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의 마음 사는 일에 집중… ‘1000만 영화’ 5편 탄생의 비결 [마이 라이프]

엄형준 2024. 2. 7.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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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룩’ 이윤정·강효미 공동대표
20년 영화 마케팅 ‘동업자’
명필름에서 만나 20대 후반에 창업
실패하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생각
무모해보인 도전이었지만 좋은 선택
발로 뛰면서 만든 성공신화
초기 컴퓨터 살돈도 없어 카페서 회의
첫 일감 ‘방과 후 옥상’ 이후 사무실 차려
영화 산업 디지털화가 사업에 큰 도움
도전하는 영화인 되고 싶어
한국 영화, 새로운 피가 필요한 시기 돼
굳은 신뢰 갖고 새로움 계속 추구할 것
기부·봉사 활동도 꾸준히 이어 가고파

“많은 분들이 그랬어요. 어린 너희들이 뭐를 할 수 있겠냐고. 기자들이랑 친하긴 하냐며 우려의 시선도 있었는데, 앞으로 친해지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죠.”

퍼스트룩 강효미 대표는 2005년, 인생 1년 선배인 이윤정 대표의 권유로 함께 회사를 창립하던 때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2000년대 초반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던 영화사인 명필름 마케팅 담당으로 만나 인연을 맺은 후, 올해로 20년째 함께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치기 어린 청년 사업가로 출발해 이젠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화마케팅사 대표로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을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퍼스트룩 사무실에서 만났다.

“명필름이라는 우산을 벗어나 과연 저는 어느 정도 실력일까를 시험해 보고 싶었어요. 과연 영화 일을 계속할 만한 실력이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고, 신뢰할 만한 사람을 찾다가 강 대표와 함께하게 됐어요. 그런 큰 결정을 어떻게 하느냐고 하는 분도 있었는데, 우리끼리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실패하면 다시 취직하면 되지 생각하고 독립을 했죠.”

이윤정(왼쪽), 강효미 퍼스트룩 공동대표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회사를 국내의 유력한 영화 마케팅사로 키워냈다. 지난 1월 3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퍼스트룩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자신들의 20년 도전기를 풀어놨다. 이재문 기자
이 대표의 말처럼 20대 후반인 두 여성의 당시 도전은 무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지금 돌아보면 좋은 선택이었다.

퍼스트룩은 20년간 ‘명량’, ‘도둑들’, ‘베테랑’,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5편의 1000만 관객 영화를 포함해 ‘변호인’, ‘영웅’, ‘헤어질 결심’, ‘아가씨’, ‘마녀’, ‘82년생 김지영’ 등 국내의 많은 영화와 ‘아이언맨 1·2’.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 등 수없이 많은 흥행 작품의 마케팅을 담당했다. 지난해엔 ‘콘크리트 유토피아’,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 등을, 올해엔 ‘도그데이즈’ 홍보를 책임지고 있다.

“일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둘 다 비슷해요. 저는 한 중학교 3학년 때쯤 일찌감치 꿈을 정했어요. 처음엔 문학에 꽂혔다가 연극으로 넘어갔다가 영화와 관련된 일을 반드시 해야겠다고 정했고, 그 후론 한 번도 꿈이 변하질 않았어요.”

이 대표는 초등학교 때 홍콩영화와 ‘빽 투 더 퓨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구니스’ 등을 보며 할리우드 영화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고등학교 땐 예술영화관을 다니며 (고백하자면) 그땐 이해하기도 어려웠던 테오 앙겔로포로스 감독의 ‘안갯속의 풍경’ 등을 보며 영화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

“전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가 좋다는 생각을 했고, 대학교에 가서는 꼭 영화일을 하고 싶단 생각을 했죠. 신기하게도 영화 포스터를 모으고, 영화 카피를 보거나 예고편을 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 전단을 모으기도 했는데 영화 마케팅이라는 일이 있다는 걸 알고 이걸 하면 좋겠다 마음먹었고, 지금까지 오게 됐죠.”

강 대표가 자신의 꿈 이야기를 덧붙이며, 꿈과 몸만 있던 회사를 처음 차렸을 때의 에피소드를 꺼냈다.

“컴퓨터를 살 돈도 없어서, 피씨방에 가서 기획서를 만들고 카페에서 회의를 했어요. 당시 ‘방과 후 옥상’ 영화 개봉하시는 팀에서 젊고 새로운 사람들이랑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기성회사 세 군데와 경쟁을 해서 저희가 일을 따냈어요. 회사 차리고 첫 개봉작이었고, 다른 영화들도 계약이 되면서 사무실을 빌릴 수 있었죠.”

이들의 창업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데는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한국영화계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저희가 독립했을 때는 시대적으로 산업이 디지털화돼가는 시기였어요. 영화 마케팅만 놓고 보면 그 전에는 직접 보도자료를 들고 언론사를 찾아간다든가 사진도 인화하고, 팩스를 보내고 이런 때였죠. 저 처음 입사 때는 영화 예고편을 필름을 잘라서 만들었거든요. 그러다가 뭔가 인터넷 매체가 생겨나고, 멀티플렉스가 생기고, 이젠 디지털 기술을 새롭게 익혀야 하는데, 저흰 젊고 (새로움을) 흡수할 준비가 돼 있었어요.”

그간 마케팅한 영화 중에서 기억에 남는 영화 3편을 들어달라는 질문에 이들은 3편으론 충분치 않다며 ‘추격자‘(2008), ‘명량’(2014), ‘검은 사제들’(2015), ‘아가씨’(2016), ‘콘크리트 유토피아’(2022) 등 5편을 꼽았다.

“‘추격자’는 나홍진 감독의 데뷔작이었고, 배우들(김윤석, 하정우)도 이제 막 주연으로 떠오르고 있는 때였고, 저희는 젊을 때였죠. 영화는 좋았지만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어요. 영화적 힘을 믿고 다른 영화보다 시사회를 빨리하고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했어요. 제작보고회에서 하이라이트를 길게 보여주고, 메가박스 코엑스 전관을 빌려서 일반 시사회도 했고요. 멀티플렉스 전관을 빌려서 시사회를 한 건 이례적이었어요. 그렇게 입소문을 냈고 스릴러는 망한다는 공식을 깼죠.”

강 대표는 그때의 기억을 하나씩 되살렸다. ‘명량’은 1761만명이라는 지금도 깨지지 않는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라는 점에서, ‘추격자’는 오컬트영화는 망한다는 공식을 깼다는 점에서 잊을 수 없는 영화다. 두 사람은 오컬트라는 장르에 대한 선입견을 깨기 위해 당시 뜨는 배우 강동원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영화를 홍보했다. ‘아가씨’는 이들을 처음 칸에 데려간 영화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난해 한국영화계 침체에도 손익분기점에 근접한 성과를 내고, 영화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영화 마케팅이라는 직업은 영화와 관련 없는 직군에는 아직 낯선 직업일 수 있다. 최근에는 영화 마케팅 대신 콘텐츠 마케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어떤 것인지 강 대표에게 물었다.

“영화를 만들고 개봉 전까지 그 영화에 대해 일반인이 정보를 얻는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게 마케팅이 하는 일이에요. 포스터, 예고편을 기획하고 만들고, 디자인팀과 편집 협업을 하고, 배우 인터뷰, 유튜브, 예능까지 섭외하고 시사회 등 행사를 열고… 모든 일이죠.”

언제 어떤 일이 터질 수 없는 일이다 보니 영화가 상영돼 막을 내릴 때까진 긴장의 연속이다.

“워라밸(일과 휴식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예상할 수 없는 변수들이 일할 때 힘든 점이겠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 때문에 업계를 떠나기도 하고요.”

이 대표는 크리스마스나 연말, 여름휴가 시즌 등 다른 사람들이 놀러 다닐 때 제일 바쁘게 일해야 하는 것도 이 직업의 힘든 점이라고 했다.

이윤정(왼쪽), 강효미 퍼스트룩 공동대표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회사를 국내의 유력한 영화 마케팅사로 키워냈다. 지난 1월 31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퍼스트룩에서 만난 두 사람은 자신들의 20년 도전기를 풀어놨다. 이재문 기자
“순간순간 힘들지만 잘 털어버려요. 그런 힘들 걸 둘이 얘기하면서 풀 수 있으니까 좋아요. 대화로 푸는 거죠.”

강 대표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을 보태고, 직업의 매력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가 영화를 소개하지 않으면 관객이 이에 대해 알 수가 없잖아요? 관객이 어떤 영화를 보고 재미있을 것 같다, 없을 것 같다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전략을 짜는 게 저희 일의 핵심이에요. 저는 제품 마케팅이랑 다르게 영화 마케터는 관객들에게 영화를 파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영화와 관객 사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흥행이 이뤄질 땐 보람을 느껴요. 이게 매력이죠.”

오랫동안 영화 마케팅을 해온 이들에게 근래 한국영화가 처한 위기를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쉽지 않은 문제인 듯 두 사람은 잠시 뜸을 들였다.

“새로운 얼굴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생각과 관점으로 영화를 기획하고 마케팅하고. 시나리오 작가일 수도 있고. 다시 한 번 새로운 피가 영화계에 들어올 때가 된 게 아닐까.”

이 대표의 세대교체론에 강 대표도 동의했다.

“본질적으로 동의해요. 그리고 근본적으론 관객의 눈높이에 모든 게 맞춰져야 할 것 같아요. 한국영화가 잘 되던 시기, 영화가 제시하던 눈높이에 관객이 맞춰주던 시기도 있었죠.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란 생각을 많이 해요.”

아무리 친해도 사업을 함께하기란 쉽지 않다. 공동대표 체제로 퍼스트룩을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비결이 궁금해진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요. 저희가 웃으면서 농담처럼 하는 말이 우리는 돈을 가지고 싸우지 않는다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동업을 하다 보면 서로 돈 가지고 다툼을 시작하면 불신이 생기잖아요. 그런 점에선 둘 다 깔끔하거든요. 세밀한 일 처리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이나 본질이 같다는 점도 중요하죠. 저 혼자 확신할 수 있는 게 50이라면, 둘이 함께 확신하면 100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강 대표가 먼저 입을 열고, 이 대표가 뒤를 이었다.

“둘 다 부지런해요. 누가 더 많이 일하고 누가 적게 하거나 하지 않아요. 저희는 약간 누가 열심히 하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 하거든요. 운이 좋았죠. 잘 맞는 거예요. 그런 사람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두 사람은 2020년 각각 5년 내 1억원 이상의 기부를 약정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했고, 2022년 12월까지 약 3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강 대표가 이 대표와 대화하고 가입을 결정한 건 한국영화의 흥행 절정기를 구가하던 2019년이었고, 실제 가입한 건 2020년 초반이다. 이때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질지는 당연히 몰랐다.

“코로나가 터질지는 몰랐죠. 그래도 외출을 못하니까, 생각보다 돈을 안 쓰게 되더라고요. 부담을 갖기 시작하면 한없이 부담인 거죠. 하다가 보면 다 되더라고요. 싱글이고 아이도 없으니까, 제가 돈이 얼마나 필요하겠어요.”

이 대표는 기부에 대해 덤덤히 말했다. 두 사람은 기부 외에도 꾸준한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만났을 때 강 대표의 코 부위엔 상처가 나 있었다.

“12월 초에 (서울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에 연탄 봉사를 갔는데, 강풍이 불어서 두께가 한 40㎝쯤 되는 나무가 부러지면서 강 대표가 그 밑에 깔렸어요. 나무랑 같이 저만치 날아가서 심각해 보였고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었죠. 그나마 좋은 일 하러 가서 이 정도로 끝난 게 아닌가 싶어요.”

함께 봉사활동을 나갔던 이 대표는 당시 강 대표의 머리에 큰 혹이 났었다며 자신의 주먹을 들어 보였다. 이들은 이 일을 액땜이라고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봉사를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끝으로 이들에게 처음 일을 시작하던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모습일지 물었다.

“과거는 패기와 열정이 넘치는 스물아홉 살. 지금은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는 중년이랄까. 앞으로도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는 마케터, 영화를 사랑하는 즐거운 영화인이 되고 싶습니다.”(이윤정)

“2005년을 생각하면 어떤 도전도 두렵지 않은 ‘패기’가 있었어요. 지금은 ‘성숙’에 대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무엇이 되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강효미)

◆이윤정 대표는…
●1977년 서울생 ●성신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겸임교수 ●2012 제3회 올해의 영화상 홍보인상 ●2012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홍보마케팅상 ●2013 영화마케팅사협회(KFMA) 초대 부회장
 
◆강효미 대표는…
●1978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2019 영화마케팅사협회(KFMA) 4대 회장 ●2012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홍보마케팅상 ●2014 제5회 올해의 영화상 홍보인상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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