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봄날이 얼른 오기를…" 설 앞두고 활기 잃은 서천특화시장
시장이 삶의 터전이라는 상인들 "희망 가지려 노력"
서천군민 "하루빨리 정상화돼 예전의 북적거리는 시장 되길"
(서천=연합뉴스) 강수환 기자 = "전국에서 관광버스 타고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장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됐시유."
지난 6일 오전 찾은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 먹거리동 1층은 적막하고 한적했다.
7일 서천군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시장 화재로 수산물동 등 227개 점포가 불에 타버리면서 중단됐던 농산물동과 먹거리동 영업은 지난 5일부터 재개됐다.
먹거리동 한쪽에서 TV를 보고 있던 치킨집 상인 부부는 "피해를 많이 입은 (수산물동·일반동) 사장님들 앞에서 감히 제가 무슨 이야길 하겠어요"라며 안타까워했다.
먹거리동 1층 상가는 조용했고 손님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6년째 이곳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장경순(71)씨도 "구정(설)을 앞두고 이맘때쯤이면 사람들로 엄청나게 북적이던 곳인데 이렇게 사람이 없는 것도 처음"이라며 "평소에는 가게가 워낙 바빠 잠깐씩 일해주러 나오는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는데, 손님이 너무 없으니까 본인이 먼저 나오지 않더라"라고 했다.
연중 가장 사람이 많고 바쁘다는 설 대목이 무색하게도 시장은 외부 손님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44개 점포가 있는 농산물동은 직접적인 화재 피해는 면했지만, 수산물동 피해 여파가 이곳까지 미치는 모습이었다.
설 대목을 앞둔 시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따금 오가는 손님들 외에는 한가한 모습이었다.
이곳에 들어와 2년째 야채랑 과일을 판매한다는 이모(50대)씨는 "수산물동이 워낙 크다 보니 손님들이 매운탕거리 사면서 이곳을 들려 야채 거리를 많이 사 갔는데, 지금처럼 손님이 없는 건 처음"이라며 "손님이 오든 안 오든 여기가 내 일터이니까 그냥 나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 장을 보러 온 80대 노인은 뒷짐을 진 채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며 "워쪄. 원래라믄 사람 겁나게 많았을텐디"라며 안타까워했다.
검게 그을려 철재 구조물 뼈대만 남은 수산물동과 일반동, 화마에 휩싸인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출입 제한 폴리스라인 등 시장 곳곳엔 화마의 흔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불이 난 지 2주가 지난 수산물동에는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올라왔다.
다 타버려 철재 구조물 뼈대만 남아버린 수산물동과 일반동은 화재 조사와 붕괴 사고 위험 등을 이유로 여전히 출입이 막혀 있었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까맣게 타버린 시장을 가리키며 피해 상인에게 "못 들어가요?"라고 묻기도 했다.
상인들은 시장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설명했다.
30년간 장사해온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서 장사한 수산물동 상인 김모(30대)씨는 "평생 이곳에서 장사해오신 어르신들에게 시장은 일터 그 이상의 의미"라며 "그야말로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에 현금이며 금붙이며 이들의 모든 것을 가져다 놓았던 것이고, 삶의 터전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상실감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껏 대목인 설 연휴 기간에 한 번도 쉬지 않았던 상인들은 이번에 처음으로 쉬어 본다며 씁쓸하게 웃어넘겼다.
김씨는 "불행 중 다행으로 좋게 생각하자면, 처음으로 가족들과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게 됐다"며 "4월에 임시 재개장을 할 때까지는 나도 대책을 세우며 봄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이 개장할 때부터 수산물동에서 장사를 해왔다는 70대 상인은 "마음을 비우고 살려고 하지만 마음은 그게 아닌 듯 매일 밤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이 상인은 "요즘 같은 시기에는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매일 바쁘게 장사했고 그만큼 주차장도 꽉 찼다"며 "답답해도 '시간이 약이다' 생각하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동 2층 상인회 건물에는 피해 상인들이 이날도 바삐 오가며 재개장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일반동 피해 상인들은 함께 모여서 "(곧 재개장이 된다고 하니) 모두 희망을 갖고 해봅시다"라고 외치며 의지를 불태웠다.
피해 상인들은 서천군이 마련한 피해 접수처를 통해 피해 복구 상담과 지역 은행권을 통한 무이자 대출 지원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어머니를 이어 30년 동안 수산물동에서 장사하는 유모(60대)씨는 "서천군과 전국 곳곳에서 한마음으로 도와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시장을 볼 때마다 아직도 가슴이 아픈데, 재개장만을 바라보며 희망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천에서 태어나 평생을 이곳에서 살아왔다는 서천 토박이 강기순(68)씨는 이날 오랜만에 시장 농산물동을 방문해 야채와 제수용 과일을 구입했다.
강씨는 "이맘때쯤이면 붐비는 정도를 넘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일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서천특화시장이 한순간에 이렇게 돼버려 지역주민으로서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면서 "상인들이 하루빨리 장사할 수 있게 돼 옛날처럼 북적거리는 시장으로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swan@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의문의 진동소리…옛날 가방 속 휴대폰 공기계 적발된 수험생 | 연합뉴스
- 타이슨, '핵주먹' 대신 '핵따귀'…폴과 대결 앞두고 선제공격 | 연합뉴스
- 주행기어 상태서 하차하던 60대, 차 문에 끼여 숨져 | 연합뉴스
- YG 양현석, '고가시계 불법 반입' 부인 "국내에서 받아" | 연합뉴스
- 아파트 분리수거장서 초등학생 폭행한 고교생 3명 검거 | 연합뉴스
- [사람들] 흑백 열풍…"수백만원짜리 코스라니? 셰프들은 냉정해야" | 연합뉴스
- 전 연인과의 성관계 촬영물 지인에게 보낸 60대 법정구속 | 연합뉴스
- 머스크, '정부효율부' 구인 나서…"IQ 높고 주80시간+ 무보수" | 연합뉴스
- '해리스 지지' 美배우 롱고리아 "미국 무서운곳 될것…떠나겠다" | 연합뉴스
- [팩트체크] '성관계 합의' 앱 법적 효력 있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