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오빠’부터 ‘월드스타 관지노’까지 KBL 인기스타의 계보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2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허웅 이전에 이상민이 있었다
KCC가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해 황무지가 됐지만, 이전까지 전주는 그야말로 ‘농구의 메카’였다. KCC는 전주 시절 챔피언결정전 우승 후 선수단이 카퍼레이드를 펼치는가 하면, 챔피언결정전서 체육관에 입장하지 못한 관중들을 위한 길거리 응원도 선보였던 팀이다.
KCC를 전국구 인기구단으로 이끈 선수가 바로 이상민이었다. 이상민은 올스타 팬 투표가 도입된 2001-2002시즌부터 은퇴한 2009-2010시즌까지 9시즌 동안 단 한 번도 최다득표를 놓친 적이 없었다. 은퇴 시즌에는 평균 15분 48초 동안 3.8점에 그친 벤치멤버였지만, 팬 투표 10만 9673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5만 3891표(득표율 49%)를 받는 등 식지 않는 인기를 자랑했다.
이상민은 한국 농구가 배출한 최고의 인기 스타였다. 연세대 재학 시절 무릎부상 소식이 스포츠뉴스가 아닌 9시뉴스에서 다뤄지는가 하면, 훗날 KCC가 FA 서장훈을 영입하는 과정서 이상민을 지키지 못하자 그의 팬들이 본사에 찾아가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은퇴 발표 기자회견장 역시 “오빠, 1년 더 뛴다고 했잖아요!”, “우리 오빠 다른 팀이라도 보내주세요!”라며 눈물을 쏟은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단순히 인기만 많은 선수가 아니었다. 실력을 겸비한 슈퍼스타였다. 이상민은 KBL 출범 후 최초로 2시즌 연속 정규리그 MVP로 선정되는가 하면, 통산 3583어시스트를 남겼다. 이는 주희정(5381어시스트)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필리핀과의 4강에서는 극적인 버저비터를 터뜨리며 금메달에 기여했다. 이상민은 전성기를 한참 지나 서울 삼성으로 이적했지만, 만 34세에 개인 최다득점(35점)을 새로 쓰는 등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상민의 인기를 논하면 1990년대 연세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상민을 비롯해 문경은, 우지원, 김훈 등 잘생기고 농구도 잘하는 농구선수들이 ‘오빠부대’를 몰고 다녔고, 연세대 농구부에 발송된 팬레터를 실은 우체국 전용차도 따로 있을 정도였다. 서장훈은 현역 시절 점프볼과의 인터뷰에서 “숙소 앞에 500~600명의 팬들이 매일 찾아왔고, 팬레터는 1000통이 넘었다”라고 회고했다.
어린 시절 당했던 교통사고로 입은 팔 장애를 부단한 노력으로 극복했지만, 우지원에겐 늘 따라붙는 꼬리표도 있었다. ‘슛만 던지고 궂은일은 하지 않는 반쪽 선수’라는 평가였다. 팀 내 최고액 연봉을 받고 있었지만, 벤치멤버로 나서는 경기가 더 많아진 2006-2007시즌 초반에는 유재학 당시 현대모비스 감독을 찾아가 은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우지원의 농구 인생에 전환점이 된 날이었다. 우지원은 “스타 의식을 버려야 한다. 스스로를 낮추고 팀이 필요로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봐”라는 유재학 감독의 충고를 들은 후 궂은일에 눈을 떴다. “감독님과의 면담 이후에는 전반 끝난 후 자신의 리바운드가 몇 개인지를 먼저 살펴봤다”라는 게 현대모비스 관계자의 회고였다.
스타일에 변화를 주며 다시 코트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우지원의 별명은 ‘황태자’에서 ‘마당쇠’로 바뀌었고, 현대모비스는 2006-2007시즌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유재학 감독, 우지원 그리고 양동근이 프로에서 맛본 첫 우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최고의 티켓파워를 자랑하는 이상민이 떠났지만, KCC는 이후에도 개성 넘치는 스타들을 꾸준히 수급하며 전국구 인기구단의 면모를 이어갔다. 하승진, 전태풍과 함께 KCC에 ‘제2의 전성기’를 안긴 강병현은 ‘포스트 이상민’을 논할 때 첫 손에 꼽힌 스타였다. 잘생긴 외모를 지녀 중앙대 재학 시절부터 많은 팬을 보유했던 강병현은 인천 전자랜드(현 대구 한국가스공사)에서 데뷔한 후 한동안 성장통을 겪었지만, KCC로 트레이드된 이후 기량이 만개했다.
강병현을 보내고 서장훈을 영입한 최희암 당시 전자랜드 감독이 “어음을 보내고 현찰을 받았다”라는 코멘트를 남겨 화제를 모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강병현은 어음이 아닌 신권이었다. 선수 구성상 맞지 않는 1번 역할을 맡았던 전자랜드와 달리, 공격에서 자율성을 보장한 허재 감독을 만나자 화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팀 동료 하승진, 김민수(당시 SK)와 더불어 한때 강력한 신인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주 팬들은 이상민의 뒤를 잇는 스타의 등장에 환호했고,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패러디한 ‘꽃보다 강뱅(강병현의 별명)’, ‘꿀물강뱅’ 등 개성 넘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팬들이 줄을 이었다.
농구만 잘했던 게 아니다. 춤, 노래 실력까지 겸비해 2011-2012시즌 올스타게임에서 각종 특별공연을 책임졌다. KBL이 2011-2012시즌에 신설한 초대 인기상의 주인공 역시 김선형이었다. 김선형은 이어 2012-2013시즌에 SK를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이를 토대로 올스타 팬 투표 최다득표에 오르기도 했다.
김종규는 입단하자마자 LG에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안겨 김민구를 제치고 신인상을 수상했고, 2016-2017시즌에는 인기상도 차지했다. 이어 KBS2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현주엽 감독과 티키타카를 선보여 2018-2019시즌에도 인기상의 주인공이 됐다. 인기상을 2차례 이상 수상한 최초의 선수가 바로 김종규였다.
‘아니, 신인인데 이렇게 완벽하다고?’ 2004년, TV에 나온 남자 아이돌그룹을 보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5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멤버들 모두 비주얼은 기본이며 노래도, 춤 실력도 뛰어난 완성형 아이돌이었다. 마치 H.O.T., 신화 등 수많은 아이돌을 제작한 SM 엔터테인먼트의 노하우가 집약된 그룹 같았다.
얼마 전 점프볼 활동을 마무리한 2002년생 인터넷기자가 “5명이 활동하는 걸 본 적은 없다. 듣기만 했다”라고 해서 세월무상이 느껴지기도 했던 그 그룹은 바로 동방신기였다. 동방신기가 데뷔할 때부터 완성형이었고, 오랫동안 가요계를 지배했듯 농구계에서도 충격을 안긴 그룹(?)이 있었다. 이제는 추억이 된 ‘인삼신기’다.
‘인삼신기’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양 정관장(당시 KT&G)이 2007 드래프트 3순위로 양희종을 지명한 게 출발점이었다. 양희종은 잘생긴 외모에 몸을 사리지 않는 근성을 보여주며 단숨에 안양의 스타로 자리 잡았다. 양희종과 절친한 사이였던 유노윤호가 경기를 보기 위해 안양체육관을 찾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그러고 보니 동방신기의 리더는 유노윤호, 정관장의 캡틴은 양희종이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양희종에 이어 정관장에 합류한 멤버는 김태술이었다. 한때 SK의 미래를 이끌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2008-2009시즌 정규리그 MVP 주희정과 트레이드되며 안양으로 향했다. 정관장은 2008-2009시즌 종료 후 양희종(상무), 김태술(사회복무요원)이 동시에 군 복무부터 해결하도록 계획을 짰다.
‘인삼신기’ 1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2011-2012시즌은 완벽했다. 당시 팀 역대 최고인 정규리그 2위(36승 18패)를 차지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난공불락’으로 꼽힌 원주 DB(당시 동부)를 4승 2패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정규리그에서 기록한 평균 관중 3763명 역시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구단 최다기록이다. 정관장은 이후에도 강병현, 문성곤, 변준형, 박지훈 등 성공적인 신인 수급과 트레이드를 통해 인삼신기 2기, 3기를 구축해 총 4회 우승을 달성했다.
KBL 인기 판도를 뒤흔든 형제도 있다. 현재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허웅(KCC)-허훈(KT) 형제다. 학창시절부터 ‘농구대통령’ 허재의 아들로 유명세를 탔던 이들은 프로 데뷔 후 실력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들 모두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가 하면, 허훈은 2019-2020시즌 정규리그 MVP의 영예까지 안았다. 아버지 허재, 형 허웅도 따내지 못한 타이틀이다.
허웅은 인기가 ‘넘사벽’이다. 2021년 3월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 출연해 인지도가 급상승했지만, 사실 허웅은 이전부터 KBL에서 손꼽히는 팬덤을 지닌 선수였다. 데뷔 2년 차였던 2015-2016시즌부터 2016-2017시즌까지 올스타 팬 투표 최다득표를 차지했고, ‘놀면 뭐하니?’ 방영 전이었던 2019-2020시즌에 이미 인기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허웅은 2019-2020시즌을 시작으로 지난 시즌까지 4시즌 연속 인기상을 차지했고, 2021-2022시즌부터는 올스타 팬 투표 최다득표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있다. 2021-2022시즌에는 16만 3850표를 획득,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것 같았던 이상민(2002-2003시즌, 12만 354표)의 역대 최다득표를 가뿐히 넘어섰다.
특히 이승준이 삼성에서 뛰던 시절에는 경기 끝난 후 그와 사진을 찍기 위해 여자 스포츠 아나운서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다. SK에서 뛰었던 2015-2016시즌을 끝으로 나란히 은퇴한 이승준-이동준 형제는 이후 하하의 소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 한때 방송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3x3 선수, 조선대 코치 등으로도 커리어를 이어갔던 이승준은 현재 스킬 트레이너로 농구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동준 역시 이승준과 함께 3x3 국가대표로 선발된 바 있다. 투박한 플레이 스타일이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를 연상케 했기 때문일까. 아들 이름도 ‘이백호’로 지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우지원-함지훈 이후 한동안 미남스타 계보가 끊겼던 현대모비스는 모처럼 ‘비주얼 천재’를 맞이했다. 2023 드래프트 2순위 박무빈이 그 주인공이다. 고려대 재학 시절부터 실력과 외모를 겸비해 차기 스타로 주목받았던 박무빈은 데뷔시즌부터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과감한 돌파와 3점슛으로 현대모비스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물론, 어시스트 능력까지 뽐내며 유기상(LG)과 치열한 신인상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박무빈의 스타성은 지난달 12일 열린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의 2024년 봄, 여름 남성복 컬렉션 공개 행사에서도 빛났다. 운동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배우 장기용, 위하준, 가수 빈지노, 자이언티, 코드쿤스트, 더보이즈 주연 등과 함께 초대를 받아 무대에 오른 것.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대행업체로부터 행사 이틀 전 급하게 연락이 왔다. 루이비통 측에서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이라는 것을 알고 초대해준 덕분에 참석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인기 있는 스포츠스타도 초대받기 어려운 행사에 함께해 구단 입장에서도 영광스러운 자리였다”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또한 “박무빈 입단 후 구단 유튜브와 소셜미디어 팔로워가 큰 폭으로 상승했고, 박무빈의 유니폼을 입고 홈 경기장을 찾는 20대 팬들도 급격히 늘었다. 현장 판매도 있어 구체적인 수치를 집계하는 건 쉽지 않지만, 구단이 체감하는 유의미한 변화가 있는 만큼 오프시즌에 지속적으로 진행할 마케팅에 대해선 꾸준히 논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관희의 지인이 프로그램 작가와 친분이 있어서 대신 신청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감독님은 ‘누구라도 팀 훈련에 빠져선 안 된다’라는 철칙이 있다. 이로 인해 시즌2에 출연할 수 없었고, 시즌3는 일정을 조율해 나갔던 것”이라는 게 LG 관계자의 설명이다.
‘솔로지옥’에서도 많은 여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이게 제일 부럽다) 이관희는 개인 소셜미디어 팔로워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인 만큼, 7일 현재 이관희의 소셜미디어 팔로워는 무려 86만 명에 달한다. KBL 최고의 스타로 꼽히는 허웅 팔로워가 10만 명인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월드스타’로 거듭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LG 관계자는 “관중 자체가 크게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증가한 건 아니지만, 확실히 구단 유튜브는 외국인들의 댓글이 많아졌다. 다만, ‘솔로지옥’과 관련된 마케팅에 대해선 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내부적으로 논의는 하고 있지만, 섣불리 했다간 기존 농구 팬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어 아직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사진_점프볼DB(문복주, 유용우, 박상혁, 이청하 기자), KBL PHOTOS, 현대모비스 농구단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