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그리고 광주…6월은 진상규명의 끝 아니다
[전국 프리즘] 정대하│전국부 선임기자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특전사령관이 체포되는 장면이 두고두고 눈에 밟혔다. 공수특전여단장 김창세(김성오 분)는 부하를 시켜 특전사령관을 체포한다. 자신의 상관을 체포한 김창세의 실제 모델은 최세창(육사 13기) 3공수여단장이다. 최세창은 전두환(육사 11기)이 이끌던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핵심 멤버였다. 1960년 대위 때 전두환과 함께 미국 포트베닝 육군보병학교 특수전 교육기관에서 ‘레인저 코스’(유격훈련 과정)를 밟았다. 12·12 쿠데타 직전인 1979년 12월9일, 전두환은 서울 연희동 자택으로 최세창을 불러 밀담을 나눴다.
최세창은 1980년 5월20일 아침 광주로 간다. 전두환 반란군은 7·11공수여단에 이어 3공수여단을 증파했다. 최세창은 그날 밤 광주역에서 부대에 실탄을 배분한다. 그날 시민 4명이 3공수여단 군인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 전두환 반란세력이 군의 발포를 정당화하려고 내놓은 논리인 자위권 발동이 결정되기도 전이다. 그런데도 최세창은 과거 검찰 수사에서 “(실탄 지급은) 대대장의 건의를 받아 제가 내린 결정”이라며 발포 명령의 윗선을 부인했다. 그는 12·12 반란으로 5년형을 선고받았을 뿐, 5·18과 관련해선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광주역 첫 집단발포로 저항의 불길은 거세졌다. 이튿날인 5월21일 오후 옛 전남도청 앞에선 30여분 동안 11공수여단 군인들이 집단발포를 했다. 앉아쏴 자세로 총을 쐈고, 건물 옥상에서 비무장 시민들을 정조준했다. 도청 앞 집단발포 명령을 누가 했는지는 진상규명의 핵심적인 과제였다. 당시 광주에 파견된 공수여단들은 31사단에 배속돼 공식 지휘를 받게 돼 있었지만, 보안사-특전사-공수여단으로 이어지는 별도 명령체계가 가동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웅(육사 12기) 11공수여단장은 지금껏 ‘도청 앞 집단발포 현장에 있지 않았다’고 부인해왔다.
2019년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출범도 그 때문이었다. 1988년 국회 청문회 등 9차례 공식 조사에서도 발포명령권자를 밝히지 못했다. 조사위는 지난해 12월 말로 4년간 활동을 마무리했다. 조사위는 현장 계엄군 2800여명 등을 조사했고 행방불명자들의 소재를 일부 확인하고 성폭행 사실 규명 등을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17건(4건 병합) 중 5건은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내렸다. 전두환·노태우 등 5·18 관련자들이 살아 있을 때 공개적으로 질의하는 청문회 한번 열지 못하고, 강제수사권 한번 발동하지 않고, 압수수색 한번 하지 않은 채 내린 결정이다. 조사위는 올해 6월26일까지 종합보고서를 대통령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문제는 종합보고서 일부 내용이 되레 5·18 왜곡을 확대하는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 난 ‘시민군 무기고 탈취 사건’이다. 한겨레는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주도해 만든 ‘5·11연구위원회’에서 경찰 자료를 왜곡한 사실을 2017년 5월 단독보도한 바 있다. 보안사는 1980년 5월21일 시민군의 최초 무기 접수 시간(전남 나주 반남지서)을 오후 5시30분에서 오전 8시로 조작해 국회에 제출했다. 금남로 집단발포 이전에 시민들이 무장한 것처럼 조작한 것이다. 이 거짓 기록 때문에 1996년 검찰 수사 때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로 시민들을 살해한 반란군들은 ‘내란목적살인죄’로 기소되지 못했다.
조사위는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요청대로 17건 개별 보고서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또 6월 종합보고서 제출 때 첨부할 대정부 권고문에 발포 명령 등 5건의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위와 향후 과제 등을 담아야 한다. 광주시도 ‘조사위 이후 시즌2’를 준비해야 한다. 시의회 5·18특위와 협의해 조사위의 개별 보고서들을 받아 분석한 뒤, 소규모로라도 전문가들이 국가 차원의 후속 조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다시 거짓이 진실을 가려서는 안 된다.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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