 경이로웠습니다. 3일을 꼬박 신전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죠. 문득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내가 그간 꿈꿔온 모습이었다고.”
되는 대로 낭만적인 여행 이야기
‘되는 대로 낭만적인’을 구상하게 된 계기도 그림에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황찬주 씨는 그간 남긴 그림을 보며 묵혀두기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친구를 꼬드겨 학교 정문 앞에 작은 전시를 열었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전시였지만, 보는 이의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웠다. 자연스레 다음 단계로 눈을 돌렸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하던 황찬주 씨의 선택이 바로 책이었다. 전문적으로 글쓰기를 배운 적은 없다. 그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자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여행에서 느낀 점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다는 것 역시 그가 책을 펴낸 이유 중 하나다. 그는 207일간의 여정을 통해 인생이 크게 바뀌었다고 전했다.
세상을 넓게 보는 자세를 배웠다는 그는 친구나 후배에게 자기 경험을 들려주길 원했다. 물론 여행이 절대적으로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행기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랐다.
“저에게 여행은 에피소드 이상의 값진 경험이었기에 이를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고 싶었어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07일간의 여행에서 제 인생이 바뀌었거든요.”
황찬주에게 여행이란
황찬주 씨가 인생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균형이다. 그리고 그는 여행에서 삶의 균형을 배웠다. 그렇다고 무조건 여행을 권장하는 건 아니다. 황찬주 씨는 여행 중 만난 인플루언서가 여행만 하며 오히려 자신의 길을 잃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마주한 현실에선 취업이라는 목표 하나로 더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황찬주 씨는 어느 하나의 상황에 갇혀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전했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한 곳에 매몰되지 않고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고민만 하기엔 세상엔 행복하고도 아름다운 요소가 너무 많으니까요.”
안주하는 대신 더 넓은 세상을 지향하길 권하는 황찬주 씨는 이제 도전을 앞둔 사람에게 지금이 가장 두렵지 않은 순간이라고 조언한다. 나중에 인생을 돌아봤을 때, 추억할 만한 요소를 마련하고 싶다면 지금 고민하지 말고 도전해야 후회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저도 지금 하던 일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떠나라 하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아직도 대학생 때 세계 여행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꼭 그때가 아니면 못 하는 일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도전하기에 더 어려워지는 일이 많기에 지금이 가장 두렵지 않은 순간이라는 걸 명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