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는[편집실에서]
“국화꽃 져버린 겨울 뜨락에 창 열면 하얗게 뭇 서리 내리고 … 산골짝 깊은 골 초가마을에 … 고향집 싸리울엔 함박눈이 쌓이네.”
김재호 시·이수인 곡의 한국 가곡 ‘고향의 노래’의 일부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떠오르는 노래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곡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너무 애틋하고 그리운 초등학교 시절 합창단 활동을 하면서 부르고 또 부르던 노래여서 더 각별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설 연휴가 다가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고향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가족도 만나고 친구도 만나고 점점 사라져가는 고향의 풍경과 정취도 한아름 눈에 담아서 돌아올까 합니다. 서울보다 느리게 가는 지역의 일상이라지만 유독 ‘지역소멸’ 시계만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 빨라지는 듯합니다. 즐겨가던 동네 목욕탕은 어느 날 종적을 감췄고, 정겹던 동네 맛집도 서점도 찻집도 간판을 바꿔달기 바쁩니다. 고향 가는 고속도로에는 폐업한 ‘좀비 주유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띕니다. 유동인구 감소로 문을 닫는 시외버스터미널도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고요. 하긴 38년 역사의 서울 상봉터미널이 문을 닫고 ‘IT 성지’로 위용을 자랑하던 용산전자상가마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생겼으니 지역 상황이야 더 일러 무엇하겠습니까.
제가 나온 고등학교는 학생 수가 줄어드는 바람에 수년 전 아예 위치를 옮겼습니다. 초·중·고 가릴 것 없이 속출하는 폐교의 행렬은 각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 지역주민들에게 당장 공간 활용과 관련한 큰 숙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대학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교육부의 무전공 선발 비중 확대 정책은 가뜩이나 얼어붙은 순수학문 전공학과를 거의 고사 지경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특히 지방대학들은 신입생을 확보하느라 해마다 입시철이면 골머리를 앓는다죠.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수도권으로 몰려가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점점 양로원과 요양보호시설로 바뀝니다. 산림 훼손 우려가 무색하게 중장년층을 위한 파크골프장이 난립합니다. OECD 노인빈곤율 1위라는 오명이 무색하게 초호화 실버타운 역시 속속 들어섭니다. ‘합계출산율 0.70명대 하락’이라는 비상상황이 무색하게 소아과는 또 왜 오픈런이랍니까. 저출생 속도를 넘어설 만큼 필수의료 시장 붕괴가 심각하다는 뜻이겠죠. 지역은 더합니다. 수억원의 연봉을 제시해도 지역의료기관에서 일하겠다는 의사가 없습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GTX 노선 확충안 등을 보면 ‘서울’은 점점 커질 태세입니다. 전국의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도 백종원표 충남 예산시장 등 몇몇 전략거점을 빼면 백화점, 대형마트,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웬만한 곳은 다 접수해버린 상황입니다.
그나마 이맘때나 지역은 귀성 인파로 ‘반짝 특수’를 누립니다. 찬란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고향, 잘 어루만져주시고요. 2주 후에 뵙겠습니다. 이번 호는 설합본호로 준비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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