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튀르키예 대지진 1년…잿빛도시·영양실조, 재난은 '현재진행형'

김지은 기자 2024. 2. 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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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도시였어요."

국제구호 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에서 8년째 근무 중인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박한영 과장은 1년 전 튀르키예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박 과장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튀르키예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했다.

박 과장은 "1년 동안 튀르키예를 보면서 재난은 가난하고 힘든 사람한테 더 가혹하다는 걸 느꼈다"며 "재난이 발생하면 직후엔 많은 관심이 쏟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든다.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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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영 월드비전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과장 "재난 직후 쏟아진 관심, 지금은…"
지난해 2월6일 지진이 발생한 직후 튀르키예 모습. /사진=월드비전


"회색 도시였어요."

국제구호 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에서 8년째 근무 중인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박한영 과장은 1년 전 튀르키예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딱 1년 전인 지난해 2월6일, 튀르키예 남동부에는 규모 7.8과 7.6의 대형 강진이 연달아 발생했다. 당시 5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건물 30만채 이상이 파손됐다. 지진은 시리아 북서부까지 영향을 미쳐 이재민 900만명을 낳았다.

박 과장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튀르키예 피해는 현재 진행형이라고 했다. 그는 지진이 발생한 직후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에 방문해 긴급 구호 활동을 했다. 지난해 6월부터 9월까지는 재건 복구 사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6일 지진이 발생한 직후 튀르키예 모습. /사진=월드비전


박 과장은 처음 튀르키예 땅을 밟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안타키아는 튀르키예 남동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약 20만명 도시다.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어 오래된 교회와 유적지들이 모여있었다. 전통과 예술이 살아 숨쉬던 도시는 산산히 무너져 잿빛 도시가 됐다.

건물은 모두 쓰러졌고 거리에는 굴착기 중장비만 가득했다. 임시로 만든 텐트에는 이재민들이 불을 피워놓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사고 당시 겨울이라 밤이 되면 날씨도 쌀쌀했다. 도시는 정전이 돼 어두컴컴했고 이재민들은 패딩과 담요를 덮고 벌벌 떨며 잠이 들었다.

건물 안에 매몰된 가족을 구조하기 위해 집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한 중년 남성은 3일 내내 뜬 눈으로 아파트 앞에서 아들의 시신을 찾았다. 구조대원이 아들의 시신을 발견하고 호루라기를 부를 땐 아버지의 울음 소리만 거리를 가득 채웠다.

지나가던 차도 시동을 멈췄고 주변에서 대화를 나누던 이웃들도 조용히 묵념했다. 현장에 있던 이웃 30여명은 모두 모여 '우리가 지금 당신과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국제구호 개발 비정부기구(NGO) 월드비전에서 8년째 근무 중인 국제구호취약지역사업팀 박한영 과장. /사진=월드비전


지진이 발생하고 난 뒤에는 국내외로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월드비전을 비롯한 세계 비정부기구(NGO)들은 생필품과 식량 등을 공급하고 샤워실과 화장실을 설치·보수했다. 여성용품을 비롯해 깨끗한 식수, 담요, 매트리스 등을 지원했다.

아이들 대상으로 트라우마 치료 상담도 진행됐고 지자체와 협의해 저소득층 가구에 긴급 생계지원금도 제공했다. 국내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홀로 장애가 있는 남매를 키우며 식당일과 우유 배달을 하며 모은 돈을 기부한 사람도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상황은 열악하다. 대형 재난은 복구 작업만 1~2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도 거리 곳곳엔 건물 잔해물이 가득하고 중장비들은 쉴틈 없이 움직인다. 컨테이너 하우스가 설치되긴 했지만 대다수 시리아 난민들은 거주 우선순위에서 밀려 방수포로 만든 움막에서 지낸다.

영양실조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종합 영양상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북서부 시리아 아동 중 만성영양실조를 겪는 5세 미만 아동은 22.3%였다. 트라우마도 심각해 많은 이재민들이 밤잠을 못 이루고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 마땅한 직장도 없어 튀르키예 정부가 주는 보조금에 의지하고 있다.

박 과장은 당장 이들에게 필요한 건 일상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직업교육, 놀이치료,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내 삶이 나아질 수 있겠다' 느끼는 게 회복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도 촉구했다. 박 과장은 "1년 동안 튀르키예를 보면서 재난은 가난하고 힘든 사람한테 더 가혹하다는 걸 느꼈다"며 "재난이 발생하면 직후엔 많은 관심이 쏟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든다.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튀르키예 모습. 공원에는 파란색 방수포로 만든 움막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월드비전

김지은 기자 running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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