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집권 기다리는 네타냐후…가자 휴전 안 되는 이유

김미향 기자 2024. 2. 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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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한 이스라엘, 속타는 미국
5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 라파흐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군 공격 뒤 무너진 집에서 생존자를 찾고 있다. AFP 연합뉴스

“현재 분석으로는 전쟁이 2025년까지 계속될 것이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1월16일 가자 국경 주민들에게)

“1년간의 전쟁을 원치 않는다. 저강도 전투로 전환해 민간인 피해를 줄여야 한다.”(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1월19일 네타냐후 총리와 한 통화에서)

다섯달째 이어지고 있는 가자전쟁으로 인한 희생자가 3만명에 육박하고 있는데도 이를 멈추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내지 못하며 그 원인에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카타르·이집트가 중재하는 휴전 협상이 진행되며, 곧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란 기대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핵심 당국자들이 강경 발언을 쏟아내며 최종 합의가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가자전쟁을 멈추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미국과 실제 칼자루를 쥔 이스라엘이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11월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재대결’을 벌여야 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마음이 급한 상황이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집단학살’하고 있다는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고발당한 이스라엘을 전면 지지하다 전통적인 지지층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미국 액시오스는 지난달 26일 “백악관은 가자전쟁을 반대하는 미국 내의 젊은 유권자들을 잃을까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막으려 하루라도 빨리 휴전이 이뤄지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또 지난달 28일 이슬람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아 미군 3명이 희생됐는데도 이란 본토에 대한 보복 타격을 삼가면서 벌써 여러 차례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4일부터 가자전쟁 개전 이후 벌써 다섯번째에 이르는 중동 순방에 나섰다.

미국은 일단 속히 전쟁을 멈춘 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각각 독립된 국가를 만들어 평화롭게 공존하자는 ‘두 국가 해법’을 뼈대로 한 전후 처리 작업에 나서려는 것으로 보인다. ‘하마스 궤멸’을 외치는 이스라엘엔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교 수립 등을 ‘당근’으로 제시하는 중이다.

이에 맞선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이 그리는 전후 구상의 핵심인 ‘두 국가 해법’에 사실상 반대 의견을 밝힌 상태다. 4일엔 “이스라엘은 주권 국가”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우린 모든 협상안(deal)에 동의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휴전 협상안을 사실상 거부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5일엔 “우리 목표는 하마스를 상대로 한 완전한 승리이다. 우린 하마스의 리더십을 제거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가자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쟁은 그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 이는 몇년이 걸리진 않겠지만, 몇달은 더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런 강경론을 굽히지 않는 것은 자신 앞에 놓인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지난달 26일 “이스라엘에선 전쟁이 끝나면 네타냐후 총리와 그의 정당이 퇴진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며 “많은 이들이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 전망에 대해 ‘끝났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방송 채널13이 지난해 12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701명 가운데 72%가 네타냐후 총리는 사퇴해야 한다고 답했다.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선 전쟁을 최대한 길게 끄는 게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데 유리한 셈이다.

버텨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존재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기(2017~2021)에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2018) △이란 핵협정(JCPOA) 파기(2018) △아브라함 협약(2020) 등에서 굵직한 정책을 공조하며 이른바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에 대한 기대는 이스라엘 극우 진영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네타냐후 내각 내에서 최악의 극우 인사로 불리는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은 4일 월스트리트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이스라엘에 더 나을 것이고, 트럼프가 집권하면 미국의 행동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가자전쟁을 계속 이어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를 기다리는 게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라는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에 무기 지원을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엔비시(NBC)는 지난달 28일 미국이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를 지연시키거나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 쓸 대형 폭탄, 탄약과 방공 시스템 등 더 많은 무기를 미 정부에 계속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155㎜ 포탄, 합동 직격탄(JDAMs) 등의 판매를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스라엘이 미국의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은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달리아 다사 케이 유시엘에이(UCLA) 국제관계 버클 센터 선임연구원 등은 1일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미국이 가자지구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중동의 평화를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 미래를 기다리는 것”이라며 “중동 각국의 이해관계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우디·튀르키예·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 등 이스라엘과 인접한 지역 강대국들이 새롭고 강력한 역내 안보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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