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건축] 통섭이 만들어내는 공공공간
도시의 공공공간은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주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토지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생산요소이다. 공공의 통제와 조절이 없다면 도시는 순식간에 자본의 개발에 의해 점령되어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은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다시피 할 것이다. 공공공간은 이렇게 취약한 도시에서 복리를 증진시키고, 경관의 질을 향상시키며, 녹지 확충을 통한 환경적 가치를 지켜나가는 역할을 한다. 물론 때로는 종교, 정치 등 강력한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용되기도 하지만.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유럽의 도시들은 오랜 시간동안 공공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왔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는 'public'의 어원인 'publicus'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다. 이는 '시민 남자가 모이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로서, 폴리스의 아고라가 공적 생활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장소로서 자리매김 했음을 이야기한다. 로마제국의 요새도시들은 군사적 목적을 지닌 도시의 상징적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포럼을 두어 상업적 활동의 거점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중세도시의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종교광장, 절대왕정 시대의 권력을 상징했던 기념비적 광장, 산업혁명기 열악한 근무 환경에 처해있던 노동자들을 위한 위락공간으로서 공원 등, 시대의 변화에 발 맞춰 도시의 필수불가결한 존재로서 공공공간을 곳곳에 마련해왔다.
우리가 도시의 공공공간을 떠올릴 때 이상적 모델로 이미지를 소환하는 유럽 역사도시의 광장은 이렇게 오랜 세월 다듬어진 사회, 경제, 문화의 시스템 속에서 구축해온 결과물이다. 근대 이전에 조성된 대부분의 광장들은 걸어다니는 사람이라는 주체를 대상으로 계획되었고, 기껏해야 마차 정도만이 도시를 점유하는 또 다른 개체였다. 유럽 역사도시의 공공공간은 이렇게 보행자가 도시의 절대적 사용자라는 전제에서 계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우리 사회는 급격하게 근대화를 맞이하며, 도시를 계획할 여유도 없이 급격한 양적 팽창에 따른 수요에 발 맞추기만도 벅찬 과정을 겪었다. 정교하게 계획된 공공공간을 도시가 지니지 못하게 된 것은 당연했다. 우리의 도시계획은 대부분 근대 이후 사회에 이르러 실행되고 있다. 현대의 도시가 지닌 특성 중에 하나는 도시의 사용자가 보행자를 넘어 자동차, 기차 등 다양한 기계장치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걸어다니는 인간만을 고려하여 만들어진 서구 도시의 고풍스런 광장과 같은 공공공간이 우리의 도시에서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근대적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신도시의 공원으로 대변되는 공공공간이 왜 서양의 역사도시와 같은 도시적 활력과 에너지를 뿜어내지 못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도시는 고도로 복잡해진 기반시설과 교통수단이 인간과 혼재된 곳이 먼저 만들어지고, 공공공간의 고민이 후행하는 역사를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서양의 고전적 방법론을 차용하는 것에는 한계가 클 수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또 다른 공공공간 생산방식이 요구된다. 다시 말해 전통적 공공공간의 관점에서 드러나지 않던 새로운 층위의 공공공간을 발굴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이는 도시의 기반시설과 건축, 교통 공간이 조우하는 교차점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야 한다. 하지만 관료주의적 시스템을 지닌 공공의 행정은 도시를 파편화하여 관리하는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도시의 공원은 공원녹지과에서, 버스나 지하철과 연관된 교통공간은 교통정책과에서, 길은 도로과에서, 일반건축은 건축과에서, 주거는 주택과에서 나누어 분장하고 있다. 이러한 조직구성은 거대한 도시를 컨트롤하기 위해 불가피한 방식이며 대안이 마땅치 않지만, 이로 인해 도시가 통합적으로 다루어지지 못하고, 각각의 부서 칸막이 안에서 각각의 예산으로 실행하게 된다는 점에 유념해야만 한다. 그 결과물은 유연하고 매끄럽게 연결되지 못하는 불친절한 우리의 도시 공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현대는 흔히 통섭의 시대라고 한다. '서로 다른 영역을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창의적 도약'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인데, 복잡다단한 우리 도시의 공공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별 칸막이를 넘어서서 머리를 맞대는 것만이 서구의 것과는 태생적으로 다른, 우리 도시만이 가질 수 있는 공공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해법이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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