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수출 아닌 방산협력에 주력을
[세상읽기] 김양희│대구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2023년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130억달러다. 같은 해 수출 10위 품목인 바이오헬스(134억달러)와 견줄 만하다. 2022년에는 173억달러를 기록해 무선통신기기(172억달러, 10위) 수준을 넘어섰다. 이렇다 보니 도처에 ‘케이(K)방산’ 찬가가 넘쳐나고 방산 수출이 ‘미래 먹거리’라느니, ‘글로벌 골드러시’라는 부박한 표현들이 거리낌 없이 나돈다.
지난달 국회에서는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현 15조원에서 최대 35조원까지 늘리려던 수출입은행법 개정안 통과가 미뤄졌다. 개정안 발의는 30조원 규모의 대폴란드 방산 수출 2차 계약을 염두에 둔 조처였는데, 상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얼마 전 한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한국과 공동개발 중인 한국형 초음속전투기 KF-21 관련 자료를 빼내려다 적발된 사실이 보도되었다. 2011년에는 그 반대의 일도 있어선지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다. 인도네시아는 개발분담금 1조6000억원 중 1조원가량은 지급을 미룬 채 제3국과 전투기 도입 계약을 맺었는데도 한국은 영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위 세개 뉴스를 엮어 보면, 덩치는 부쩍 커졌는데 행동거지는 영락없는 어린이가 연상되지 않는가? 방산 수출은 급성장했다는데, 국내 여건도 역량도 미흡한 한국의 현주소다. 그러니 ‘우리가 왜 민간 대기업의 방산 수출을 지원하고 저런 인도네시아와 무기를 공동개발하는가’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이를 ‘우리가 왜 방산 협력을 해야 하는가’로 바꿔보자. 그러면 무엇이 보일까? 경제안보 핵심수단, 방산이 드러난다.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은 방산 수출이 아니라 방산 협력이고, 이를 포괄하는 안보 협력이다.
폴란드와 같은 우방과의 방산 협력은 일촉즉발의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 방산 물자의 상호운용성 증대와 국외생산 효과를 가진다. 끈끈한 경제안보 협력이 절실한 동남아 국가들에 한국의 방산 물자는 지역 내 영향력이 막강한 중국이나 일본에 견줘 뚜렷한 경쟁우위를 지닌 희소 품목이다. 자원 부국 중동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강대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한국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수단이자 전략적 지렛대다.
미국의 2023회계연도 방산 수출액은 전년보다 16% 증가한 2384억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정부가 중개하는 대외군사판매(FMS)는 전년보다 55.9% 급증해 역대 최고액(809억달러)을 기록했다. 미 국무부는 이를 안보에 긴요한 대외정책 수단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전쟁 피로감으로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0월 텔레비전 연설에서 ‘민주주의 수호’라는 그간의 방산 협력 대의명분을 접고 ‘방산 수출이 국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다’는 논리를 폈다가 공화당으로부터 천박하기 그지없다는 비난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크라이나의 고통, 가자의 절규가 미국 방산 수출의 순풍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어느 나라도 국가의 안위와 직결된 방산을 외면할 수 없다. 특히 내수시장이 협소한 한국에 방산 수출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재원 절감, 첨단기술 획득에 더해 국내생산 유발, 고용 창출이란 경제적 효과도 제공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를 대놓고 자랑하고 관련 부처와 국외 공관이 방산 수출 실적에 매달리는 분위기는 미국, 독일 등 방산 강국의 견제와 ‘무기 장사꾼’ 오명을 자초했다. 근시안이다.
유럽과 중동에서 동시에 화염이 번지고 있다. 1월의 대만 총통 선거 결과 대만해협에서도 더욱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우발적 충돌 가능성도 제기된다. 만일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백악관에 재입성할 경우, 그는 거래의 달인답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이나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주요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군비 증강에 나서는 연유다. 미래전의 승패를 좌우할 우주전, 사이버전에도 대비해야 한다. 방산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나 이제는 점점 커가는 덩치에 걸맞은 옷과 품행이 요구된다. 종합적인 방산 협력 인프라와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 중견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거듭난 한국의 품위를 지키고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ESG)를 고려한 방산 협력 청사진이 필요하다. 방위사업법 시행령 68조나 전략물자수출입고시 6조 등 관련 법제도 재점검해야 한다. 이 길이 길게 보면 한국에는 유익하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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